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등드름이 없어지지 않았었다. 아빠가 등드름이 심해서 나도 당연히 유전인 줄 알고 20여 년을 그냥 살아왔다. 바디워시도 바꿔보고 연고도 꾸준히 발라봤지만 그때뿐이고 금세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등에 어마어마한 뾰루지가 올라왔었다. 등에 연고를 발라주려던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문득, 샴푸 때문인가. 생각이 들었다. 한 1년 전즘에 사둔, 느낌상 오래된 샴푸를 쓰고 나서 갑자기 등드름이 심해져서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 때는 당연히 비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었다. 할머니 목욕통에 초록색 애경 샴푸가 들어간 이후로 샴푸를 썼다. 그 후로 당연히 머리는 샴푸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까지 얼굴은 비누로 씻었다. 그래서 수련회를 갈 때면 잔뜩 불어있는 비누를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폼클렌징이라는 게 나와서 얼굴은 폼클렌징으로 닦게 되었다. 그리고 바디워시라는 것도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때를 밀지 않아도 몸의 때가 사라진다는 광고에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었다. 몸을 닦는데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게 된 걸까.
욕실 찬장에 놓여있는 비누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해볼까?'
검색을 해보니 비누로 머리를 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여러 포스팅에서 도*비누를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만 해보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벌써 9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20여 년 만에 등드름이 모두 사라졌다. 어쩌다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목 뒤부터 뭐가 올라온다.
머리가 뻗뻗하지 않느냐? 의외로 더 부드럽다. 감고 나서 잘 털어 말리고 손으로 빗고 나면 끝이다. 두피가 더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훨씬 더 개운하다. 머리도 덜 빠지는 것 같고 모발이 두꺼워지는 것 같다. 실제로 나의 권유로 비누로 머리를 감기 시작한 친정엄마도 모근이 더 튼튼해서 볼륨이 사는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하신다.
얼굴도 비누로 씻는다. 어떤 피부과 의사도 말했다. 아이라인 같은 메이크업만 전용으로 지우고 비누로 닦아야 잘 닦여진다고 했다. 나는 선크림+쿠션으로만 마무리를 하고 보통은 색조를 거의 안 한다. 그래서 그냥 비누를 잘 거품내서 씻는다. 피부 트러블도 전혀 없다. 오히려 자잘한 좁쌀여드름은 다 없어졌다.
몸도 비누로 닦는다. 당기거나 건조하지 않다. 바디로션도 안 바른 지 오래되었다.
Photo by Daniel Hansen on Unsplash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낀 비누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잘 닦인다 (얼굴도 머리도 몸도 개운하면서 보들보들하다)
알레르기가 적다 (항히스타민을 달고 살았는데 모기 물릴 때 빼고는 먹지 않는다)
수질오염을 덜 일으킨다 (화장실에 비누 때가 훨씬 덜 끼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쓰레기가 적다 (종이 박스 하나만 분리수거하면 된다)
경제적이다 (한 개에 1천 원 정도 하며 4 식구가 일주일도 넘게 쓴다)
간편하다 (폼클렌징, 샴푸, 바디워시가 다 필요 없이 하나만 쓰면 된다. 여행갈때도 하나만 들고 간다!)
최근에는 샴푸 비누, 클렌징 비누, 세탁비누, 주방 비누 등 다양한 종류의 비누들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주방세제를 최근 비누로 변경했는데 아주 편하고 좋다. 잘 닦이는 건 물론 맨손으로 설거지를 해도 손이 많이 건조해지지 않는다. 손세정제도 원래 액상형을 썼는데 다 쓰고는 비누로 바꿨다. 앞으로 집에 있는 세제들을 다 쓰고 나면 구석구석 비누로 바꿔갈 예정이다. 내 몸뿐 아니라 내 집을 깨끗하게 하면서도 지구가 덜 아프며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도, 한번 용기를 내서 비누로 머리도 감아보고 씻어보면 좋겠다. 생각보다 좋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리고 아마 지구도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