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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07. 2023

밥 먹으며 일하지 않기

재택근무의 기쁨과 슬픔 

재택근무, 거의 100%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아이 여름방학 (방학이 2달)에 한국에 들어가면 아마 출근을 할 테니 100%는 아니다. 대부분 내가 카메룬에서도 일하고 있다고 하면 매우 놀란다. 재택으로 그것도 한국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은 내가 봐도 놀라운 일이다. 100% 재택을 지원해 주는 회사에 여전히 고맙다. 나 포함 비록 3명만 해외에 있고 다들 서울에서 일하지만 글로벌 회사는 글로벌 회사다. 


그럼 GMT +1의 국가에서 GMT +9의 회사에 다니는 건 어떤 생활일지 간단한 하루 일과를 적어본다. 


AM 2:00 - 알람을 끄고 다시 눕는다. 아 지금 한국은 벌써 10시지. 일어나야겠다 생각한다. 
AM 2:30 - 커피 한잔을 타서 자리에 앉는다. 지금은 밤일까 새벽일까 
AM 4:00 - 한참 일을 한다. 동료들은 이제 점심시간이라 하나 둘 자리를 비운다. 나도 커피를 새로타서 할 일을 처리한다. 
AM 5:30 - 주간회의가 시작된다. 아이가 일어난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회의를 한다. 내가 이야기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스피커를 틀어놓고 아이의 아침과 도시락을 준비한다.
AM 6:30 - 회의가 끝난다. 아이세수와 옷 입는 것을 도와주고 스쿨버스를 태워 보낸다. 
AM 7:10 - 한숨 돌리고 커피를 한잔 하며 밥을 먹는다. 쌓여있는 슬랙 메시지에 대답을 한다. 오늘도 일하며 아침을 먹었다. 
AM 7:30 - 헬퍼가 오기 전에 세탁기를 돌려둔다. 그래야 시간 내에 빨래가 끝난다. 
AM 8:00 - 내가 진행하는 미팅이다. 아이도 할 일도 없이 회의만 할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이다. 
AM 9:30 - 한국은 벌써 오후 5시, 커뮤니케이션할 것들은 미리 끝내야 한다. 
AM 10:00 - 한국은 이제 6시. 이제 왠지 나도 마음이 놓인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다시 정리한다. 
AM 12:00 - 오전에 가장 일이 잘된다. 점심 먹고 나면 어찌나 집중력이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PM 12:30 - 슬랙에 밥 먹는 표시를 걸어놓고 점심을 먹는다. 요즘은 김밥이 좋아서 채소 하나 넣은 김밥 두 줄을 먹는다. 유튜브도 보지 않고 멍 때리며 하늘 보며 먹는 걸 제일 좋아한다. 마음이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이 책상에서 밥을 먹기도 한다. 
PM 1:00 - 오후 근무를 시작한다. 혼자서 써야 하는 기획안이나 데이터 정리를 주로 한다. 아몬드 우유에 홍차를 넣어서 먹으며 제법 밀크티 맛이 나서 좋아한다. 아이가 안 먹는 쿠키와 함께 먹으며 일을 한다. 
PM 2:30 - 잠시 소파에 눕는다.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이 바로 일하다 언제든 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 누워 인스타도 보고 브런치도 보며 생각 나는 글들을 메모한다. 
PM 3:00 - 굴러가지 않는 맷돌을 굴려 오후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PM 3:40 - 이에 곧 있으면 아이가 온다. 일들을 마무리한다. 일은 끝나는 게 아니라 끝내는 거라고 했던가. 오늘도 꺼지지 않는 노트북을 잠시 절전모드로 돌린다. 
PM 7:30 - 아이가 돌아오면 같이 밥 먹고 씻고 숙제하고 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 7시 30분이면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가 없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 


이렇게 지내고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고 초저녁이면 잠이 드는 이전이면 상상도 못 할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재택근무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회사 출근도 그러하듯이. 


장점 1: 출퇴근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면 출근준비까지 해서 거의 3시간 정도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그 3시간을 대중교통에 있다 보니 대부분 인터넷 서핑하는 데 사용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나에게 3시간이나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장점 2: 언제든 누울 수 있다. 눕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일하다 잠시 누울 수 있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다. 오늘도 일하다 잠시 누워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장점 3: 옷&화장품 값이 안 든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면 아무리 옷을 안 사려해도 티셔츠나 셔츠, 하다못해 양말이라도 사게 되는데 재택근무, 그것도 사시사철 날씨가 비슷한 이곳에서는 늘 같은 티셔츠를 입고 화상회의에 들어가도 상관이 없다. 같은 모양과 색의 폴로 티셔츠 3장을 돌려 입으며 지내고 있다. 아마 여름에 서울에 가면 옷을 한두 벌이라도 사야 할 것이다. 

장점 4: 불필요한 에너지를 덜 쓰게 된다. 나는 내향형 인간이라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빨린다. 집에서는 12시간이고 일할 수 있는데 회사에 출근하면 최대 9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다. 


내 성향에는 장점만 있을 것 같지만 단점이 있다. 


단점 1: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나는 내가 올뺴미형 인간인 줄 알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아이와 함께 새벽에 일어나 지금은 일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고 있다. 교대근무를 하면 몸이 상한다고 하던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몸에 좋을 리는 없다. 머리도 저녁에 자고 그래도 5-6시에 일어나는 것만큼 막 잘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단점 2: 커뮤니케이션이 아무래도 어렵다. 옆자리에 있으면 같이 화면 보면서 물어보면 될 것을 정리해서 슬랙으로 물어보고 하는데 조금은 더 불편하다. 그래도 요새는 재택을 많이 해서 이 부분은 서로 이해하는 정도가 비슷해서 나아지고 있다. 비슷하게는 전체적으로 일 돌아가는 느낌, 사무실 공기 이런 것을 잘 몰라서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다. 

단점 3: 하루종일 일하는 느낌, 일과 삶이 구분이 잘 안 된다. 정말 하루종일 일하는 느낌이다. 집 밖으로 나가거나 누구 다른 사람을 만나지도 않으니 일과 아이, 남편 이외에는 뭐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면서도 일생각 일어나서도 일생각 일 생각뿐이다. 


아마도 재택근무의 가장 큰 단점이 삶과 일이 구분되지 않는 것일 것이다. 특히 지키기 가장 어려운 것이 밥 먹으며 일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밥만 먹는 것. 밥 먹으며 그냥 유튜브라도 보며 쉬는 것. 그게 가장 어렵다. 책상이 식탁인지 식탁이 책상인지. 나는 집에서 일하는지 일하는 곳에서 사는지 모를 때도 있다. 사실 나는 폭식증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많이 먹는다. 그런데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고 일하면서 먹으면 정말 정말 많이 먹는다. 밥을 먹은 건지 만 건지 할 때가 많이 늘 허기가 진다. 


일하며 먹기에는 김밥이 좋다. 4줄이나 먹어서 그렇지만. 


그래서 이것을 위해서 밥은 꼭 식탁에서 먹기로 했다. 물론 잘 지켜지진 않지만 그래도 노트북 앞에 두고 슬랙 답하며 밥 먹는 것보다는 "밥을 먹었다"는 느낌이 든다. 밥을 더 꼭꼭 씹어 먹을 수 있고 그래서일지 조금은 더 포만감이 든다. 하루에 김밥을 4줄이나 먹는 건 너무 많은 것 같다. 스트레스받으면 먹는 습관들이 조금씩은 나아지면 좋겠다. 


오늘도 일하다 쉬는 시간에 브런치 글을 다듬어 올린다. 재택근무의 장점이겠지. (회사에서 보면 단점이겠지만)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말이 오는 것은 반갑고 좋다. 내일은 2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두들 좋은 금요일 되시길! (오늘 Good Friday기도 하다. 카메룬은 휴일)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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