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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Nov 20. 2020

폐지줍기와 글쓰기

당신과 나의 치열한 삶의 현장 

Photo by Andrew Neel on Unsplash


아이를 등원시키고 노트북을 짊어지고 일터로 향한다.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늘 오고 가신다.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수레를 끌고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본다. 아이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주시는 기미 가득한 얼굴을 마주한다. 


내가 먹는 점심값 정도의 돈을 버시기 위해 저렇게 새벽부터 나와 일하시는 건 아닐까. 실제로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만원 벌기가 어렵다고 한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는 걸까. 


외주 일을 받아서 할 때에는 이러한 찔림이 덜하다. 그래도 시간당 얼마라도 벌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으며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외주도 없이 그냥 내가 써야지 하고 생각한 글을 쓰는 날에는 자꾸만 아까 본 할머니의 얼굴이 스친다. 나도 폐지를 줍는 것처럼 그렇게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삶은 돈으로 측정될 수 없고 각각의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삶은 돈으로 측정될 수 없고 각각의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내가 글 쓰는 행동이 많은 분들이 생계를 위해 종이를 줍고 길거리의 휴지를 줍고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아파트에서 청소를 하는 것보다 더 이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일인가. 나는 너무 안이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숨 가쁜 노동 중 잠시 쉬어가는 것이 아닌 나의 일상이 이렇게 이루어져 있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당장 영어학원 강사라도 알아봐야 할 것 같고 번역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내 삶이 좀 더 가치 있게 느껴질까. 직장도 거처도 불안정한 삶이 계속된 지 1년 반이 넘어간다. 늘 나그네처럼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정말 나그네가 되었다. 앞으로도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한 줌의 재로 어느 날 산화되어버리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2-30대는 정말 몸을 불살라 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난달 급한 외주 일을 받아서 하면서 약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이제 하루 6-7시간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몸 상태이다. 차라리 정말 밖으로 나가 폐지를 줍고 청소를 하는 일이 더 생산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만의 폐지를 주워야 한다.


나는 나만의 폐지를 주워야 한다. 인생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폐지를 줍고 싶어서 줍는 분들이 어디에 있을까. 생계를 위해 추운 겨울에도 길을 나서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다시 한번 노트북을 펴고 나만의 길을 나서 나만의 폐지를 줍기로 한다. 


내 삶은 늘 치열했고 앞으로도 치열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팔자가 늘어져 보일지도 또 안쓰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만이 온전히 알고 살아낼 수 있다. 

누구나 삶에 주어진 소명과 목적이 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소명을 이뤄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당신의 삶이 어떠하다 말할 수는 없다. 


바람이 차갑다. 

허리를 펴고 배낭끈을 고쳐맨다. 

닳아버린 운동화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조금 더 힘차게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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