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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Dec 14. 2020

매일 성실하게 쓰레기를 만드는 삶에 대하여

제로 웨이스트를 향하여_지구야 미안해

Photo by Jasmin Sessler on Unsplash


나는 매일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매일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그것도 매우 성실하게 생산한다. 밥 먹고 숨만 쉬어도 쓰레기가 쌓이다. 매일 저녁이면 하루 종일 성실하게 생산해낸 쓰레기가 잔뜩 쌓인다. 사는 건 이렇게 쓰레기를 만드는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생산되는지 살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콩나물 봉지를 뜯어 콩나물국과 콩나물무침을 한다 (콩나물 봉지)

밥을 다 먹고 아이가 과일을 먹고 싶어 해 딸기를 씻었다. (플라스틱 딸기팩)

아이와 함께 놀기 위해 새로 사온 스케치북을 뜯었다. (비닐봉지)

한참을 놀다 바닥에 묻은 물감과 크레파스를 물티슈로 지운다. (물티슈)


점심으로는 사두었던 냉동피자와 주스, 샐러드를 먹기로 한다. 냉동피자 박스를 뜯고 비닐을 뜯어 오븐에 종이 포일을 깔고 데운다. 아이를 위한 유기농 주스를 꺼내 주고 나를 위해 탄산수를 하나 꺼낸다. 샐러드를 만들고 드레싱을 뿌린다. 드레싱을 다 썼다. (피자박스, 비닐, 주스팩, 종이 포일, 탄산수병, 드레싱 통)

세탁세제를 주문한 것이 도착했다. 박스를 뜯어서 재활용 통에 넣는다. 테이프를 뜯어서 쓰레기 봉지에 넣는다. (박스, 테이프)

아이에게 오후 간식으로 함께 호떡을 만들었다. (호떡믹스 박스, 비닐들)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잠시 부탁하고 치과에 다녀온다. 오늘은 사랑니를 하나 뽑았다. 마취를 하면 입술이 잘 다물어지지 않아 침이 흐른다. 치과의자 옆에 있는 티슈를 뽑아 입을 닦는다 (티슈)

진료비 계산을 하고 처방전을 받는다. (영수증)

치료 후에 입에 솜을 물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온다. (영수증, 솜)

때마다 약을 챙겨 먹는다. (약봉투, 약이 들어있는 비닐봉지)


저녁은 새우볶음밥을 하기로 했다. 냉동새우를 꺼내고 채소들을 손질한다. (새우 봉지, 채소 껍질들, 달걀 껍데기)

기름을 두르고 밥을 볶는다. 밥을 볶고 나서 프라이팬은 키친타월로 닦는다. (키친타월)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가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해 하나 꺼내 주었다. (아이스크림 비닐, 막대)

나는 저녁으로 현미밥에 두부된장찌개를 끓였다. (두부 팩 통, 애호박 비닐)

무첨가 두유를 하나 먹었다. (두유팩)


목욕을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간다. 아이를 위해 따뜻한 물을 작은 욕조에 받는다. 비누가 작아서 작은 비누를 꺼낸다. (비누 박스)

아이가 욕조에서 물놀이를 할 동안에 아이가 가지고 놀던 색종이와 플레이도우를 정리한다 (색종이 조각, 플레이도우 굳은 것)

다 쓴 플레이도우 통들이 열몇 개나 생겼다. 굳은 플레이도우를 뜯어내고 재활용 상자에 넣는다. (플레이도우 통)

목욕을 마친 아이는 나와서 우유를 한팩 마신다 (우유팩)

양치질을 하고 이제 잠자리로 든다. 치약을 거의 다 쓴 것 같은데, 치약은 늘 일반쓰레기로 그냥 버리는 것인지 닦으면 재활용이 되는지 모르겠다. (치약 통)


나는 아이를 재우고 나와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빨래들을 챙겨서 빨래통에 넣는다. 하루 종일 나온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바라본다. 나는 하루 종일 하는 일도 없이 쓰레기만 잔뜩 만든다. 여기에 혹시라도 배달음식이라도 먹으면 쓰레기는 갑절로 늘어난다. 식재료가 배달 오면 몇 배로 늘어난다.


매일 비워도 차오르는 재활용 쓰레기통과 음식물 쓰레기통은 마음을 늘 힘들게 한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 이 세상에 작별하는 날에 내가 버린 쓰레기들만 세상에 남을 것 같다. 내 몸아 먹고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다 배출하듯 우리 집에도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오고 필요 없는 것은 모두 다시 나간다. 하지만 내 몸이 배출하는 것은 그나마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나가는 것들은 몇백 년이 지나도 안 돌아갈 것들도 많이 있다,


우유팩이 쌓이는 게 싫어서 커다란 우유팩이나 플라스틱병에 담긴 걸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쓰레기는 나온다. 마트에서 장을 보며 비닐이 없는 채소를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스크림도 아이와 먹는 과자도 모두 기본으로 쓰레기를 달고 나온다. 언젠가 깐 새우를 까는데 태국이나 베트남의 어린이들이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열몇 시간씩 일한다는 기사를 보고 안 깐 새우를 샀는데 그렇게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도 어마어마했다. 음식물 쓰레기는 마음껏 버려도 괜찮은 걸까? 그래도 자연으로 돌아가니까 괜찮을 걸까?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원래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성격에 이런 걱정까지 더해지고 말았다.

이런 죄책감을 덜기 위해 조금씩 바꿔가고 있는 것들을 소개한다.


스티로폼 박스가 나오는 게 싫어서 냉동제품을 배달시키는 것은 그만두었다. 고등어니 대게니 배달해먹으면 필연적으로 스티로폼 박스가 따라오기에 그냥 마트에서 조금씩 사 먹기로 했다.

물티슈는 이제 사실 거의 사용을 안 한다. 그냥 작은 천 조가 리들로 작은 행주들을 많이 만들어서 물을 적셔 사용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외출할 때 물티슈를 안 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고민이 많다. 스케치북 묶음을 사면 비닐로 덮여있고 아이의 책도 비닐로 덮여 있는 경우가 많다. 재활용이 잘 안 되는 비닐에 가장 죄책감이 많이 느낀다.

플레이도우는 다 좋은데 작은 플라스틱 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최근에는 플레이도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지퍼백을 몇 번이고 다시 사용하고 있다. 더 이상 플라스틱 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만들 때 물감을 넣는데 그 물감통은 어떻게 버리나 고민이 되긴 한다. 정녕 쓰레기 없는 삶은 불가능한 것인지 좀 절망적이 되기도 한다.

한 달에 20개씩 먹던 탄산수도 거의 줄여서 이제 한 달에 1-2개만 마신다. 탄산수 기계를 사려고 했는데 탄산수 실린더를 계속 교환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귀찮을 거 같아서 그냥 탄산수를 끊기로 했다.

캡슐커피도 원래 엄청 좋아했는데 그것도 캡슐이 아무래도 재활용이 어려울 것 같아서 원두를 사서 내려먹고 있다. 커피 필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매번 커피 필터를 버려야 해서 비알레띠나 커피 프레스를 사용한다.

배달음식도 한 달에 한번 정도만 먹는다. 랩은 이제 실리콘 덮개 사용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팝시클을 종종 만들어준다.

빵이나 과자도 집에서 종종 구워준다. 그나마 쓰레기가 덜 나오지만 밀가루 봉지, 설탕 봉지 등 비닐봉지들이 나오는 건 피할 수가 없다.

피부 때문에 바꾸기는 했지만 샴푸, 린스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나마 이런 플라스틱 통이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쓰레기를 잔뜩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인간은 쓰레기 만드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는 염세주의적인 생각이 늘 들어 괴롭다. 하지만 불과 1년 전의 나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것에 조금 위안을 얻고 나를 격려한다. 쓰레기를 하나도 만들지 않는 삶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덜"만드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내가 살던 이 삶이 쓰레기만 남겼구나 기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는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내가 살던 이 삶이 쓰레기만 남겼구나 그렇게 기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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