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박하 Jul 16. 2020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다

우울&불안장애 치료기 (1)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차로 뛰어들던지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것 같았다 버스사고라도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날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했다. 병원은 가까운 게 좋아서 멀지 않은 곳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집 가까이에 있는 병원을 다니면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볼까 봐 걱정이 되어서 어디로 다녀야 하나 계속 찾았었다. 이번에 등록한 코워킹 스페이스 근처에 왠지 홈페이지가 마음에 드는 병원이 있어서 예약하고 오후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직장인들이 많은 을지로-종로 쪽이라서 뭐랄까 깔끔해 보이기도 했고 직장인들도 많이 오는 곳일 것 같았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앉아서 대기를 했다. 자그마한 곳이었고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되는지라 대기 환자가 많지는 않았다. 앉아서 기다리면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걱정을 했다. 선생님이 불러서 들어갔다. 생각보다 더 다정하고 온화한 선생님이셨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울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결국 눈물을 꾹꾹 흘리며 이야기를 했다. 사실 논문 작업을 좀 쉬다가 방문한 터라 상태가 엄청나게 심각하진 않았는데 아마 교수님 미팅 후나 논문 작업 중에 방문했으면 더 심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실 병원을 좀 더 일찍 갔어야 했다. 작년에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냥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쉬어도 논문은 끝나지 않으니 내 증상은 그냥 일시적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논문 작업만 시작하면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내던지고 싶으니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러다가 자살은 아니어도 자해까지 갈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다정하게 이것저것 묻고 내 증상을 설명해주었다. 논문은 말도 안 되고 기본적인 집안일도 힘들 거라고 했다. 내 책상 정리가 안되는 거 다 이유가 있었다. 


중증 우울증에 중증 불안장애였다


우울증은 중증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아마 논문을 쓰던 중간에 갔으면 최고 수준이었을 것이다.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약이 필요 없이 상담만으로도 괜찮다고 하면 더 싫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상담을 받았다가 더 화가 났던 경험 때문이다. 사실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간 거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당분간 치료 중에는 큰 결정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휴학 이혼 이직 퇴직 등등.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당분간 그만두지 못한다니 복잡한 심정이었다. 불안장애 약과 항우울제, 그리고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수면제라니. 나는 밤에 잠을 다들 못 자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기 엄마들은 다 잠 못 자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면 한국 들어와서 6-7시간 정도 자면서 밤에 적어도 1-2번은 깨는 것 같다. 아침에 늘 피곤하지만 낮잠을 자려고 누우면 심장이 쿵쾅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고 싶은 시간 30분 전에 약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Photo by Yuris Alhumaydy on Unsplash


병원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수면제까지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구나 이게 뭐람. 햇빛이 찬란한 을지로와 종로대로를 걸으며 엉엉 울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도 안 쓰였다. 눈물을 닦고 집에 와서 약을 먹었다.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오늘은 푹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2019년 6월 시작된 치료 일기입니다. 현재도 치료 중이지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