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모두가 멀쩡한 책상을 당근에 팔아버리고 그 자리에 피아노를 두는 것에 의아해 했다. 이미 중고등학생 때도 더 좋은 피아노를 내내 손도 대지 않아 팔아치운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초등학생 때 1-2년 남짓 잠깐 피아노 학원을 다닐적에 내가 얼마나 연습을 싫어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었는지 기억하기에, 스스로 내린 이 충동적인 결정에 어디서 결단력이 나왔는지 궁금할 정도다.
어쨌든 나를 포함한 모두의 우려와는 다르게 나는 생활 속에서 꽤 자주, 정기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중고 피아노를 거래하기로 한 날, 운좋게 일찍 퇴근할 수 있어서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가요 악보를 6천원 정도에 구입했다. 사실은 클래식을 연주해도 좋을 것 같았지만 그런 악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가요 악보들이 몇 개 있어서 BTS 악보와 조금 고민하다가 여러 가수들의 노래가 수록된 이 책을 골랐다.
막상 구입해서 펼쳐보니 제대로 멜로디와 가사를 아는 노래는 엔플라잉의 옥탑방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첫번째 연습곡은 옥탑방이 되었고 1달 반 가량 일주일에 최소 2번, 많게는 매일 5번 씩 연습하면서 이제는 80% 정도는 암기해서 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집에 피아노가 있어도 거의 연습을 하지 않았었는데 성인이 되니 왜 이렇게 피아노가 재미있어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피아노 학원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칭찬받기 보다는 꾸중을 듣거나 지적받는 기억 뿐이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 기억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가 어찌되었든 이제 피아노 연주는 나의 새로운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옥탑방>에 이어 <바람이 분다>를 연습하고, 최근 들어서는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 치는 곡은 박자에 맞춰 손을 놀리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손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악보의 음들을 건반을 보지 않은채 손의 감각만으로 찾아가야 하는데, 음을 읽어내는 것과 별개로 손이 정확히 제 자리를 찾아 가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 처음 연습하는 곡은, 귀를 포기하고 그저 목표한 연습량을 채우는데 집중해야 한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 이토록 명료한 진리를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하면서 되돌아보게 되었다.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는 사실을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대개 연습은 즐겁지 않다. 연습이 즐거운 것은 그저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해내고 있다는 사실 뿐이어야만 한다. 완벽하지 않은 내 연주에 만족해서는 더 나아질 수 없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나 혼자만을 위한 연주에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내 목표는 언젠가 내 연주가 사람들의 일상 속 특별한 이벤트의 배경음악이 되어도 손색없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악보를 외우는 것은 물론, 상황에 따라 연주할 곡들을 적절히 꺼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곡들을 외워둬야 겠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서 즐겁다.
연주만이 다가 아니다. 전자 피아노다 보니, 여러 악기로 변주해서 연주할 수 있어서 이것저것 누르다보니 어떤 용도인지 아리까리한 버튼들도 많았다.
탐구심이 발동해서 이리저리 버튼을 누르거나 전원을 껐다켜거나 누르는 순서를 달리한다거나 해가면서 피아노의 버튼들에 90% 정도를 파악했다. 아직 왜 있는지 모르겠는 버튼도 있지만 말이다.
이제 반주하는 쪽의 악기만 다른 악기로 바꾸는 기능을 이용해서 연주하는 곡의 분위기에 따라 악기 조합을 맞춰가며 연습하게 되었다. 또다른 재미를 찾아냈다.
또 당최 왜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리듬 기능도 이리저리 활용해보면서, 새로운 곡을 연습할 때 가이드로 속도를 조금씩 조절해가면서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혼자 연주하다보니 당긴음 등 박자가 어려운 부분은 감으로 연주했었는데, 리듬 기능을 사용하니까 연습이 훨씬 잘 되는 것 같다.
지금 연습하는 악보의 모든 곡들을 칠 수 있게 되면, 지금 피아노를 처분하고 더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전자 피아노를 갖고 싶다. 가수들이 피아노를 이용해서 작곡하는 노습이 멋져보여서다. 지금은 박자를 맞추거나 악기 몇 개를 활용하는게 다지만 언젠가는 내 멜로디를 직접 써보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