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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Sep 21. 2023

새로운 도시에 적응하기

Mental Mapping과 Place attachment

한국에 들어온 지 꼭 3달이 지났다. 이 작은 도시에 내려온 지는 7주 정도 지났다. 이 도시에도 심리적 지도 (Mental Map)을 조금씩 그려가고 있다. 서울, 또 다른 지방도시, 나이로비, 야운데에 이어 5번째 도시에 지도를 그리고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Mental_mapping


심리적 지도는 자신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이다. 어디에 가면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어디에 가면 장을 볼 수 있고 이마트는 어디에 있고 도 아이 학교는 어디에 있는지 내가 느끼는 거리와 위치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아이 학교는 걸어서 5분 거리의 너무도 가까운 곳으로 느껴지지만 아직 찾고만 있는 아이 미술학원은 실제 거리상으로는 학교보다 가깝지만 아주 멀게 느껴진다. 이런 지도를 심리적 지도 (Mental Mapping)이라고 한다. 


나는 굉장한 내향형이라 어디에 새로 이사를 가면 심리적 지도를 그리는데 굉장히 오래 걸린다. 예전에 강원도 고성군에 살다가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 와서 한 달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동생과 오빠는 나가서 분식집도 다녀오며 떡꼬치도 사다 주고 엄마는 장 보러 다녀오곤 했지만 한 달을 내내 작은 빌라 내 방에 있고 나서야 집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보다 조금 더 빠르게 집 밖을 나서는 것이 필요했다. 이사 오자마자 주민센터와 학교에 전화학고 방문하고 서류들을 준비했다. 장을 보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나섰고 주소를 외웠다. 케냐와 카메룬까지 장장 6년 넘게 해외에 체류하다 보니 집에 없는 것 투성이었다. 이마트부터 다이소까지 누비고 다녔다. 아무래도 아직은 엄마가 아이의 교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도 나에게 보다 더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이의 한글과 수학교육을 알아보고 적응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도 나였다. 그러다 보니 이 도시의 이 동네에서 (동네를 잘 벗어나지는 않는다) 빠르게 맵을 그렸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직은 간단한 우리 동네 Mental Mapping 


프랜차이즈 커피숍 2곳: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보통은 집으로 다시 들어가 오전 집안일을 끝내지만 때로 집이 답답할 때면 동네 프랜차이즈 커피숍 2곳을 번갈아가며 방문해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놓고 있다 온다. 랩탑을 들고 갈 때도 있고 그냥 갈 때도 있다. 이곳에 머물며 3-40분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사실 여자 혼자 카페에 앉아 있어도 위험하지 않은 나라와 도시가 많지 않다. 나이로비에서도 특정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카페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야운데에서는 해본 적이 없다. (일단 혼자 차 없이 어딜 갈 수가 없다.) 이 브런치 글도 한 카페에 앉아서 쓰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고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자주 바뀌는 서울 도심의 카페들과는 달리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분이 일하시는 이곳에서는 단골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오픈시간에 맞춰서 몇 번 아메리카노를 먹었더니 무료로 사이즈 업을 해주시더니 가까운 곳에 사는지 등등 물어보기도 하셨다. 나 같은 내향형들은 그러면 그 후로는 가지 않게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을 꾹 누르고 종종 다니고 있다.


때로는 아이의 눈높이 수업과 이후의 스케줄 사이에 시간이 남으면 카페에 들어가기도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젤라토를 주문하고 같이 커다란 소파에 기대앉아 있으면 이 시간들이 꿈같기도 한다. 아이도 지나다니며 "여기 엄마랑 먹었던 아이스크림 파는 데다" 이렇게 이야기하며 자기 나름의 지도를 그려가고 있는 모습이 반갑기도 하다. 


맛있는 빵집: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앞에 있는 빵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기고 있다가 들어가는 게 아닌가. 사실 그 빵집은 볼 때마다 영업을 안 하길래 이제 문을 닫은 빵집인 줄 알았는데 아침에 아이 등교시키고 길을 돌아가다가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도 줄을 서보았다. 내가 볼 때마다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이미 빵을 다 팔아서 영업을 종료한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월의 종 스타일의 바게트와 사워도우들이 가득했다. 우유, 버터, 설탕을 넣지 않은 빵들이었다. 그 후로 단골이 되었고 아침에 종종 줄을 서곤 한다. 9시 오픈인데 10시만 되어도 빵이 동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서 가야 한다. 동네에 이외에도 맛있는 빵집들이 몇 군데 더 있는데 빵순이인 나에게 가장 감사한 일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눈높이센터: 아이가 학교 외에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외부 장소이다. 매일 2과목을 하기 때문에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아직 아이가 내가 기다려주길 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기다리곤 한다. 그러면서 기다리며 핸드폰만 하기에는 지루해서 책을 한 권씩 가져가는데 거의 1-2일에 한 권씩을 독파하고 있다. 집에 쌓여있던 안 읽은 책들은 이미 거의 다 끝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는데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되어 뇌도 즐겁고 감정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 예전부터 힘이 들면 책으로 도망치곤 했는데 늘 책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된다. 


병원: 이도시에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 찾던 곳이 바로 병원이었다. 매번 서울로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없기 때문에 좋은 병원을 찾는 게 중요했다. 같은 정신건강의학과라고 해도 선생님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절대적으로 좋은 곳이 있기도 하지만 나와의 핏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강남역에 있는 회사를 다닐 때 그곳의 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는데 높은 평점에 비해 상담의 결이 나와 안 맞아 진료실을 거의 뛰쳐나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병원도 조심스레 찾았는데 기존의 서울에서 다녔던 병원 선생님과 비슷한 느낌으로 잘 맞아서 지금껏 다니고 있다. 가장 감사한 일 중ㅇ 아니다. 


이 외에도 맛있는 국숫집과 급하게 필요한 것을 사는 이마트 에브리데이와 아이의 키즈카페와 다양한 식재료가 있는 조금 멀리 떨어진 이마트 등도 있다. 조만간 아이의 미술학원과 도서관도 맵에 그려질 것 같다. 아이도 남편도 각자의 맵을 그려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지역에 지내다 보면 그 장소에 대한 인식, 장소감(Sense of Place)이 생긴다. 그리고 일반적인 장소감 중에 긍정적인 감정들이 쌓이게 되면 장소애착(Place Attachmnent)을 가지게 된다. (Hashemnezhad, Heidari, & Mohammad, 2013) 특정 장소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도시에 살며 장소애착은 생기기도 하고 또 무너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가게가 없어지거나 불쾌한 경험을 하면 애착이 무너지기도 할 것이다. (Brown & Perkins,1992) 


이제 새로운 도시에 새로운 지도를 그리며 새로운 경험들을 쌓아간다. 애써 쌓아 올린 애착들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다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미 지도를 그린 많은 도시 들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가족의 지도가 넓어졌다는 것이니 또 감사하기도 한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현재, 이곳에서 감사하며 지내보려 한다. 



Brown, B. B., & Perkins, D. D. (1992). Disruptions in place attachment. In Place attachment (pp. 279-304). Boston, MA: Springer US.

Hashemnezhad, H., Heidari, A. A., & Mohammad Hoseini, P. (2013). Sense of place” and “place attachment. International Journal of Architecture and Urban Development, 3(1), 5-12.     



사진: UnsplashGeoJango M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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