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50만 원으로 살아보기 (3)
역시 생활비를 올리는 것, 특히 식비를 급격히 올리는 것은 배달과 외식이다. 식당에서 울리는 소리를 잘 못 견디는 아이가 외식을 싫어하고 나도 나가면 급격히 체력이 방전되어 외식은 삼가는 편이라 역시 배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배달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나의 스트레스 혹은 바쁨
두 번째는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할 때
이 중에 내가 바쁠 때를 위해서 한 달에 2번 정도는 배달을 먹기로 했다. 또한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메뉴들을 최대한 해 먹을 수 있도록 갖춰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밀키트 같은 것도 집에서 준비하던데 그건 정신과 체력이 안 돼서 못할 것 같다. 그냥 나는 재료들을 잘 얼려서 (ㅎㅎ) 갖춰두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한동안 쌀국수를 너무 먹어서 배달을 2-3일에 한 번씩 시키다가 풀무원 쌀국수 (강추)를 발견해서 쌀국수 한번 가격으로 8번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아이가 꽂힌 것은 동네 돈가스집 우동인데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고 배달이 된다. 종종 아이와 토요일에 도서관을 가거나 고양이 카페를 갈 때 가던 곳인데 너무 좋아해서 몇 번 주문해 먹었더니 습관처럼 먹게 되었다. 최소 주문 금액이 있어서 항상 돈가스와 세트로 주문해야 하고 배달비까지 하면 거의 15000원이 넘는다. 그걸 다 먹으면 좋은데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해 남긴다. 돈가스와 우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먹지를 못하고 남편이 함께 먹었는데 이제는 영국 가고 없으니 고스란히 남아서 냉장고에 있다가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한두 번 시켜 먹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여러 가지 우동를 실험해 봤다. 생*우동은 특유의 신맛을 싫어했고 마트에서 구입한 가쓰오우동이라고 되어 있는 것들도 특유의 향을 싫어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쿠팡을 뒤져서 포장마차 우동을 찾았는데 10개에 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주문 후에 동네 우동집처럼 파, 어묵, 유부 등을 넣어서 함께 끓였더니 합격! 너무 강한 국물 맛을 좋아하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일주일에 한두 번씩 우동과 돈가스를 주문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떡볶이도 여러 가지 노력 끝에 집에서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로제떡볶이를 먹어보고는 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해주는 건 맛이 없다고 꼭 배달을 시켜달라고 해서 배떡이니 신전 떡볶이니 시켜봤는데 너무 매워서 먹지를 못했다. 그래서 딱 한 번만 먹어보라는 설득 끝에 애용하는 떡볶이 소스 중에 로제 버전이 있어서 시도해 봤는데 성공이었다. 떡볶이 떡은 이제 안 먹는 뽀로로 떡볶이 떡을 사용하고 소스는 한 번에 1/3봉 지정도 사용하니 여러 번 해 먹을 수 있다.
방금 글 쓰는 동안에도 우동을 먹고 싶다고 하여 후다닥 끓여주었다. 얼마 전에 진달래 무늬 어묵도 구입해서 넣어줬더니 훨씬 그럴싸했다. 끓여준 우동의 4/5를 후루룩 먹고 방에서 뒹굴거리는 성장기 어린이가 언제 다시 배고프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도 선방했다 싶다.
워킹 싱글맘(?)인 내가 이렇게 하려면 완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 먹을 수는 절대 없다. 우동 육수를 직접 만들어서 끓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떡볶이 소스도 레시피를 뒤져서 이것저것 실험해 볼 수는 없다. 이럴 때 시판 소스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들 열심히 연구해서 만들어주셨을 테니 감사하며 사용한다.
그리고 떨어지기 전에 재고 확보를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번에 한번 쌀국수가 다 떨어진 줄 모르고 있다가 동네 마트에서 다른 브랜드 것을 사서 끓여줬는데 내가 먹어봐도 맛이 너무 달랐다. 그 후로 한 개 남으면 항상 다시 주문을 하곤 한다. (쿠팡 최소 주문 금액이 있어서 식재료들이 떨어지는 시기가 같으면 좋은데 그게 아니어서 좀 어렵긴 하다)
이 모든 일은 사실 지금 내 마음이 꽤나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면 금세 배달앱에 손이 가게 된다. 냉장고 정리도 귀찮아지고 요리에는 손도 대기 싫어진다. 냉장고에 식재료를 파악하고 주문하고 또 후다닥 요리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일 년간 잘 쉬며 회복한 덕분일 것이다.
먹고사는 일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식비를 줄이는 가장 근본은 어찌 되었든 마음을 잘 지키는 일이다. 이건 식비뿐 아니라 모든 소비의 영역에 해당된다. 마음이 지치지 않도록 잘 돌보고 잘 쉬는 것은 그 어떤 알뜰살림팁보다 중요하다. 혹시라도 배달이 늘었다면 자책보다는 힘든 일이 있는지, 마음이 지친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바쁜 삶을 살며 편의점 음식과 길거리 음식으로 식사를 하며 마음이 공허해진 주인공이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식재료 키우는 것부터 해 먹는 것까지 다 스스로 해 먹으며 회복되는 것,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먹을 것과 살림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 마음을 돌보며 먹을 것을 챙기고 식사를 하는 것, 마음을 돌보는 것, 어디가 시작인지 모르지만 다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외식과 배달에 기대도 괜찮다. 다만 내 마음을 내버려 두지 않고 돌보는 것,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살펴주는 것, 그것에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