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예비 연말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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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기나긴 대학원 생활이 끝난 감사한 해이며 코로나로 인해 기러기가족생활이 장기화된 해이며 인생에서 2번째 소위 말하는 백수 생활이 시작된 해이다. 물론 아이를 돌보고 살림하는 주부이기 때문에 백수라고 할 수 없지만 (가사노동은 정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 졸업 후 대부분은 늘 대학원이든 직장이든 속해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이런 상태는 매우 낯설었다. 2008년에도 이와 비슷한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10여 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시기인가 싶기도 하다.
2019년 11월 13일에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받았는데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났다. 자잘한 서류처리를 마치고 2월에 졸업장을 받아 들고 더 이상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빌려볼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 수개월이 흘렀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남들이 요즘 뭐하냐고 물으면 '그냥 놀아'라고 이야기한다. 직장인들은 모두들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삽질 속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며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더 바닥이 나오고 또 나온다. 이 바닥이 얼마나 더 깊어질지 알 수 없으니 그전에 그간의 삽질을 정리해보려 한다.
그간의 삽질
지난 7월에 작가 선정이 되었다. 전에 써놓은 기록을 보니 2017년 11월에 처음으로 브런치의 존재를 알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되어있다. 그러고는 계속 마땅히 글을 쓸 여유가 없어서 못쓰다가 올해 처음으로 도전해 보았다. 3월에 도전했다가 떨어지고 7월에 선정되었다. 글 쓰는데 생각보다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기대만큼 많은 양의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러 번 다음 메인에도 걸리고 공감해주시는 구독자님들도 많아져서 기쁘고 감사하다. 나이 40세가 되기 전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독립출판이든 자비출판이든 뭐든 출판을 하려면 나만의 콘텐츠가 모으긴 해야 해서 시작했다. 출간 작가 제의를 받으면 더 좋겠지만 안돼도 그냥 글을 모아서 출판할 예정이다.
사실 예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공모전에 내려고 3편 정도를 준비했는데 초고 완성 이후에 만족할 만큼 퇴고를 못해서 결국 공모전에는 제출을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모전을 꽤 많이 도전했는데 아직 당선된 게 하나도 없다. 지금 돌아보면 더 내면으로 파고드는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 너무 감성적이었던 내 글은 싸이월드에서 인기가 많았다. 대학원 다니면서 감성적인 글보다 논리적인 글을 많이 쓰고 오랜 직장생활로 감성적인 글은 오히려 더 못쓰게 되었다. 지금은 글이 너무 드라이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자신의 초고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지만 (이유는 너무 못써서) 그래도 용기 내서 더 다듬어서 내년에는 꼭 어느 공모전이든 내려한다.
예스 24에서 실시하는 에세이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에 도전했었는데 6월 우수작으로 선정이 되었다. 역시 내가 갈 길은 에세이인가 생각했다. 인생의 암흑기 시절을 글로 적었는데 당선이 되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다 보면 찾아오는 바닥을 치는 순간이 좋은 글감이 된 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언젠가 지금 내가 지내는 이 시간들도 나에게 또 하나의 글감이 될까. 상금으로 받은 예스 24 포인트 3만 원으로 그 달에 사고 싶은 책을 구입했다.
공모전 관련 사이트에서 길지 않은 글, 논문이나 보고서를 제외한 글을 쓸 수 있는 곳에는 다 도전했는데 다 떨어졌다. 입선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하나도 되지 않았다. 공모전은 예전부터 많이 시도했지만 딱히 주목할만한 성과는 없다. 하지만 수입이 없는 나로서는 상금을 노려 도전해보는 수밖에 없다. 보고서나 논문은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잘 안 하는데 내년에도 이렇게 계속 소속 없이 지내면 보고서나 논문도 해봐야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지원했고 다 떨어졌다. 사실 이렇게까지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동안의 직장생활을 할 때 서류를 별로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될 만한 데만 넣었었다), 전체 서류 탈락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원서를 쓰는데 시간이 정말 너무 오래 걸리는 연구나 강의 쪽은 떨어지면 타격이 컸다. '니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그곳과 fit이 안 맞는 거야'라고 위로해주는 선배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학위 마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년여를 이렇게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여러모로 처참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 박사들이 귀국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정말 될 줄 알았던 연구소에서 탈락하고서는 정신을 못 차렸다. 대학원 랩 홈페이지 졸업생 란에 나 혼자만 소속 없이 1년째 적혀있는 걸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 즘 뭔가 적을 수 있을까?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내게 될까? 안갯속을 걷는 것 같다.
안갯속을 걷는 것 같다.
두 번째 창업을 했다. 작년에 창업하고 올해 폐업을 하고 올해 다시 시작했다. 뭔가 수익사업을 해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개인사업자를 냈는데 여전히 수익은 0원이다. 사업자등록을 했으니 국민연금을 내라고 신청서가 날아왔는데 여전히 수익이 없어 무시하고 있다. 고용보험을 가입하라고 신청서가 왔는데 이건 알아봐야겠다. 뭔가 컨설팅 활동이나 저술 및 출판업을 하고 싶은데 진척이 없다. 통계청이니 여기저기서 1인 사업자에 관심이 많은지 전화는 많이 오는데 또 폐업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창업 후 수익활동의 일환으로 스마트 스토어를 2개나 오픈했는데 하나는 여성복 하나는 개점휴업상태이다. 도저히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아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복은 이제 한벌 팔렸다. 스마트 스토어 강의를 들어볼까 했는데 올해 이미 강의로 돈을 많이 써서 더 쓰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소비 단식을 하면서 돈을 아끼다 보니 최대한 무료 콘텐츠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잘 키워서 사실 주변에 소매업 하시는데 코로나로 어려워지신 사장님들이 계셔서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하니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나름 경영학 전공자인데 정말 한심하다.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어필리에이트로 돈을 벌어보며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과 수익을 위해 뭔가 정보성 글을 쓰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었다. 이미 꾸역꾸역 글을 쓰는 것은 대학원 시절 10여 년 동안 해왔더니 의무감으로 글을 쓰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다. 포스팅 하나쓰고 포기했다.
PDF책 하나로 뭐 얼마를 벌었다는 말에 혹해서 강의를 2개나 결제해서 듣고 원고 초안을 만들었으나 위의 쿠팡 파트너스와 같은 이유로 완성하지 못했다. 나도 폴 오스터처럼 빵 굽는 타자기가 되어야지 했는데 나는 아직은 쌀도 못 씻었다. 건강이 회복되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요새는 데이터를 잘 다루어야 훨씬 더 많은 선택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툴을 다루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R과 파이썬을 마스터하기 위해 1년짜리 강의를 결재하고 들었는데 1/3 정도 듣고 말았다.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통계를 토 나오도록 했고 아직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인지 예전만큼의 집중도가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강의는 아직도 들을 수 있지만 언제 다시 들을지는 모르겠다.
올해 초에 계속 집에만 있어서 5kg 정도 몸무게 늘었는데 정말 여러 가지 다이어트를 해도 줄지 않는다. 나이가 있어 기초대사량이 줄어든 것도 있고 근력이 많이 떨어진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약을 먹고 있는 것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운동도 하고 식생활도 많이 건강해졌는데 여전한 몸무게에 이마저도 절망이 된다. 그래도 더 살이 찌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삽질의 끝은 어디일까
이 외에도 소소하게 손글씨, 웹툰, 아마존 셀러 등을 시도 했었다. 결과는 뭐 적을 것도 없다. 자기 계발을 사랑하는 나에게 뭔가를 계속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일상은 그저 버겁기만 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래서 힘이 드나 공감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버둥처도 변하지 않는 상황이 더 오래되면 나도 노력을 멈추게 될 것 같다. 그마저도 글은 쓰고 싶으니 다행이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독립출판을 하는 게 이런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20년은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나는 남은 1달 반여동안 뭔가를 또 하게 될까 아니면 2020년은 그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 만으로 감사하며 마무리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내 삽질의 끝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