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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Oct 25. 2023

마음이 힘들 땐 각질제거를 하자

나를 돌보는 일, 마음을 돌보는 일 

파마를 한 지 1년여쯤 지났을까 각질제거를 언제 한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산 고무줄 면바지에 매일 집에서 입는 네이비 티셔츠를 입고 한국에 들어왔다. 대충머리를 묶고 앞머리만 직접 자르며 지냈다. 카메룬에서의 생활은 돌이켜 보니 생존에 가까웠다.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일하며 아이돌보며 버티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관심을 줄인일이 외모를 가꾸는 일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들이켜고 일을 시작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회의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 하교 시간이다. 정신없이 저녁 먹고 잠이 들고 다시 새벽에 눈을 뜬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만을 하면서 지냈다 보니 모공도 너무 커져있었고 이제 새치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흰머리들이 머리를 가득 덮고 있었다. 


집을 구하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적당한 화장품과 옷들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한 번도 쓰지 못했던 클렌징 오일을 꺼내서 얼굴을 문질렀다. 그리고 각질 제거제를 사용했다. 화이트닝 효과가 있다는 앰플도 구입해 보았다. 요즘에는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피부관리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인지 아니면 한국의 물이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피부가 빠르게 회복되었고 밝아지게 되었다. 늘 하나로 묶던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했다. 늘 비누로만 머리 감고 말았는데 감고 나서 헤어오일도 좀 바르게 되었다. 핸드크림은 손이 끈적여서 싫어했는데 좋은 핸드크림을 쓰면 그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옷을 몇 벌 구입했다. 바지는 이미 많은 것 같아서 티셔츠 몇 가지와 가을에 입을 니트와 스웨트 셔츠를 구입했다. 얇은 재킷도 하나 구입했다. 기본 신발은 이미 충분하여 구입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요즘 유행하는 느낌과 내가 추구하는 느낌들 (놈코어라고 하던가)에 맞춰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벌의 착장을 맞춰 ㅇ입고 나가니 시간도 절약되고 또 더 이상 내 옷이 초라해 보이거나 그러지 않아 마음에 평안이 더 찾아들었다. 


그렇게 내 외모를 조금은 가꾸기 시작하자 마음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귀찮지만 패드로 얼굴을 닦고 에센스를 바르고 크림까지 꼼꼼하게 바르는 일. 주기적으로 팩도 하고 마사지도 해주는 일. 좋아하는 셔츠와 바지, 예쁜 양말을 신는 일. 사소하지만 나를 위해주는 일들을 해주기 시작하자 내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지 시작했다. 조금씩 옅어지는 기미를 보며 '아 안 되는 건 없구나' 생각했다. 


뭐든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피부도 외모도 능력도.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여겨졌었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인생 앞에 무력했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없었다. 타고나기를 안 좋은 피부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나아지는 얼굴을 보며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면 좀 이상할까. 


물론 외모를 가꾸는 일은 자기만족과 타인의 시선 그 어디쯤에서 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타인을 너무 신경 써서 나 자신을 넘어선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하지만 사회생활과 적당한 자신감을 위해 나를 가꾸고 관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소비단식을 하면서 또 직장생활이 치이면서 나를 돌보는 일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나를 가꾸고 투자하는 일, 자기 계발의 또 다른 부분이라는 것을 이제야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균형이 중요하다 과소비로 넘어가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다. 소비의 연쇄작용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주변이 금세 흐트러진다. 방도 엉망이 되고 세수도 안 하게 된다. 당장은 약을 먹고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후에 삶을 돌보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아침에 해 뜨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방을 치우는 일들이 삶을 유지하고 살아내게 한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먼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꼼꼼하게 화장품을 바르고 선크림을 발랐다. 남편의 도시락과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고 좋아하는 가을옷을 입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돌아와 집을 정돈하고 손에는 핸드크림을 바르고 좋아하는 양말을 신고 책상에 앉았다. 이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사진: Unsplash의 Kalos Skin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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