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잘 굽는 채식인

채식 생활 근황

by 서박하

여전히 90% 채식인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에는 나물에 현미밥, 샐러드 먹으면서 지낸다. 물론 떡볶이도 먹고 불닭볶음면도 먹는다. 현미밥에 샐러드, 나물만 먹으면 금방 5kg은 뺼거 같은데 떡볶이와 김밥, 불닭볶음면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아침에 크림치즈 없이 베이글만 먹고 점심에는 현미 나물 비빔밥을 해 먹었다. 참기름이 채식이라 정말 다행이다.


사실, 평소에 식사의 70% 정도는 집밥을 먹기 때문에 채식인이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가끔 가아끔 채식요리가 아닌 것들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가장 생각나는 게 쌀국수이다. 국물에 숙주, 양파만 먹으면 채식이 아닌가 싶지만 바로 육수가 대부분 고기 육수라 너무도 채식요리가 아닌 요리이다. 볶음 쌀국수 같은 걸 먹으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는 정말 참기가 힘들다. 태국이나 베트남 현지에는 채식 쌀국수 요리들이 있다는데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좀 힘들지 싶다.


동네에 저렴한 쌀국수 배달 집이 있어서 아이와 남편이 가끔 시켜 먹을 때 숙주와 면만 약간씩 먹는데 맛이 좋다. 아이와 남편은 육식인들이라 쌀국수에 들어간 고기를 놓고 싸우기도 한다. 남편은 분짜요리를 좋아하기도 한다. 나도 분짜에 있는 고기는 안 먹고 면만 소스에 찍어서 조금 먹는다. 집에서 먹는 거야 내가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외식이나 배달요리에서 채식요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샐러드 같은 것들도 다 단백질들이 들어가야 하니 연어나 닭고기, 소고기들이 올라간다. 치즈 소스나 크래미, 날치알 등이 들어가기도 해서 샐러드조차 완전 비건 메뉴는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연어를 정말 너무 좋아해서 혼자서 1kg 가까이 먹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얼마 전에 집에서 포케를 만들어먹어 보다가 한번 연어도 넣어볼까 하고 넣었는데 비려서 체하고 말았다. 이제 입맛이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다. 요즘에는 포케나 샐러드 가게에서 두부가 올라간 옵션으로 비건 메뉴가 있긴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


처음에 채식 생활을 시작하고 치즈와 요구르트 끊는 게 참 어려웠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먹는 치즈는 안 먹게 되었다. 다만 좋아하는 마르게리따 피자에 올라간 치즈 만은 줄이는 게 어렵다. 예전에 그릭요구르트에 그래놀라에 꿀 넣어서 먹는 걸 가장 좋아했는데 이제는 풀무원에서 나오는 비건 요구르트에 그래놀라를 넣어서 먹고 있다. 비건 요구르트는 마트에는 안 파는데 쿠팡에는 팔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먹어보시길. 육식인인 남편도 맛있다며 잘 먹어서 항상 사는 품목 중의 하나이다.


얼마 전 친정에서 아빠 생신으로 모였었다. 친오빠가 회를 사줘서 근사한 회가 잔뜩 있었는데 다들 맛있다고 먹는데 나는 몇 점 먹고 못 먹었다. 대신 엄마가 해준 맛있는 나물들을 잔뜩 먹고 왔다. 남편은 신혼 초에 치킨에 스테이크, 연어를 즐기던 나는 어디에 갔냐며 신기하다고 한다.


주변 가족들은 내가 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조금은 불편해하기도 한다. 대부분 가족 모임에는 고기가 있으니 말이다. 단백질 걱정도 하시고 여러모로 한국에서 골고루 먹지 않는 것은 문제가 많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나는 잔병치레도 적고 건강하고 살도 빠지지 않으니(!)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지 않으신다. 내가 채식인에 41kg 즘 나갔으면 아마 잔소리가 대단했을 거라 생각한다. 걱정을 좀 들어도 좋으니 살이 좀 빠지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이기적일까.


남편은 내가 채식생활 하는 것을 신기해하지 전혀 불편해하지는 않는데 그건 내가 고기요리를 늘 잘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과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삼겹살이고 나는 삼겹살을 정말 잘 굽는다. 먹지 않고 주로 굽다 보니 점점 더 잘 굽게 되는 것 같다. 제육볶음이나 갈비찜, 불고기도 정말 잘한다. 사실 다 양념맛이라 양념만 간을 보면 되기에 잘 만들어서 주고 있다. 늘 고기를 구우면서도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한국에서 고기를 제일 잘 굽는 채식인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사진: Unsplash의 Chantal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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