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히 일어나 손목 시계를 살핀다. 미밴드는 8시 50분을 띄우고는 픽 꺼진다.
해는 중천에 떠서 책상의 화분들에는 누런 볕이 내리쬐이고 있다.
다 먹고 빈 파스타 소스병에 담긴 수경재배 중인 스킨답서스에 눈이 부신 빛이 반사되면 눈을 찡그린다. 날씨 어플이 따로 필요없이 맑은 날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이나 엉거주춤 앉은 양 누워있는 양 비몽사몽하다가 몸을 일으킨다.
아침을 대충 먹고 베란다와 방에 있는 화분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보면 기상 시간 후 1시간이 훌쩍 간다. 그러면 약을 먹는다. 하루의 각성 정도를 조절해주는 이 약 없이는 하루가 늘어지게 졸리다.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이 졸음이 몰려오면 나른한 행복감에 빠져 현실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고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이 증상으로부터 나의 평범한 일상을 보호하려면 손톱 길이 만한 이 하얀 알약 한 개 반이 꼭 필요하다.
선택의 여지없던 주간 졸림이 약으로부터 구원받은 뒤 나는 비로소 평범한 삶의 시간을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졸린 순간 '아 졸리다'하고 생각을 한 뒤 졸음을 깨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움직이고, 걷고 물을 마시는 이 간단한 행위의 난도가 급격히 쉬워진 것은 덤이다.
이제는 더 선명하게 깨어있는 방도를 고민한다. 도파민을 분비시켜주는 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에서 깔깔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을 만난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사람들이 있을만한 곳으로 걷는다. 25년 남짓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람이야 말로 가장 흥미롭고 즐거운 존재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간 내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혼자만의 잠으로, 꿈 속으로 파고들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이며 걷거나 횡설수설하던 내 모습을 보던 주변인의 당혹스러운 표정, 그리고 밤에 얼마나 잤는지, 또 몇 시에 잤는지 등 나의 수면 생활을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각한다.
매일 계속되고 어느덧 그것이 나의 평판에 조금씩 물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기분은 어땠을 것 같은가?
절반의 절망스러움, 그리고 1/4 쯤은 학습된 무기력('난 원래 이런데 어쩌겠어?'),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충격으로 병을 진단받은 이후 한동안은 현실에서부터,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병을 숨겨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모두에게 나약한 자가 되어 기대고 싶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고, 병을 핑계삼고 싶었다.
그런 내게 건강상의 이유라는 말은 참 달콤한 변명이다. 약을 규칙적으로 먹기만 하면 나의 생활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약의 효과 너머에 몇 가지 개인적인 부작용이 있긴 했다.
지루함은 졸음으로 변모하지 않는 대신 나를 안절부절하게 했고 덩달아 약의 부작용으로 불안감과 조급함이 나의 학습된 무기력을 실행시켰다. 주간수면의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우면 좋을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공부를 해보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동아리를 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일과 병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얄팍한 패배감에 자존심이 조금씩 침식되었다.
약을 처음 먹고 신세계를 만난 날의
앞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는 약속.
그 약속을 나는 잘 지키고 있는걸까.
글쎄, 잘 모르겠다. 좀더 깨어있는 하루하루, 더 선명한 순간의 시간들을 나는 여전히 가만히 관찰하고 있다.
바위가 가득한 해안가에, 파도에서부터 멀찍이 떨어져 앉아 보석처럼 잘게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파도를 바라보듯이 두려움과 경외감이 담긴 눈으로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본다.
바위에 성겨있는 따개비에 발을 베일지도 모른다고, 어느 바위 틈에 발을 헛디뎌 빠져 영영 나오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몇 번이고 잔혹하고 끔찍한 상상으로 두려움을 만들어내면서도 그 호기심은 윤슬처럼 빛이 난다.
오늘의 이토록 느긋하고 무의미한 하루는 뭍을 거니는 산책인 것이다.
멀리 나의 해변을 나아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예행연습이다. 때로 뜀박질도 하고 헐떡이며 운동을 하기도 하면서 다리에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 한 발짝, 바다로 다가간다. 저 멀리 짙은 안개로 보이지 않던 수평선 너머의 섬도 가물가물 보이는 것만 같다. 소금기있는 바람이 간질이고 바다내음이 가까워지는 매 순간 파도가 크게 철썩이고 나는 뒷걸음질치고 만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내게 시간을 달라면서 다시 뭍으로 달음박질친다.
오늘 낮에는 느즈막히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다녀왔다. 세 권의 책을 반납하고, 두 권의 책을 대출한다. 라운지의 소파에 앉아 일본어 단어를 외우다가 졸음이 오자 얼마전 작성한 인생목표 계획서를 눈치보며 4부나 출력한다. 도서관을 나서고는 메가커피에서 정말 오랜만에 커피가 아닌 달달한 딸기스무디를 주문하고는 도서관 뒷쪽의 공원에서 빌린 책을 읽는다.
늦은 오후의 뜨겁지 만은 않은 보드라운 볕을 맞으며 다리를 꼬고 스무디를 쫍좁 마시고는 책을 읽는다.
완전히 집중하지도 못하지만 종이의 질감과 자연광이 종이를 비추는 그 색상,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의 소리와 감촉을 느낀다. 평생 들여다본 적도 없는 들꽃들을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애정을 심장에 고히 새긴다. 공교롭게도 나의 마음은 석상이 아니기에 더 빠르게 알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그 흔적이 흐려지겠지만, 감각을 초월한 한 가지 감상이 따듯하게 혈액을 타고 흐름을 느낀다.
정말 행복하다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큼은 이 무의미하고 허송한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자고 덧없이 다짐해본다.
내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실망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몇 번이나 실망시키고 상처를 주더라도
내게 주어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끊임없이 실패하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이 순간을 기억하자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그저 시간의 몫일 뿐이라고 무책임하게 웃어넘기기로 한, 우스꽝스러운 약속과 함께.
이제 어둑해진 밤의 바다는 두려움을 뛰어넘는 경외로운 아름다움을 띄고 있다.
언젠가 배를 끌고 저 너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예전같았으면 끝없이 감상에 젖어들다 잠들어버렸겠지만 적어도 요즘은 출항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배의 설계도를 그리다 잠이 든다. 이미 저 멀리 떠나가 영영 가까이 가닿지도 못할 타인의 선박의 실루엣을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어보이는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