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믿었던 날들에 대하여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한 사람의 기록

by 서온
생각이 없던 게 아니라, 말하지 않았을.png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다.
애정을 갖고 몇 년은 더 다닐 줄 알았던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이 폐원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새로운 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벽 앞에서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너 앞으로 뭘 해 먹고살 거야?”
“생각 좀 하고 살아.”

그 말들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깊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나는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일까?’

생각의 끝에서 나는 스스로를 가장 먼저 깎아내렸다.


‘참 한심하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네.’


원래도 낮았던 자존감은 그렇게 더 깎여 나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을 갉아먹는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보육교사와 계통은 비슷하지만, 현장보다는 실무에 가까운 직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가는 직업 하나를 찾았다.

지금 당장 3월부터 일할 곳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 직업과 관련된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다.

동시에 나의 자존감을 다시 쌓기 위한 취미도 놓지 않고 있다.

이 과정을 지나오며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글쓰기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고, 그곳에서는 작가로 불린다.

하지만 이 사실을 내 주변 사람들은 거의 모른다.


누군가는 묻는다.
“주변에서 그 정도로 모르면 서운하지 않아?”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더 당당해질 때까지 아직은 모르는 게 좋다고.

이 생각만 봐도 내 생각을 얼마나 주변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이러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는 거지..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줄 알았던 내 삶에도 생각보다 많은 성공이 있었다.

네 살이 된 조카만 봐도 그렇다. 4년을 사는 동안 수많은 걸 해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미 해냈을까.

나는 이제 막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글 역시 그 증거다.

작가의 이전글아이들을 위해, 나도 아프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