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밤새서 일하기

잘하는 일을 잘하자

by 서박하

오랜만에 밤을 새웠다. 완전 밤을 잠을 안 잔 것은 아니지만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일하며 동트는 것을 보았다. 사실 밤을 새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잠 들고나서 얼마 안돼서 중요한 이메일이 와서 답장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 깨버렸다.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리 하기로 하고 앉아서 열심히 번역을 했다.


사실 번역만 하는 것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늘 워드로 문서작업까지 해야 할 경우에 기존에 클라이언트가 만들어준 문서와 싸우는 일이 늘 더 어렵다. 지난번에도 번역은 하루 만에 다 하고 포매팅만 거의 2일이 잡아먹어서 마감일 전날에야 겨우 끝났었다. 하루 만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보통 마감일 48시간 전에는 보내는 편인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랜만에 밤을 새우니 정신이 더 맑고 또렷한 것이 기분이 묘하다. 직장 생활하며 대학원 다닐 때는 졸음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너무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밤새는 날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밤을 새워서 일할 때는 최근에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데 효과가 좋다. 에너지 드링크라는 것 자체를 처음 마셔봤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놀라고 있다. 대학원 다닐 때 마셔볼걸 조금 아쉽기도 하다.


사실할만한 일들을 하며 밤을 새우는 것은 스트레스가 덜하다. 번역, 할만한 번역들을 하면서 시간이 가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끝나가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사실 몸은 안 좋아도 정신건강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본인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을 하며 밤을 새우는 일이다. 그것도 데드라인이 코앞에 있거나 이미 지났거나 하면 더욱 상황은 악화된다. 대학원 시절 그렇게 밤을 새우는 것과 지난 직장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이었다. 머리를 진짜로 잡아 뜯고 화면을 몇 시간이고 노려보다 보면 없던 안구건조증도 생기고 두통도 생기고 난리가 난다. 피부는 점점 거칠어지고 몸은 퉁퉁 붓는다. 그렇게 몇 년이고 지내다 보면 없던 병도 생겨 병원을 다녀야 한다.


그래서 올해 회사가 문을 닫으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내 삶의 모토가 "잘하는 일을 잘하자"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똑같으면 제일 좋겠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잘하는 일을 잘하는 것이 더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은 사이드로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퇴근 후에라도 할 수 있는 힘이 날 테니까. 잘하는 일을 잘하는 것, 그것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이제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


사실 이게 쉽지 않다는 것 알고 있다. 내가 뭘 잘하는지 아는 것도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릴 때부터 정해진 교과 안에서 두부처럼 틀에서 자라다 보니 그렇게 자신이 뭘 잘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냥 나는 공부를 잘하는지만 알았지 내가 정말 뭘 해서 먹고살 수 있는지는 박사과정이 끝난 후에야 고민하게 되었다. 평생 공부하면서 살 줄 았았는데 그렇지 않은 환경에 던져 저서 몇 년을 구르고 나니 이제야 조금은 마음에 근육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야 내가 잘하는 것을 알 것 같아서 말이다. 번역일과 글 쓰는 일도 그것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 어찌 되었든 어떤 글을 쓰든 글을 쓰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좋아하는 글쓰기는 브런치에 하면서 잘하는 글쓰기로는 생계를 이러 가보려 한다. 사실 글쓰기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지치긴 하려나)


이제 잘하는 것을 열심히 잘하는 삶이, 성취가 있는 삶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사진: Unsplash의 C D-X

이전 13화삼겹살 잘 굽는 채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