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스타벅스
너무 맹렬하게 살았다. 내가 생각해도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아침에 5시에 일어나 10시에 잠들 때까지 1분 1초가 아까울 새라 노트북을 두드리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밥을 했다. 그러다가 독감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사이사이 작은 일들도 받아서 한두 시간이라도 꼭 일을 했다. 그러다 보면 조용히 현타가 올 때가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물론 많은 목표들이 있다. 커피값 아껴서 집도 사야 하고 아이 교육도 시켜야 하고 하고 싶은 재미있는 일들도 너무 많다. 최근에는 새로운 도전들을 위해서 교육도 받고 시험도 치고 또 워드프레스로 뚝딱거리며 홈페이지도 만들고 있다. 냉장고 청소도 해야 하고 집밥 도 해 먹어야 하고 아이 학원 픽업도 해야 한다. 정말 이렇게 열심히 사는 나 자신에 도취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아프면 안 되니 밥도 꼭꼭 씹어먹고 비타민도 잘 챙겨 먹고 틈틈이 스트레칭도 열심히 한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도 잘 챙겨 먹는다. 하루를 꽉 채워 살고 일하듯 잠들고 일어나 새벽에 일어나 아메리카노를 내려서 책상에 앉으면 그때야 한숨을 좀 돌릴 수 있다. 하루 할 일을 이것저것 적고 나면 내 욕심만 앞서도 다할 수도 없는 것 아닐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나이 40대에 이미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더 배워야 할 것들도 정말 많다. 특히 IT분야는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배워 나가고 있다.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좀 쉬려다가도 작은 일들이 들어올 때면 지친 몸을 일으키고 할 수 있다고 메일을 보내고 급히 일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조용히 현타가 올 때면 생각한다. 내일은 토피넛라테 사 먹어야지.
정말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면, 그래서 지쳤다면, 토피넛 라테를 마셔보자. 겨울엔 토피넛 라테, 그 외에는 캐러멜 마끼아또를 마신다. 우유만 오트로 변경하면 딱 좋다. 우리 동네에는 스타벅스가 없고 집에서 1km 정도 걸어가야 스타벅스를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갈 때만 가는데 요즘처럼 일이 많고 하루를 꽉 채워살 때면 가끔 토피넛라테를 생각하며 힘을 내곤 한다. 칼로리도 높고 가격도 비싸지만 그래도 이런 낙에 내가 일을 하지 생각할 수 있도록 달달한 여유를 나에게 준다.
커다란 목표들도 너무 중요하다. 삶은 길고 때로는 커다란 목표들이 우리 심장을 뛰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큰 그림을 그리게 하지만 그 지점마다 놓여있는 작고 귀여운 토피넛라테들도 필요하다. 스타벅스 톨사이즈 토피넛 라테의 가격은 6,300원. 오늘 처리한 작은 일이 $6. 토피넛라테 한잔 정도는 마실 수 있다. 집밥 챌린지도 좋고 냉장고 파먹기도 좋고 매일같이 스프레트 시트에 적어가며 크고 작은 번역일을 하는 것도 이력서를 160개째 넣는 것도 좋다.
그렇기에 때로는 조금, 너무 길게 쉬면 감이 떨어지니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토피넛 라테를 마시는 시간, 그리고 멍 때리며 바깥을 볼 수 있는 시간 1시간 동안 한일도 해야 할 일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토피넛라테를 마시는 것에만 집중한다. 물론 다른 잡념들이 많이 떠오른다. 나는 타고나길 공상가라 오만가지 생각들을 그냥 두면 정말 지구 끝까지 생각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마시막 토피넛라테 한 모금을 마시고 노트북을 펼친다. 그리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온다. 일할 수 있음에 할 일이 많음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