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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S Jun 09. 2023

맞아 나 못해.

실력 부족을 인정하는 용기와 껄렁함

이번 글의 주제는 나의 고백으로 시작해 본다.

나는 디자이너인데 디자인을 못한다.

심지어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도 잘 못한다.

하고 싶은 변명은 아주 많지만, 오늘은 그냥 고백해보고 싶었다. 왜냐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근거 없는 오만함으로 많은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 껄렁한 문체도 용서해 주시길.


그래도 변명을 좀

해보겠습니다


미대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서는 생각보다 흔한 케이스지만,

나는 원래 만화·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싶었다. 중학생 1학년 때부터의 일이다.

약 7년의 시간 동안 그 꿈을 버리지 못하다가 복수전공을 선택한 건 그런 이유다.

컴퓨터를 이용하기 시작할 적부터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곤 한다.

아, 유튜버 이연님처럼 감성 넘치는 크로키풍의 그림이 아니라 게임 속 캐릭터 같은 화풍이다.

그림은 내가 디자인을 시작하게 한 녀석이자 나의 백일몽의 주인공이다. 게임 제작 동아리에서 2년 동안이나 게임 원화를 그려주는 헌신을 했던 것도 모두 그림에 대한 나의 애정 때문이었다.




결국 그림은 짝사랑으로 남았다.


게임에 들어가는 원화를 그려주는 일은, 듣기에는 그럴싸하겠지만 사실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그림만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아주아주 많은 것들을 그리고 수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짧고 진지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게임 제작을 경험하면서 그림을 직업으로 하는 일의 어려움을 깨달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 기분도 들었고 내 그림이 들어간 게임이 공모전에 수상하거나 출시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존감이 오르고 성취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나는 (그려야만 하는 것들을 못내 끄적여 완성한-)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은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그림의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서는 결국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수밖에 없는데, 디자인과 만화애니메이션과의 복수전공을 하면서 각 과의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 모든 프로젝트들을 높은 퀄리티로 작업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했다. 졸업을 앞둔 5학년(복수전공으로 초과학기를 했다) 여름, 현실적인 직무 선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예쁘고 멋진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나의 백일몽에서 깨어날 시간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업으로 하려던 나의 노력은 1달여간 게임 GUI 아티스트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제작 과외를 받던 때였다. 주 1-2회, 한 달 18만 원 남짓의 금액으로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일 준비를 하면서 문득 내가 정말 이 직업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게임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끝내 썸 타던 상대방과 크나큰 가치관의 차이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미련을 버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미련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인스타그램 주 계정에는 여전히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던 나의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이 남아있다. 몇 번이고 계정을 다시 파던지 다 가리던지 해야지 하고 다짐하다가도 나의 애정 어린 붓자국이 느껴지는 그림 제작 영상을 보다 보면 멈칫하게 된다. 요령도 없고 트렌디하지도 않고, 흔한 소품이나 배경 그리는 것도 귀찮아 매번 정면을 그리곤 했지만 내가 그린 그림들이 어쩌나 반짝여 보이는지. 디자인과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여럿 팔로우되어 있고 대부분의 팔로워들이 디자이너 아니면 개발자인 계정이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차마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초등학생 때 가정집에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습하다 보면 어김없이 꾸벅이며 잠들어 버리던 내가 학원에서 유독 반짝이는 시간은 바로 또래 아이들에게 메모지에 캐릭터를 그려주던 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 나와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한때 자신의 꿈이 만화가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악보 교재 한 구석에 순정만화 풍의 여자 얼굴을 그려주셨는데, 어린 나의 눈에 꽤 멋져 보이는 풍이 었다. 


피아노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하고 딱히 흥미가 없었던 탓에 학원은 곧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날의 잔잔한 충격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잊고 현실과 타협하여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어른의 모습이 당시로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선생님의 어투는 얼핏 유쾌하게 들리긴 했지만 "한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는 꽤 쓸쓸하게 들렸던 것 같다. 마음 한 구석으로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꿈이라는 환상


어떤 일을 이루고 싶다, 하고 싶다, 멋진 무언가가 되고 싶다-

고 생각하는 걸 어린 시절 꿈이라고 불렀다. 나는 꿈이 꽤 공공연한 아이였다. 중학생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며 입시를 준비하거나 고등학생 때도 입시미술에 전념하고 여가시간에까지 디지털 드로잉을 달고 살아왔으니 주변에서 나를 그렇게 여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인간관계와 조직, 사회로까지 나의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림을 좋아했던 어린 나의 마음을 약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반짝이고 화려한 만화 영화의 캐릭터를 그려주면 또래 친구들이 아주 좋아해 주었고, 개중에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따르고 치켜세워주는 아이들이 있었더랬다. 관심을 받는 것이 좋았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어려운 인간관계를 직면하지 않아도 나를 보호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마치 온실 속 화초가 연약하기 그지없는 화려한 꽃대를 피워 올리듯이 나의 꿈을 오래간 꿀 수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었고 조용히 할 일을 하며 지냈기에 다른 경험을 할 기회도 많이 없었다. (내가 직접 걷어차버린 기회가 대부분이긴 했다)


인생의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꿈이라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그것의 결실은 제대로 맺히지 않았다. 많은 경험 속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게 가장 쉬운 방법을 하나 골라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건강한 인간관계란 무엇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어떻게 나누어 갖는지

그 방식들을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알아나갈수록 내게 그림(관심을 갈구하는 수동적 태도)의 중요도는 조금씩 낮아져만 간다. 나는 그림을 사랑하지만, 그들은 나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을뿐더러 성숙한 고민의 결과도 아니다.

그렇기에 직업적으로 마땅히 가져야 할 "더 잘 그리고 싶다. 이제 어떤 것을 연습할까?" 같은 마인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재미와 안정감만을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




내가 부족할지언정 도전정신을 가지고 부딪힐 수 있으며

동시에 (수입이) 안정적이고 재밌는 일이 내게 새로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디자인아, 우리 괜찮은 거지?


그렇게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었다. (준비 중이다)

짧다면 짧은 몇 번의 프로젝트와 인턴, 입사 지원의 시간이 대학교 학기 지나듯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급하게 최근 다시 지원을 시작했고, 약간 갈아엎은 포트폴리오 탓인지 결과가 썩 좋지 않다. 하기사 쉬는 기간 동안 정말 진지하게 하루 4시간 이상 디자인 작업만 한 날이 아마 손에 꼽힌다. 팀 프로젝트를 두 어깨 하긴 했지만 포폴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포트폴리오를 갈아엎으면서 문득 '나 디자인 별로 못하나 보다' 하고 자각하 고나니

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디자인하고 새로운 툴을 배우고 완성된 이미지를 다양하게 출력하기도 하면서 연습을 게을리한 것이다. 그러면서 디자인을 잘하기를 바라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것이 스스로 너무나도 괘씸할 뿐. 하루아침에 내가 디자인 천재 만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이 사실을 가만히 받아들여 부족한 영양을 화분 구석구석에 뿌리내려 흡수할 수밖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디자인을 사랑한다.

디자인을 할 때 누릴 수 있는 그 전방위적인 주체성을 사랑한다.

논리와 데이터를 기반하는 합리적이기 그지없는 이 업계의 시스템을 사랑한다!

때로는 아티스트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할 수 있는 이 직업을 사랑한다.

물론 사랑하는 점만 있지는 않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 서비스 등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예민함이 나를 지치게 할 때도 많다. 훌쩍 잠수 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순간이 많다.


어찌 보면 짝사랑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미 프로덕트 디자인은 내 현 애인이다.(응?)

현 애인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분투한다. 멋진 디자이너가 되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마우스를 이리 놀리고 저리 놀리면서 포트폴리오를 수정한다. 요령도 없고 센스도 없다. 밖에는 나보다 잘하는 데다 센스까지 넘치는 젊은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니 내가 프로덕트 디자인에게 사랑받으려면 실력을 올리는 수밖에는 없다! 내가 디자인을 우러러보며 동경하는 만큼 나는 디자인에게 계속 구애를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떵떵거리면서 디자인을 후리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사랑하는 만큼 을이 되자


거만한 태도는 배움에 언제나 적이다.

뭐든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호기심과 자신감이 사그라들면 나는 의욕을 잃었다.

나는 또래에 비해 아주 느리고 실수도 자주 했기 때문에 지적을 많이 받아서이다.

남들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결국 내 실력을 드러내는 것을 피하곤 했다.

시키면 반이라도 간다는 이미지를 지키고 싶기도 했다. 언제나 뭐든지 중간 이상은 하는 놈이고 싶었다.


그런데 디자인한테는 이런 꼼수가 먹히질 않는다. 이 놈한테 나는 그저 널리고 널린 흔한 디자이너일 것이다.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녀석의 눈에 띄질 않으니 힘들어도 이벤트도 기획하고 기념일도 한 번 챙겨본다.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구애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오겠지.

언젠가 반드시 디자인이 내게 매달릴 정도로 매력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그날을 위해 몇 년간은 을처럼 바보처럼 말하는 감자처럼 헬렐레하고 나 몰라요 알려주세요를 시도해야지. 그렇게 스펀지처럼 많은 것을 배우고 멋진 디자이너로 거듭나야지.


이것이 새로운 꿈이 될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한 결과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성공 여하에 따라 양쪽 다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최선을 다하고 싶다.

디자인 자체는 목적이 아니고, 사실 디자인 마스터(?)가 되어서 나의 사업체를 운영해 보거나 유망한 사업체의 성장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그저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환경 문제나 사회 문제를 해결해 주는 프로젝트들에 재능 기부를 해서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꿈꾸고 공상하는 것은 나의 어쩔 수 없는 성향인 것 같다.

탈피를 처음 겪은 기분으로, 발가벗은 기분으로 나는 또 새로운 꿈을 꿔버리고 만다.

언제 다시 그 꿈을 저버리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탈피하는 것이 나의 종특이라면 그저 모든 과정이 행복하고 즐겁기만을 바랄 뿐이다. 껍질뿐인 꿈이더라도 멋지게 나의 성장을 전시해 나가는 삶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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