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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Oct 19. 2023

퇴사 후 4개월

2년 6개월 회사생활 회고 (1)

6월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나는 카메룬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시간으로는 오후였다. 유달리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던 새벽, 이메일이 왔다. 회사에서 온 중요메일이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열어보니 지금부터 30분 이후부터 회사에서 일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일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2021년 1월부터 다닌 회사였다. 케냐와 카메룬, 한국을 오가며 눈물로 매일 Todo list를 써 내려갔었다.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적혀있는 다이어리가 내 책상에 놓여있었다. 주 중에는 큰 프로모션도 예정이 되어 있었다. 이미 몇 달 전에 마무리했어야 하는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도 이번주에는 마무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회사 노트북을 열어보았다. 이미 계정이 닫혀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슬랙도 닫히고 구글도 닫혔다. 


대학원 동기들 이외에는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대학원동기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렇게 회사는 문을 닫았고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 4개월이 지났다. 나의 퇴사 이외에도 남편도 예정되어 있는 퇴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갑자기 2명다 백수가 되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짐을 꾸렸다. 예정되어 있던 귀국이지만 상황은 많이 달랐다. 모든 상황을 어떻게 가족과 지인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고 이제야 한숨 돌리며 이 시간들을 회고할 수 있게 되었다. 


CS와 문제해결능력 

처음에 마케팅 팀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마케터들이 돌아가면서 CS를 하고 있었다. 저녁부터 새벽시간을 담당해 주는 지구반대편의 아르헨티나 직원 이외에는 한국직원들이 영어로 CS를 했다. 글로벌 회사고 한국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서비스를 론칭하지 않아서 영어로 진행을 했는데 그 바람에 영어 쓰기가 일취월장했었다. 또 들어가자마자 서비스에 대해서 빠르게 익혀야 해서 회사에 대해서 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CS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불편해하며 연락을 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나오시는 분들도 많아서 그 부분을 달래 드리고 하는 부분이 참 어려웠다. 또 영어도 쉽지 않은 데다가 전혀 모르던 분야의 회사여서 용어부터 익숙했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CS를 잘 못했다. 매뉴얼에 있는 것 이외에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빠르게 문제를 슬랙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뜬금없는 문제들에 요청받는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의 전임자가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보았다. 물론 그는 거의 창립멤버라 이 서비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해결능력도 있었다. 그처럼 해결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제를 단지 전달하는 것 넘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확실한 대안은 아니더라도 이전에 CS케이스들을 보고 (전임자가 잘 정리해 두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대안을 들고 선임에게 물어봐야 했다. 단지 "이렇게 물어보는데 답을 뭐라고 하죠?"가 아니라 "이렇게 물어보는데 1. 000이라고 하면 될까요? 2. 000이라고 하면 될까요? 아니면 혹시 다르게 해야 할까요?"라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CS뿐 아니라 업무 자체에 다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중요한 역량 중의 하나가 문제해결 능력이다. 그냥 문제를 전달하고 윗사람의 지시만 기다리는 것은 안된다.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스스로 적용해 보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회사도 많다. 나도 대학원에서 늘 교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나하나 하다 보니 그런 능력이 사라져 버렸었다. 그래서 처음에 회사에서도 교수님께 하듯이 일일이 물어보며 하다가 결국 해당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듣게 되었다. 수동적이라는 피드백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던 나였는데 어느새인가 수동적이고 시키는 것만 완벽하게 하려는 습관이 자리 잡아 있었다. 이것저것 탐구하고 도전하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조금씩 몸에 박힌 내가 가진 습관들을 깨 가기 시작했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지네요 :)

2편에서 계속됩니다. 



사진: Unsplash의 LYCS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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