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소프트스킬
지난달 운영진으로 활동하는 동아리 활동으로 17명의 디자이너 모임을 주최해야 했다.
2주간의 준비 기간. 장소 대관은 어렵지 않았으나 3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가 문제였다.
두 번 회의와 전날 밤의 새벽작업 끝에 [프로젝트 리뷰 / 주니어의 고민사연 / 시니어의 노하우 발표 / 스터디 모집 및 공지사항]으로 준비를 마쳤다.
프로젝트 리뷰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팀별 피그마 파일을 둘러보았다.
익명으로 사전 조사한 주니어 디자이너의 고민 3가지[대학원 진학 / 디자이너 간 협업 노하우 / Ai 기술 발전]를 주제로 시니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는데 대학원 진학과 관련한 사연이 가장 많은 인사이트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졸업 후 진학은 실무 경험을 쌓을 시간이 부족할 수 있으니, 시니어로 경력과 경제적 여건이 마련된 이후에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사전에 간단한 발표를 부탁드린 두 시니어 디자이너 분의 발표를 들었다. 각각 9년 차 디자이너의 커리어 패스, 인터렉션 디자인에 대한 발표였다. 두 분 덕분에 세션의 유익함을 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진행하려고 계획한 모임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세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세션 직후 뒤풀이를 계획했어야 했는데, 진행 준비에 집중하다 보니 뒤풀이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내가 직접 뒤풀이를 가자고 제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뒤풀이 참석율을 높이는 소프트 스킬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를 포함 4명만이 근처에서 짧게 치맥을 하고 헤어졌다.
파트 내 모든 사람들이 각기 서로 친해지기를 바랐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뒤풀이에 참여하려다가 만 사람도 있었는데, 어쩌면 이분들도 세션 마지막 순간까지는 쭉 이야기 나누고 싶으셨을 것 같다. 뒤풀이를 성공적으로 주최하지 못한 것은 결국 세션을 미완성으로 만든 것 같은 찝찝함만 남겼다.
회사에서도 회식이 점차 사라지는 마당에, 내가 뒤풀이를 가자고 먼저 제안해야 하는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냐마는, 행사의 목표는 구성원 간의 친밀도 향상이었으니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100점짜리 세션은 아니었다! 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뒤풀이, 영어로 Off the Record.
비공식적으로 모인 만큼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뒤풀이 = 회식 = 술자리와 같은 인식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지만, 요즘에는 식사 후 보드게임 카페를 가거나, 산책, 볼링, 클라이밍 등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친목을 위한 공식 행사는 공금을 사용해야 하며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만큼, 특별히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가까워지기보다는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풀어주는 목적이 강하다. 조직 전체 분위기가 유해졌지만 내부적으로 좀 더 친밀도를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끈끈히 하고자 뒤풀이를 기획하는 방법을 한 번 회고 삼아 작성해 본다.
나는 술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이라 술자리 경험이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식당에만 다니는 성향 탓에 장소 선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식당(특히 술집은 더더욱)에 대한 취향이나 안목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세션 직전, 주변 맛집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로부터 수집하려고는 했는데, 선정할 틈이 없었다.
뒤풀이 장소로 식당을 간다고 할 때 최소한 4가지 요소(이동 소요시간 / 음식 종류 / 식사시간 / 혼잡도)를 중심으로 4-5가지 옵션을 선정하여 사전에 참여자들에게 투표를 해보자.
이동 소요시간 : 너무 오래 이동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적당한 거리는 이동하면서 삼삼오오 모여 스몰토크를 나누기 좋다. 5-8분 정도의 거리면 적절할 듯하다.
음식 종류 : 고깃집이나 닭갈비 등 한 번에 조리해서 나눠먹는 음식이 좋다. 단 이후 일정이 있거나 구성원 간 친밀도가 아직 많이 낮은 경우 식사 시간이 무한정으로 늘어질 수 있는데 이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럴 때는 치킨처럼 조리된 음식이 서빙되어 나눠먹는 메뉴가 좋다. 그밖에 구성원의 인원과 취향에 따라 적절히 식당을 서치 하고, 4-5개의 옵션을 미리 제공하여 다수결로 선택하도록 한다. 사전에 못 먹는 음식을 조사해 두자.
식사시간 : 식사가 마무리될 때 2차를 제안한다. 주변에 할 만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식사 분위기가 좋았다면 술집도 좋다. 그밖에 인원에 따라서 적절히 오락거리를 찾아본다. 카페는 보통 차가운 음료를 시키는 경우가 많고 혼잡도가 높은 장소이므로 소규모 / 시간이 늦음 / 술 못 마심 / 대화거리가 남아있음 경우에 이용하자.
꼭 술을 먹으라는 법은 없다. 다른 팀은 보아하니 보드게임 카페에 가기도 했고, 영화 보러 가자는 제안도 있었다. 아무튼 꼭 술을 마실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여기까지 고려하지 못했다.
2차 콘텐츠도 장르(?)에 따라 3-4가지를 제안한 후, 적당히 인원을 분배하거나 다수결에 따라 미리 선정해 둔 장소로 이동한다.
장소도 콘텐츠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니 사람들에게 선뜻 사전에 참여 조사를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꼭 완성된 판일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참여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할 정도면 충분했다.
또, 따로 꼬드겨둔 사람이 있었더라면 판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선뜻 가겠다고 한 사람도 참여율이 낮자 결국 참여하지 않았던 것!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식 문화는 꽤 강제적이었기 때문에 현대인들의 피로의 대상이었다.
나 역시도 대학 신입생 때, 대학 내 과도한 강제 술문화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시기였기 때문에, 혹여 뒤풀이가 강제성을 띄지 않도록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운영진으로서 친목 도모라는 과제를 위해, 저조한 뒤풀이 참여율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고민하다 보니 강제성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정도로, 관계를 더더욱 친밀하게 만드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보통 새로운 관계와 변화를 불편하게 느끼곤 한다. 그러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함께하려는 마음, 친해지려는 마음이 그 관계를 끈끈하게 하고, 그 관계들은 커뮤니티를 지속하고 활성화한다. 그 원동력은 순수한 즐거움이다. 뒤풀이도 사실은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 순수하게 관계를 맺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 동아리의 경우만 해도 뒤풀이가 자율 참여로 전환되자, 어색함과 불편함이라는 허들을 넘어오는 사람이 확 줄었다. 이제는 아예 그 허들을 낮춰주거나(친목 행사 기획) 우리끼리 너무 즐거워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분석하고 앉아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면
내가 정말 이 모든 것을 ‘즐기고 있나?’하는 의문이 든다. 쉽사리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아직 내게 넓고 얕은 관계, 또 조직을 이끌고 그 안의 관계를 케어하는 일이 쉽지 않기도 하고, 한 명 한 명 얕더라도 즐거운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기민한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함께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과 무엇을 할 때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을까?
내가 진정으로 즐거운 곳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에서 나아가 그러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사회화를 공부해야 하는 인팁(!)인 내게는 분석도, 더 많은 경험과 레퍼런스도 훨씬 더 필요하다.
아직 어렵다. 깊게 고민하기보다 여러 타입의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부딪혀가며 알아가야 할 것 같다.
이 일을 계기로 어떤 집단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정말 잘 놀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재미거리, 즐길 거리들을 알고, 또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들일 줄 알아야 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려하고 협력하는 문화 역시 즐거움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회사가 아닌 조직인 이상, 사람들이 이 놀이터에서 오래, 많이, 유익하게 즐기다 가도록 오늘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