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값 모아 집사야지

집밥 30일 챌린지: 자잘한 소비 챙겨보기

by 서박하

'퇴사하겠습니다' 작가 에미코의 책과 다큐를 본 이후로 다시 한번 삶의 나사를 조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 소비단식일기에서도 밝혔지만 몸과 마음이 아플 때는 무리해서 소비단식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치료를 받고 서서히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나도 약을 먹고 있지만 상태가 매우 호전되었고 삶도 안정이 되어서 이제는 다시 한번 삶을 정돈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집밥 챌린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집밥 챌린지를 하며 외식과 배달 다음으로 줄이게 되는 것은 역시나 커피다.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는 단골카페에서 마시는 아침 시간의 커피를 당분간 줄이기로 했다. 집에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는데 캡슐 하나에 500원 정도 한다. 하루에 3샷 정도,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정도의 카페인이 필요한 나는 하루에 1500원이면 커피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물론 단순히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그곳의 분위기 시간 여유가 필요하기에 가는 것이다. 하지만 30일 정도 카페 못 간다고 큰일 나지 않을 만큼 건강해졌기 때문에 30일만 가지 않아 보기로 했다.


물론 약속이 생기면 갈 수도 있겠지만, 이 신도시에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대학원 동문들이 좀 살긴 한다. 이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너무 버거운 날 혼자 찾아가지 않는 이상 30일 동안은 아마 카페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단골 사장님이 궁금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늘 가면 케이크니 빵이니 챙겨주시는 다정한 사장님이 계신데 이곳에서 생긴 소중한 인연이다. 그래도 30일만 참아보기로.


내가 마시는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는 5000원이다. 하루에 1500원으로 커피를 해결하면 3500원을 아낄 수 있다. 주말 제외 20일 정도니 7만 원 정도를 아끼게 되는 것이다. 7만 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장을 1-2번 정도 보고 일주일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돈이다. 3500원이면 캡슐을 7개나 더 살 수 있다. 커피 한잔이면 캡슐 한 줄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간 밖에서 커피 먹다 남긴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KakaoTalk_20231024_092917501.jpg 오늘도 네스프레소를 마시며 이 글을 썼다.


사실 나는 커피값도 아껴서 부자가 돼야지 보다는 아낄 시간에 한잔 들이켜고 그 힘으로 열심히 일하자는 주의로 살아왔는데 그간의 경험으로 아끼지 않으면 돈이 절대 모이지 않았다.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태도가 돈을 가져온다. 커피 한잔을 먹지 않는 것은 단순히 3-4000원을 아끼는 것을 넘어서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사지 않게 해주는 시작이 된다. 커피 한잔 사 먹는다고 당장 샤넬백이 가지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3-4000원을 대수롭지 않게 쓰기 시작하면 보태 보태 병이 쉽게 찾아오고 그러다 보면 소비와 할부가 함께 춤을 추게 된다.


한국에 돌아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가장 먼저 외모를 좀 돌보기 시작했었다. 지금도 그 부분은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서 소비가 좀 늘었었다. (이 부분은 이후에 하나 더 쓰려고 정리해보고 있다.) 피부가 너무 엉망이라 거울 보기도 싫었고 밖에 입고 나갈 옷들도 없다고 느껴졌었다. 그래서 화장품을 사고 옷들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당한 가격의 제품들을 구입했는데 한두 개 사다 보니 자꾸자꾸 더 사고 싶어 졌고 더 좋은 브랜드 옷들이 입고 싶어졌다. 직구를 하다가 가짜가 배송 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밥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이제 옷을 그만 사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옷이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티셔츠 3-4개와 단화 하나,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스웨트셔츠와 니트, 편한 바지와 양말 등을 구입했다. 얇은 패딩 점퍼도 하나 샀다. 삶의 나사가 조여지니 자존감이 올라간 걸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는 있는 옷들을 돌려 입으면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매일 들여다보던 핀터레스트도 흥미가 뚝 떨어졌다. 통장 잔고를 살피기 시작했고 커피값도 가계부에 적어가기 시작했다. 인과관계를 명확하지 않지만 어느 한쪽이든 풀리기 시작하면 주르륵 풀려버리고 한쪽을 챙기기 시작하면 줄줄이 다시 정리가 된다.


30일이 지나고 나면 일주일에 한잔 정도는 마실 수도 있겠다. 특히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는 카페에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도 고프다. 이번주에는 꾹 참고 돌아와 네스프레소 버튼을 눌렀다. 카페에서만 글이 잘 써질 줄 알았는데 집에서도 제법 글이 잘 써졌다. 30일이 지나 내 소비들이 이제 제자리를 되찾고 뭐가 되었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고 그러면 이 신도시든 어디든 우리 집도 사고 딸의 소망대로 고양이 2마리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UnsplashDevin A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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