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해야 했던 단호함

현장에서 마주한 부탁과 그 이후의 이야기

by 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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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라는 세 살, 우리 반에서 나와 함께 지내던 아이였다.

그런 희라는 어린이집 차량을 자주 놓치는 아이였다.

희라의 엄마는 필라테스 강사였다. 늦은 오전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수업을 진행했다.

희라의 등원은 아침마다 늘 불규칙했다.

약속된 장소에 내려오지 않아 전화를 하면, 어떤 날은 급히 내려왔고 어떤 날은 우리의 전화를 모닝콜 삼아 일어나기도 했다.

차량을 타지 않은 희라는 보통 10시가 넘어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등원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희라는 늘 혼란스러워했다.

교사가 준비한 놀이를 자주 놓쳤고,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은 항상 울음으로 끝났다.

엄마는 출근 시간이 급해 희라를 오래 안아주지 못했고, 희라는 울먹이는 얼굴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나는 매번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희라를 조금 더 꼭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엄마의 퇴근 시간은 밤 9시에서 10시 사이였다.

우리 어린이집에는 야간 연장반이 없었지만, 원장님은 상황을 배려해 저녁을 제공하며 희라를 돌보았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하원한 뒤, 혼자 남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희라 엄마가 원장님께 전화를 했다.

“제가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에서 희라를 씻길 수가 없어요. 혹시 어린이집에서 씻겨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원장님은 매일은 아니어도 씻겨주시기로 했다.

내가 직접 씻긴 건 아니었지만, 그 부탁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보육교사로서 경계가 조금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달쯤 지나자 하원 시간은 점점 더 늦어졌다. 원장님의 전화를 받지 않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정해진 하원시간보다 두 시간이 지나서 나타난 희라 엄마는 저녁 약속이 있어 다녀왔다고 말했다.


결국 원장님과 상담이 이루어졌고, 희라는 그 달로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사적인 요구 사항이 점점 늘어났다고 했다.

그 일은 보육교사가 된 지 1~2년 차였던, 약 10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에는 상처가 컸고, 이 일이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이 나와 원장님 모두에게 ‘단호함’의 필요성을 알려주었다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현장은 늘 배움의 자리다.


때로는 아이를 통해, 때로는 부모를 통해.

오늘의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다.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사실과 픽션이 섞여 있습니다.

특정 인물과 상황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장면은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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