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불안장애 치료기 (1)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차로 뛰어들던지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것 같았다 버스사고라도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날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했다. 병원은 가까운 게 좋아서 멀지 않은 곳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집 가까이에 있는 병원을 다니면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볼까 봐 걱정이 되어서 어디로 다녀야 하나 계속 찾았었다. 이번에 등록한 코워킹 스페이스 근처에 왠지 홈페이지가 마음에 드는 병원이 있어서 예약하고 오후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직장인들이 많은 을지로-종로 쪽이라서 뭐랄까 깔끔해 보이기도 했고 직장인들도 많이 오는 곳일 것 같았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앉아서 대기를 했다. 자그마한 곳이었고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되는지라 대기 환자가 많지는 않았다. 앉아서 기다리면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걱정을 했다. 선생님이 불러서 들어갔다. 생각보다 더 다정하고 온화한 선생님이셨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울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결국 눈물을 꾹꾹 흘리며 이야기를 했다. 사실 논문 작업을 좀 쉬다가 방문한 터라 상태가 엄청나게 심각하진 않았는데 아마 교수님 미팅 후나 논문 작업 중에 방문했으면 더 심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실 병원을 좀 더 일찍 갔어야 했다. 작년에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냥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쉬어도 논문은 끝나지 않으니 내 증상은 그냥 일시적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논문 작업만 시작하면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내던지고 싶으니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러다가 자살은 아니어도 자해까지 갈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다정하게 이것저것 묻고 내 증상을 설명해주었다. 논문은 말도 안 되고 기본적인 집안일도 힘들 거라고 했다. 내 책상 정리가 안되는 거 다 이유가 있었다.
중증 우울증에 중증 불안장애였다
우울증은 중증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아마 논문을 쓰던 중간에 갔으면 최고 수준이었을 것이다.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약이 필요 없이 상담만으로도 괜찮다고 하면 더 싫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상담을 받았다가 더 화가 났던 경험 때문이다. 사실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간 거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당분간 치료 중에는 큰 결정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휴학 이혼 이직 퇴직 등등.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당분간 그만두지 못한다니 복잡한 심정이었다. 불안장애 약과 항우울제, 그리고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수면제라니. 나는 밤에 잠을 다들 못 자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기 엄마들은 다 잠 못 자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면 한국 들어와서 6-7시간 정도 자면서 밤에 적어도 1-2번은 깨는 것 같다. 아침에 늘 피곤하지만 낮잠을 자려고 누우면 심장이 쿵쾅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고 싶은 시간 30분 전에 약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병원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수면제까지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구나 이게 뭐람. 햇빛이 찬란한 을지로와 종로대로를 걸으며 엉엉 울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도 안 쓰였다. 눈물을 닦고 집에 와서 약을 먹었다.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오늘은 푹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2019년 6월 시작된 치료 일기입니다. 현재도 치료 중이지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나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