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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29. 2023

매일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사치

개도국에 산다는 것 

"매일 저녁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매우 평범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저 문장을 충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지 이곳에 살면 새삼스럽게 더 느끼게 된다. 


일단 집이 있어야 한다. 

집이 없이 거리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거리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집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작은 움막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보면서 화장실은 어떻게 할까 밥은 어떻게 먹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그곳에서도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그래 이곳에도 삶이 있지 생각하게 된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


상수도 시설이 있어야 한다. 

길을 다니다 보면 빨래를 여전히 강가에 나와서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마트를 오가는 길에 작은 천이 있는데 그곳의 천을 따라 있는 난간에는 주말이면 빨래가 가득하다. 평일에는 나오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그래도 아마 주말이니 나와서 빨래를 해서 너는 것 같았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마을 곳곳에 옛날 우리 할아버지 댁에 가면 있던 수동 펌프가 있고 그곳에서 물을 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 저 물로 온 가족이 밥도 먹고 씻고 하겠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집을 수리해 주러 오시는 분들에게서 엄청난 발냄새와 체취가 났었다. 발냄새는 가고 나서 지나온 발자국마다 비누질을 해야 할 정도로 굉장해서 깜짝 놀랐다. 안 씻나 생각했는데 못 씻는 것이었다. 빨래도 씻는 것도 쉽지 않은 환경인 것이다. 그때부터 이들에게서 나는 냄새에 너그러워졌다. 


이곳의 집들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또한 샤워를 위해서는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 대학생 때 아버지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온 가족이 화장실을 집 밖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써야 하는 집에 산적이 있었다. 윗집 사람들과 함께 쓰는 화장실이었는데 늘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그 집 안에는 즉 화장실이 없었다.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에게 물었었다. "샤워는 어디서 해?" 바로 부엌이었다. 무슨 구조인지 부엌을 욕실에 만든 건지 욕실에 부엌이 있는 건지 모르게 요리공간 한구석에 샤워기가 있었다. 그곳에 세숫대야를 놓고 물을 받아가며 샤워를 해야 했다. 온 가족이 한 방에 누워 잤었던 시절이었는데 지금도 아빠는 그 시절을 미안해한다. 


지나다니며 보는 집들을 보면 안이 슬쩍 보이기도 하는데 작은 방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른 공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상수도가 쉽지 않아 보이는 구조의 마을에 샤워실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부엌에서 씻거나 할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물을 샤워할 만큼 데울 수 있어야 한다. 

이곳의 전기는 상당히 비싸다. 아마 전기가 공급되는 집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한 달 동안 쓰는 전기는 이곳 사람들의 한 달 월급만큼 나온다. 그냥 일상적으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쓰는 전기가 그 정도이다. 심지어 낮동안에 혼자 있어도 에어컨 없이 사는 편인데도 그 정도로 나오는 것은 전기 가격이 매우 비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집에서도 샤워를 하기 위해 물 데우는 온수기를 틀고 한 시간은 있어야 온 가족이 샤워할 만큼의 물이 데워진다. 그만큼의 전기를 끌어오고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곳도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소수는 그런 삶을 누리겠지만 대다수는 아마 그런 삶에서 멀 것이다. 


오늘도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며 생각한다.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매일 씻고 매일 옷을 빨 수 있다는 것, 이 평범함이 사실 어마어마한 사치인 것을 종종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내 삶에는 어려움도 많고 힘든 일도 많다. 하지만 하루만 전기와 물이 없어도 사라지는 평범함들이 사실 감사해야 할 것들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있으니 나는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지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들에 충분히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이곳에서 배우는 가장 큰 삶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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