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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18. 2023

아이가 목욕하고 난 물로 씻기

절약왕은 아니지만

카메룬에 와서 몇 달 지나고부터 아이가 씻고 난 물로 씻기 시작했다. 아이는 욕조에 물 받아 씻는 걸 좋아해서 집 구할 때에도 욕조가 있는 집을 가능한 고르려고 했다. 욕조에서 한참을 놀다 씻고 난 물을 한동안은 그냥 내버렸는데 물도 필터도 아까워서 그 물로 내가 씻기 시작했다. 아이는 매일 씻기 때문에 씻고난 후에도 물은 깨끗한 편이다. 그리고 정수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곳의 물은 필터를 일주일만 사용해도 시커멓게 변해버린다. 그래서 필터를 자주 가는데 아이도 씻고 나도 씻으며 필터를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아서 아껴보기 위해 목욕물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아이가 씻고 난 욕조. 2주만에 필터가 시커멓다.


그러고 보니 케냐에서도 그랬다. 물이 한 번에 데워지는 양이 정해져 있다 보니 아이가 씻고 나면 한참을 기다려야 온수샤워를 할 수 있었다. (온수샤워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다른 글에서) 그러다 보니 그때도 필터와 물이 아까워서 아이가 씻고 난 물로 씻곤 했다. 우리 집 물값은 집세에 포함되어 있어서 마음껏 써도 되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씻기도 힘든 사람들이 많은 케냐, 나이로비 한복판에서 마음껏 물을 펑펑 쓰는 것은 죄책감이 드는 일이다. 


소비단식도 하더니 이제는 절약왕으로 거듭나 짠순이가 된 것은 아닌가 싶으실 수도 있겠다.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환경이 주는 영향력에 대해서 놀라고 있을 뿐이다. 이 환경이 주는 절약정신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환경이 참 중요하다. 


예전 부모님 세대는 다 같이 아끼도 절약하며 저축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다른 것들이 중요한 분위기이다. 보이는 것들, 경험하는 것들이 중요한 세대에서 나 홀로 저축하며 절약하며 사는 것은 물결을 거스르듯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축과 절약을 위해서 혼자 하기보다는 미니멀 라이프나 무지출 챌린지 등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여 그런 약하지만 사회적 도움이 있는 편이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나 조차도 소비단식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브런치에 글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카드값을 0으로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한국, 그리고 서울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단식일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고 스트레스받고 촘촘한 관계들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서울이 얼마나 돈 쓰기 좋은 환경인지는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걸음만 걸어도 편의점, 스타벅스, 올리브영, 다이소 등등 수많은 곳에서 좋은 물건들이 각기 필요를 말하며 소비를 부추긴다. 그리고 SNS는 좋은 경험들은 절약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면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다. 


절대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껴 써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해 주는 물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지출 챌린지 같은 것들이 참 반갑다. 개인적으로는 가벼운 삶들이 이제는 더욱 유행하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을 더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도 더욱 흘러넘치면 좋겠다. 




Image by Mylén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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