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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11. 2023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요

지난 목요일부터 아이가 아파서 계속 집에 있는 데다가 남편도 몸이 안 좋아 휴가를 내고 집에 머물렀다. 남편과 아이가 학교를 가고 헬퍼도 오지 않는 날이 일주일에 2일 정도 되어서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충분했는데 일주일가까이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해졌다.


그러자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왠지 불안해지고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으며 자꾸만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인데놀을 찾아 먹어야 했다.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되고 아이와 남편에게 잘해줄 수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자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이 더 필요했지만 혼자 있고 싶어서 새벽 아니 한밤중에 일어나 일을 했다. 피로도가 최고조에 오르기 시작하기 직전, 다행히 아이도 남편도 학교와 직장으로 향했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INFP이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아니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필요한 INFP이다. 사실 MBTI의 신뢰성에 대해선 충분히 검증되진 않았다. 구글에 MBTI의 신뢰성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글이 나온다. 하지만 유명한 사회 심리학 박사이신 우리 지도교수님도 MBTI를 좋아하셨으니 나도 의심 없이 믿기로 한다.


3남매 중 둘째이자 하나밖에 없는 딸로 태어나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딸이라는 이유로 가장 먼저 혼자 쓰는 방을 얻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줄곧 혼자서 방을 사용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에게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시키지 않아도 혼자 있는 게 중요하다. 가족과 함께 집에 있는 것, 특히 남편과 아이는 같은 집에만 있어도 어찌 되었든 신경이 쓰인다. 내가 챙겨줘야 하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 같다. 특히 아플 때 같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타인들과 도서관이나 카페에 있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으로 계산이 되는데 나에게 관심이 이 있는 사람들, 친구든 가족이든 함께 한 공간에 있으면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말이다.


그래서 신혼 초에 호기롭게 남편과 함께 쓰는 서재를 만들고 당황했었다. 카페에 가느니 집에서 남편과 같이 있으면 커피값도 아끼고 좋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이렇게나 불편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나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지만 불편하기 이를 때 없었다. 처음엔 내 성격에 문제가 있나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나는 진짜 혼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작은 책상을 침실에 들여서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했다. 그러고 나서야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우울증에 걸린 건 아마 혼자 있는 시간이 확보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긴 했지만 주된 이유는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면 잠시 나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오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면 아마 상태가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 혼자 일하는 해외 재택근무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는데 사실 나는 매우 만족하는 편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약간 어려운  빼고는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혼자 일하는 지금이  좋다.

오늘,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를 도와 아이는 학교에 가고, 남편은 회사로, 그리고 나는 집에 홀로 남았다.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을 가볍게 정리하고 책상에 앉는다. 음악도 듣지 않는다. 그저 선풍기 하나 켜고 커피 한잔에 쿠키  개면 충분하다.


이메일, 슬랙 메시지들과 구글문서들을 천천히 읽으며 일을 시작한다.


혼자 있어서 참 감사하다.



Image by StartupStockPhoto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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