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리스 시스템즈에서 두 달간의 인턴을 마치고
얼마 전 나는 비캔버스라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Osiris-systems의 디자이너로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 정식 팀원으로 합류하기 전 두 달간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과도한 패기로 저지른 나의 부끄러운 실수들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나의 부끄러운 경험이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인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디자이너로 세 번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어떤 회사에 지원해볼까 하다가 때마침 즐겨 쓰고 있는 '비캔버스'라는 협업툴이 눈에 들어왔다. 서비스를 쓰다 보니 고객으로서 이런저런 불만사항도 많고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나... 하고 의문을 품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또한 디자이너라 그런지 내가 애용하는 서비스가 좀 더 세련되고 예뻤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그 당시 비캔버스 팀에는 디자이너가 없었다).
그래서 '디자이너'인 '내'가 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단기적으로 일단은 '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스타트업을 경험해보기 위해 인턴으로 지원한 것이다. 서비스가 나에게 매력적이었고 이곳에서 두 달이라도 일해보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란 매우 위험한 생각으로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내 실수는 시작됐다.
내가 오기 전 비캔버스 팀은 두 명의 개발자와 대표님 세 명이 매우 평화롭게 잘 흘러가고 있었는데, 나의 무지와 이기심이 그 평화를 깨기 시작한 것이다.
첫 주부터 홍용남 대표님과 나의 논쟁은 시작됐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내가 이 팀의 유일한 디자이너로서 좀 더 세련되고 예쁜 서비스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UI에서부터 납득이 되지 않았고 이런 부분은 내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내 말이 맞을 것이라는 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이 짧았던 이유는 다름 아닌 중심을 '나'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턴 당시에는 내가 이 팀에 계속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기에 내가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나의 니즈', '나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비캔버스가 만들어지던 2년 전부터 치밀하게 설계해온 디자인, 사업 전략, 팀의 철학을 인지하려는 노력 없이 단순한 외관 수정을 하면서 내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캔버스 팀은 내가 오기 훨씬 전부터 '고객을 위한 디자인과 개발'을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어떤 이방인이 와서 서비스와 팀을 이해하기는커녕 자기 이득을 취하려 하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모든 원인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여러 번의 논쟁이 있었고 인턴으로 일한 지 한 달 즈음에 감정적인 이유, 복합적인 이유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고작 한 달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벌써 그만둔다니... 뭔가 내 결정이 실패로 돌아간 거 같아 좌절스럽기도 하고 내가 다른 회사에 들어가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여기서 대표님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딜 가든 내 윗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여태껏 해왔던 '나' 중심적 사고가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고, 기존 팀원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버리고 '팀'에 융합되기 위해, '서비스' 방향에 맞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집중하기로 했다. 좀 더 예쁘고 세련되게 당장 바꾸고 싶은 디자인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그러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대표님이 원하는 방향을 무조건적으로 따라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두 달간의 인턴기간이 끝날 때쯤, 그 전보다는 '팀'에 좀 더 융합되어있는 느낌이 들었고 비캔버스라는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팀의 철학과 사업방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순간부터 일이 재미있어졌다. 비캔버스 팀이 매력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객과의 일대일 소통을 통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의사를 표했고 정식으로 팀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밤낮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싶어 졌다.
그런데 우리 팀 개발자들이 겪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의외로 단순했다. 오로지 고객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어떻게 더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팀의 웹 개발자는 웹 사용자의, iOS 개발자는 iOS 사용자의 고객지원을 직접 하기 때문에,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직접 듣고 그걸 바탕으로 비캔버스가 나아갈 방향을 잡는다.
우리 대표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제품을 코드상으로만 하루 종일 보거나 세세한 디자인에만 고민하다 보면 이 제품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는 걸 잊게 된다", "직접 고객과 소통하여야만 지금 개발하고, 디자인하고 있는 비캔버스가 살아 숨 쉬는 생명이란 걸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직접 고객과 일대일로 대화를 하다 보니, 실제로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우선 고객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뿐인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 개발자들 또한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고객님들이 주시는 피드백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것들이 고객만족에 크게 기여했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개발자들은 신이 나서 쉬지 않고 일했다. 반대로 고객들이 원하는 것들을 당장 제공해드리지 못할 때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비캔버스 팀은 고객의 피드백에 늘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하루하루가 흡사 전쟁터 같다. 내가 생각했던 스타트업은 이와 좀 달랐지만 말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마구 넘치는 토론, 팀원 간의 끈끈한 연대, 밝고 쾌활한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뭔가 어둡고 자기 일이 바빠 말도 잘 안 하고 조용한 편이다.
우리 팀은 겉으로 보기엔 말도 없고 소통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각자 따로따로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고독한 '개인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비캔버스 팀은 디자이너로서 내 첫 직장이 되었고, 나는 이 결정이 옳은 결정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스타트업 특성상 회사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꿀직장을 얻기 위해 이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고 어려운 일들이 닥치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비캔버스를 쓰면서 생산성 향상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스릴 넘치고 가슴 설레는 일인 것 같다.
인턴 초반에는 초점이 '나'였다면, 이제는 정말 '나'를 부수고 '고객'에, '팀'에, '서비스'에 온전히 몰입해야 한다. 앞으로 작업을 할 때마다 내 한계에 부딪히고 이 방향이 맞나 의구심이 들겠지만, 우리 팀이 최우선시하는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오로지 내게 중요한 것은, 비캔버스라는 서비스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뿐이다.
- 마윈
- 마윈
* 비캔버스는 웹사이트는 beecanvas.com을 통해, 아이패드, 아이폰 앱은 앱스토어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