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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27. 2023

나도 여행 가고 싶다

지구마블 세계여행을 보다가

요즘 제일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이 김태호 PD의 지구마블 세계여행이다. TV판은 카메룬에서는 볼 방법이 없어서 (넷플릭스에 안 뜬다), 유튜브 판만 보는데 정말 재미있다. 특히 원지의 하루를 좋아한다. 지구마블 세계여행으로 그녀의 영상들을 정주행 하고 있는데 여행지에서 누워 있는 모습이 예전의 나와 너무 닮아서 웃음이 났다.


혼자서 늦은 점심을 원지의 하루 영상을 보며 먹고 있는데 딸이 와서 "엄마 이거 왜 봐요? 엄마처럼 계속 누워있는데"라고 하고 가버렸다. 그렇다. 사실 글로만 보면 세상 열심히 사는 사람 같지만 틈만 나면 누워 있고 싶어 하는 게 바로 나의 가장 본모습이다. 누워 있을 수 있는데 왜 앉아있고 서있는가 늘 생각한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즐겨보기 위해 이런저런 결심들을 하며 힘겹게 노를 저어 나아가지만 역시나 가장 좋은 것은 누워 있는 것이다.


누워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역시 혼자 집이 아닌 좋은 숙소에 누워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원지 씨와 나는 좀 다른 점이다. 나는 먹는 것은 하루 종일 바게트 하나 뜯어먹어도 괜찮은데 숙소는 좀 좋고 안전해야 한다. 잠자리를 좀 가리는 편이라서 예산 내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찾는 편이다.


물론 예전 20대에는 길바닥에서도 자고 현지인들 집에 초대받아서 자기도 하고 몇 박 며칠 못 씻는 오지에서 쪽잠 자며 다닌 적도 많다. 돌이켜보니 20대의 젊은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 그때는 인도 빠하르 간지의 싸구려 호텔에 돌아가 불을 켜면 바퀴가 도망가도 아무렇지 않게 털고 그냥 잠이 들곤 했었다. 그러다가 이제 30대가 넘어가고 나니 그렇게는 못하게 되어버렸다. 부드러운 이불과 쾌적한 공기가 중요하게 되었다.


브루마블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는 편인 갈라파고스 편 (사진출처: 지구마불 세계여행)


지금 해외에 살고 한국을 오가며 비행기를 오래오래 타고 있지만 여행보다는 친정집을 오래 걸려 가는 느낌이라서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가본 적도 잘 없어 (남편과 내가 둘 다 일중독이다) 그나마 해외에 살지 않으면 다른 땅을 밟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이 가고 싶다. 혼자서. 예전에 완전히 혼자서 두번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가본 적이 있었다.  


대학교 3학년에 휴학을 하고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었다. 가장 저렴한 러시아 비행기 에어로플롯을 타고 갔었다. 비행기에서 긴장해서 밥도 잘 못 먹고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었다. 그곳에서 파는 도시락 라면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그리고 한밤중에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면 국적기 타고 낮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왜 돈 아낀다고 그렇게 무리한 일정을 정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전화를 받기로 한 사람은 전화도 안 받고 밤에 히드로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무섭지도 않고 신기했다. "오 영국에 혼자" 그때 어학연수비를 파운드로 두둑이 들고 있어서 자신이 있긴 했다. 안되면 날이 밝으면 택시 타고 시내 나가서 놀아야겠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생활을 시작했고 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좋은 호스트 가족을 만나 즐거운 홈스테이도 했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하루종일 고흐 그림 앞에 앉아 있기도 했었다.


하드를 뒤저 에티오피아 사진을 찾았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정말 맛있었고 하늘이 예뻤다.


그리고 직장인이   출장으로 에티오피아를 혼자 다녀왔었다. 이전에는 팀과 함께  움직이다가 혼자 다니니 밀려오는 두려움과 함께 아드레날린이 터져서 떠나기 전날 정말 한숨도  잤던  같다. 나이가 들어 겁이 많아진 건가 했다. 하지만 혼자서 환승 공항에 내려 6시간인가를 기다려야 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로움과 생경함이 여전히 생각난다. 그때는 한국에 폴카페가 없었는데 공항에 있어 반가워서 커피와 크로와상을 사서 먹었는데 내가 혼자 외국에 이렇게 있다니! 라며 감격했다.  후로도 여행은 긴장 가득했지만 그래도 내가 일로 다녔던 트립중에 최고였다.  시절다시 돌아간다면   여유 있게 즐겼을 텐데 여자 혼자라  쫄아서 밤에도   돌아다니고  것은  아쉽다. (다행인가)


낯선 공항에 내려 막막하고 생경한 느낌 두렵지만 설레는 기분. 온전히 혼자가 된 기분.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더 가벼운 가방을 꾸릴 텐데 (대신 지갑은 두둑이). 청바지 하나에 맨투맨에 바람막이 하나 입고 튼튼한 운동화에 배낭 하나 둘러매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 내 목표가 나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걷는 것인데 아마 10년 정도 지나야 가능할 것 같다. 아이가 고등학생쯤 되면 나를 좀 보내주지 않을까. (그때는 제발 가라고 하겠지 ㅎ)


나이 50에 다시 배낭을 메고 처음 가보는 공항에 내리면 어떤 기분일까. (스페인은 가본 적이 없다) 낯선 길을 낯선 사람들과 걷고 도미토리에서 자고 낯선 음식을 먹고 또 걷고 비를 맞고 하늘을 보고. 상상도 되지 않는 그날을 가끔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마음을 먹는다. 관절염이 생겨 못 가면 안 되니 말이다. 여행은 갔을 때보다 계획할 때가 더 즐겁다고 하던가, 역시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는 한국가는 거 말고 꼭 가까운 다른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를 가볼 예정이다. 물론 가족과 함께이지만 또 다른 생경함들이 내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드리라 믿는다.



Image by Pam Patters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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