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나만의 루틴이 있다. 쇼파에 비스듬히 앉아 어플 몇 개를 돌려가며 최근 동향을 확인하는 것인데 그 중에 '당근마켓'은 왠지 모르게 꼭 들어가게 된다. 당근에서 주로 보는 것은 동네생활. 요 근래 우리 동네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어떤 수요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은근 재미난 이야기들이 쏠쏠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당근에서 동네 홍반장에 빙의하며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그 때 ... !!!!!! <알바구함 : 소셜링> 이라는 제목에 빠르게 반응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더 빠른 속도로 클릭했다. 내가 요즘 한참 관심을 쏟고 있던 '로테이션 소개팅'의 진행자를 구한다는 알바 공고였다. 지원 자격을 살펴봤다. 그냥 나였다. (ㅎㅎㅎㅎ) 이 자리는 나를 위한 공고였다.. !!!!
20대에는 웨딩홀에서 1년 동안 수 백쌍의 커플들의 결혼식을 진행했던 예도팀(현장에서 정장을 입고 신랑 신부를 안내하고, 사회자 옆에서 음향/조명을 조정하는 사람들을 예도팀이라고 한다) 팀장이었다. 처음엔 잠깐 아르바이트만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매주 여러 쌍의 결혼식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고 문제를 수습하고 신랑신부님과 소통하는 것이 정말 즐거운거다. 물론 그때는 문제가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여기 저기 뛰어 다니느라 '박조급'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예도팀의 팀장이 되어 있었다. 크.... 그때의 이야기도 정말 재미난게 많은데 나중에 풀 수 있으면 풀어봐야지.
게다가 난 소개팅도 꽤나 했다.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부터 소개팅을 참 줄기차게 해왔다. 처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그 떨림과 긴장감 머쓱함, 도망가고 싶은 그 마음까지! 모든 소개팅에 참석한 남녀의 마음을 꽤나 잘 읽는다. 게다가 지금은 지인들의 소개팅과 미팅을 책임지고 있는 나....
여기서 끝이면 섭섭하지, 10여 년간 마케터로 일하면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본 이력이 많아 위기상황대처능력도 꽤나 있다고 자부한다. 갑자기 마이크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꼭 필요한 것이 없어졌다던가 등등. 손에 꼽을 수 없이 무수한 '이슈' 사이에서 잘 살아남은 것도 나다. 좀 비장했나? ㅎㅎㅎㅎ 싶지만 아무튼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난 끝없는 비장함을 꺼내고 또 꺼냈다.
이쯤되니 나보다 커플 매칭에 진심인데다가 진행까지 잘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거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강하게 치고 올라왔다. 주말 하루 소중한 시간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살짝 고민됐지만, 바로 지원했다.
그리고 퇴근 후 면접을 보러갔다. 자신감과 함께 혹시?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7:1의 경쟁률을 뚫고 나는 면접 자리에서 바로 합격했다.
"엄마 나 합격했어 ~" 회사에 정규직으로 합격했을 때보다 기뻤다. 이게 뭐라고? 그러니까, 고작 알바합격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기쁘게 한다.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벌 수 있다니!!!!!!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도대체 누가 '로테이션 소개팅'을 진행하는거야?' 의 '누가'를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