날 두고 간다는 남자친구. 사랑 맞나요?
사귄 지 200일이 넘어가니 꾹 참던 섭섭한 감정들이 하나 둘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남자친구와 우리 집은 걸어서 1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정도로 꽤나 가까웠다. 둘 다 이른 퇴근을 하는 편이니 자주 만나고 싶었다. 여름엔 더 그랬다. 오래 볼 수 있는 파-란 하늘을 같이 길게 보고 싶었다. 테라스에서 맥주도 마시고 싶고 손잡고 한강 산책도 자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늘 애매한 말로 저녁시간을 혼자 보내려 했다. 나의 욕망은 '함께'였고 남자친구의 욕망은 '홀로'였다. 정말이지 너무 섭섭했다. 꾹 참는 스타일이라 티를 내지 않다가 터지기 일보 직전, 잠깐 보자고 했다.
오빠, 저녁에 잠깐 봐.
나는 약속이 있었고 남자친구도 약속이 있어 저녁 11시가 넘어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다음 날이 주말이라, 밤이 늦었으니 이야기하다가 남자친구 집에서 자고 올 계획이었다. 친구를 집에 재우고 나오며 "난 오늘 안 들어올지도 몰라 ~"라며 나갔다. 친구에게 맡긴 집 열쇠도 따로 챙기지 않았다.
남자친구 집과 우리 집 중간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집 센 두 명이 이야기하니 서로 지지 않고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 정도면 남자친구 집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도 될 것 같았다.
나 내일 약속 있어서 12시 넘었으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더 얘기하면 내일 일정에 지장 있을 것 같아서.
???
남자친구는 다음날 약속이 있다며 일정에 지장을 주기 싫다고 했다. 갔다. 남자친구는 그대로 정말로 집으로 갔다...... 돌아오겠지? 뒤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남자친구 뒷모습만 계속 쳐다봤다. 아니... 남자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 현실인지 꿈인지. 아마 눈물이 조금 났던 것 같다. 집으로 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고 핸드폰을 톡톡 쳐 알림을 확인했다....
난 그 말이 이별의 통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 문을 두들겼다.
문 열어... 나 왔어.....
깜짝 놀라는 친구와 남자친구를 한참을 씹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남자친구에게서 잘 잤냐는 카톡이 왔다. 모임에 간다는 일정 보고와 함께. 남자친구는 우리가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도 중요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둘 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여유 있게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당시 나는 쌓아둔 감정이 있어서인지 바로 풀어야 하는 성향이었고, 남자친구는 서로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을 때에 하고자 하는 성향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자친구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고, 그때에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오늘 글에는 남자친구와 화해를 할 때에 가던 팔각정에서 찍었던 사진을 넣어봤어요. 이 사진들도 무려 7년 전 사진인데요, 화해 후에는 감정이 한껏 치솟다 보니 더 사랑이 샘솟아요, 그래서인지 팔각정은 저에게 로맨틱한 장소로 기억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