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박하 Apr 20. 2023

우울할 땐 불닭볶음면

일 못하는 나를 견디는 법

요즘 회사일이 많아 회사 관련 글을 계속 쓰게 된다. 약 2년 반전 시작된 지금 직장일은 나에게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일 못하는 나를 견디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비교적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대학원 생활과 병행하며 직장생활을 이어가면서 늘 우수한 평가를 유지했다. 대학원 졸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면서 직상 상사는 언제고 다시 돌아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커뮤니케이션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익히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전혀 모르는 분야에서도 금세 일을 배워 성과를 내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직장은 일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전혀 모르는 분야였지만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잦은 실수들로 오너십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정말 여러 번 그만두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나를 계속 이 회사에 머물게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일 못하는 나를 견디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실 누구에게나 못하는 시절이 있다. 나는 이전에 일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밖에 일을 못할까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지금에야 이해를 한다. 그도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던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최근 연속적으로 실수를 하면서 깊은 자괴감의 늪에 빠질 뻔했다.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위로해 주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자기 합리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추가적인 리소스가 들어가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 그때 한 번 더 점검하지 않았을까 후회하지만 그때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어마어마한 덩어리의 일을 한 번에 3개 정도를 처리해야 했는데 그냥 끝낸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칭찬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실수는 실수다.


오늘 문서들을 다시 정리하고 여전히 쌓여있는  일을 다이어리에 정리하고 걷기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회사에서 이런 실수를 하면 울면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 친정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며 엄마를 괴롭혔다. 혹은 남편을 괴롭혔다. 출근하는 남편을 붙들고 엉엉  적도 있다. 하지만  이상 소중한 이들을 괴롭히며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며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걷기다. 오늘도 일을 마무리하고 늪으로 빠지는 기분, 회사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기분을 멈추기 어려워서 노트북을 덮고 걷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집이지만 빨리 걸으면 제법 땀이 난다. 그렇게 숨이 좀 차면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가라앉는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 효과가 더 크다.


그리고 샤워를 해서 남아있는 우울을 녹여낸다. 아이가 씻고 난 물에 뜨거운 물을 더해 조금 오래 앉아 있었다. 욕조에 앉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인턴을 틀었다. 일하는 여자들, 특히 최선을 다해 일하며 견디며 울다 눈물을 닦고 다시 일하는 여자들을 보는 것은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오늘의 불닭볶음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불닭볶음면이다. 아껴둔 불닭볶음면 - 오늘은 까르보불닭-을 꺼내고 떡국을 끓이려고 불려두었던 떡 몇 조각도 꺼낸다. 물을 끓이고 에어컨을 튼다. 시원한 바람 아래에서 인턴을 마저 보며 불닭볶음면을 먹는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이제야 떠오른다.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쓴다.


이제야 다시 일을 마주할 마음이 든다. 이미 지난 간 일은 지나간 일로 넘기자. 이곳에서 얼마를 일하게 되었든 그저 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 좌절하며 보내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내일도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아파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를 돌보며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하루를 보내겠지만, 그 모든 삶의 순간들이 모두 소중하다.


나는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반전이 있다고 믿는다. 삶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언젠가 좋은 일들이 우리를 찾아올 거라 믿는다. 지금 이 직장에서의 고통과 눈물이 반드시 내 삶에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을 기대한다.



Image by 1388843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10분만, 아니 20분만 쉴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