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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19. 2023

10분만, 아니 20분만 쉴게요

재택근무의 기술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일과 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회사에서처럼 일하다가 커피도 마시고 동료들과 가벼운 이야기도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주말근무나 야근을 할 때에는 유튜브도 보고 딴짓도 많이 하지만 업무가 많은 요즘은 거의 쉴 새 없이 앉아서 일을 하곤 한다. 전력을 다해서 4-5시간 정도 일하고 나면 목 뒤가 뻐근하고 약간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좀 쉬며 일해야겠다고 검색을 하다가 트위터 및 sns에서 한동안 KNM법칙(?)이 유행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사실 4-50분 일하고 1-20분 쉬거나 하는 등은 의사들도 많이 권해주는 방법이긴 하다. 어찌 되었든 혼자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니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것들이 유행이라고 하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일을 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레이스를 길게 보고 자기만의 페이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들에 대해서 서로 권하고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 120시간... 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 


https://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99491.html


예전에는 프로젝트 성으로 며칠밤이고 새고 일을 하고 며칠은 늘어져 있는 것이 나에게 잘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 때 이야기였다. 졸업 후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며칠밤이고 새면서 일하고 며칠 쉬어보니 정말 몸이 말이 아니었다. 며칠 쉬는 동안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누워 있는 게 다였다. 오래도록 우리 선배들이 주 40시간 근무를 이뤄냈는지 여러 가지 노동법이 생겼는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또한 오랜 대학원 생활과 우울&불안장애를 거쳐 루틴 있는 삶, 규칙적인 삶이 얼마나 우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해외에 살고 있는 워킹맘(...)이라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을 사수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잠을 들려고 노력하고 하루 7시간을 자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일하다가 1-20분씩 쉬는 일이다. 1시간 일하고 10분 쉬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혼자 일하는 나도 어렵고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도 회사에서 힘들면 커피를 길으러 가서 창밖을 보며 조금 숨을 돌리기도 하거나 간식을 먹기도 했다. 밥 먹으며 수다 떨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재택근무자에게는 그렇게 한숨 돌리는 일이 공간적으로 쉽지가 않다. 밥도 일하며 먹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마당에 일하다 10분 쉬는 일을 루틴으로 가져가는 것은 쉬는 시간 종이 울리지 않고서야 쉽지 않다. 


더구나 쉬려고 잠시 누워 있으면 울려대는 슬랙에 답하느라 어느새 다시 앉아서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나마 집안일들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 세탁기가 나를 부르거나 밥 먹은 설거지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들이 나를 일으킨다. 그 외에는 사실 일하다가 쉬는 일, 잠시 눕거나 멍 때리는 일들은 쉽지 않다. 


일하는 시간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불안함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작년에 그다지 평가가 좋지 못했다.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일을 했지만 빠르게 변하는 스타트업 특성과 워낙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 더 비교되기도 하였다. 너무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평범함을 느끼며 좌절을 맛보았다. 잘하는 사람이 많아 평균이 높아져 있어서 나는 일을 참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을 못하면 열심히 오래 해서라고 그 갭을 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새벽에도 일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했잖아 위로했다. (일 잘하시는 분들 중에 나보다 더 많이 일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종종 위로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렇게 일을 못하는데 그만둬야지 하고 늘 그만두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 올해 개인적인 특별한 동기와 더불이 일이 할만해지고 좋은 동료들이 더해지면서 조금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함이 있다. 그런 불안함에 쉬지 않고 일하려고 한다. 슬랙 답변도 바로 하지 않아도 되는데 바로 하려고 하고 새벽에도 일어나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날이 다 무뎌진 도끼가 되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의 루틴을 더하기로 했다. 40분 일하고 20분이나 쉬는 것은 사실 나에겐 너무 불안하고 힘들 것 같아서 2시간 책상에 앉아 있으면 꼭 10분, 아니 20분이라도 일어나거나 눕거나 하기로 했다. 사실 20분 정도 커피 들고 잔디밭을 산책하거나 하면 좋겠지만, 집 밖에도 안 나가는데 어디 산책을 가겠는가. 다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집중력이 상당히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는 슬랙이 울려도 답하지 않는다. 사실 슬랙에 당장 답해야 하는 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나조차도 동료들에게 슬랙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답장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급하게 디자인 수정이나 카피 수정이 있어야 하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슬랙 메시지 확인은 하되 꼭 당장 내 확인이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20분 후 알람이 울리면 답장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게 잘 지켜지진 않는다. 어제도 나는 오전 7시 30분부터 11시까지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일을 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슬랙 답변할 것도 많고 기획서 정리하고 확인할 것들도 너무 많았다. 그렇게 11시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한국시간으로 저녁 7시가 넘으면 슬랙 채널이 좀 한가해진다) 숨을 돌리게 되었다. 3시간 넘게 일을 했으니 30분이라도 쉬기로 하고 누웠다. 어이구구 소리가 절로 났다. 30분 타이머를 맞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럴 때는 재택근무라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좀 더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좀 더 일하는 기술 쉬는 기술이 필요하다. 박사과정을 하지 않고 일을 했다면 지금쯤 더 나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나간 일들은 그대로 두고 지금에 충실하기로 한다. 자 이제 글 쓰며 쉬었으니 다시 일하러 가야겠다. 



Image by Free Photo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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