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플레이도우가 몇 개 없네. 내일 쿠팡 아저씨가 가져다주실 거야"
"어, 식용유가 없네. 쓱배송시켜야겠다"
"어, 계란이랑 우유가 없네. 마켓 컬리에 주문해야겠다"
"어, 비타민도 몇개 없네. 쿠팡으로 시켜야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쇼핑앱들을 열어서 쉴 새 없이 주문을 한다. 아침에 문을 열면 문 옆으로는 택배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친정아빠는 진지하게 내가 쇼핑중독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물었다고 했다.
아이의 플레이도우가 떨어지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식용유도 없으면 요리를 아예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계란과 우유도 없으면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비타민도 여유분이 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산더미 같은 택배를 풀어헤치고 각종 충전재들을 정리하고 나면 택배 상자 하나도 될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이 나온다. 여기저기 정리해서 넣고 나면 수북한 택배 박스만 남는다. 그리고 나면 또 하루 종일 앱을 열고 닫으며 수없이 많은 "꼭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한다. 이 물건들은 모두 "내일 당장"필요한 물건들이다. 생필품만 사는데 왜 이렇게 한 달에 생활비가 이렇게 많이 들까.
하루 종일 앱을 열고 닫으며 수없이 많은 "꼭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한다.
이 물건들은 모두 "내일 당장"필요한 물건들이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에 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마트를 기피하다 보니 쇼핑앱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 편리함과 속도에 점차 중독되기 시작했다. 필요한 게 특별히 없어도 밤에 누워서 뭔가 살게 없나 하고 앱을 열고 뒤적거리고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하곤 했다. 아이는 사달라고 한 적이 없어도 내가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거 사줄까?"하고 물어보고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렇지? 필요하지"하며 냉큼 결제하고 다음날 "이거 봐 이거 봐 이거 어때?"하고 호들갑을 떤다. 아이는 힐끔 보고는 시큰둥하게 자기 하던 놀이를 이어간다.
아이가 먹지 않는 비타민들이 쌓여가고 플레이도우도 여분으로 몇 박스씩 있었다. 한두 개만 있어도 될 아이의 물건들을 몇 개씩 수북하게 쌓아두어야 마음이 놓였다. 늘 물건이 몇 개 남았는지 확인하고 쇼핑하는 게 하루 중요한 일과였다. 아이를 낳고 나서 기저귀와 분유를 주문할 때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쿠팡을, 출산 후 장 보러 마트 가기가 너무 어려워서 이용하기 시작한 쓱 배송,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유기농 식재료를 구입하다 보니 애용하게 된 마켓 컬리. 이 외에 아이의 옷과 신발, 여러 가지 가구들을 비롯해 가전을 구매하는 네이버까지. 정말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어가서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는지 모르겠다.
소비 단식을 시작하고도 이런 쇼핑들을 줄여가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소비 단식을 하면서 제일 먼저 줄인 것은 외식과 커피, 나의 옷, 책, 화장품, 신발 등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줄여가는 것도 너무도 어려웠지만 이런 생필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줄여가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처음에는 목록을 적어보기도 했는데 그래도 목록에 자꾸 추가가 돼서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 아주 단순하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을 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쇼핑앱 사용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계속적으로 되뇌었다. "내일 당장 없으면 죽는 건 없다"
"내일 당장 없으면 죽는 건 없다"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아이의 플레이도우가 없는데 아이가 너무 떼를 쓰면 밀가루로 반죽 놀이를 했다. 아이가 훨씬 더 좋아했다. 몇백 원 더 비싸도 아이 하원길에 동네 작은 슈퍼에서 식재료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소비 단식하면서 주로 현금만 사용하는데 하루에 만 원 이상은 장 보는데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동네 작은 슈퍼는 커다란 이마트처럼 나의 정신을 홀랑 다 가져가지 않아서 훨씬 마음 편하게 장을 볼 수 있었다. 남은 동전으로 아이는 뽑기도 하고 꽈배기도 사 먹는다. 아이와 함께 가기 때문에 내가 들 수 있을 만큼 적당량을 사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올 수 없기에 장바구니 정도만 담을 수 있었다.
아이가 발레를 시작해서 발레복을 사려고 앱을 열고 검색을 하고 신이 나서 결제를 하려다가 잠시 멈추고 앱을 닫았다. 당장 내일 필요한 게 아니고 아직 3주도 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한 언니에게 혹시 언니 딸이 입던 발레복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언니는 아주 흔쾌히 이제 작아서 입지 못하는 발레복 2벌을 그냥 주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아이 간식을 챙겨 이것저것 가져다주었다.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마트앱에서 VIP에서 일반회원으로 낮아졌다.
네이버 쇼핑에서도 일반회원으로 강등되었다.
쿠팡 와우 월회비 결제를 취소했다.
마켓 컬리도 등급이 낮아졌다.
물론 아직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쿠팡으로 배송을 시키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마트 배송을 시킨다. 하지만 예전처럼 금요일 오후만 되면 주말을 아이와 보내기 위해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쇼핑앱으로 잔뜩 주문하지 않게 되었다. 집앞에 산더미같던 택배도 거의 줄어들었다. 비슷한 과정으로 배달앱 사용도 많이 줄어들었다.
산더미 같은 택배를 뜯는 일은 10% 정도의 기쁨과 90% 정도의 허무함을 가져온다. 특히 잔뜩 쌓여있는 재활용 박스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택배박스가 없다는 것, 재활용이 없다는 것, 아이스팩이나 스티로폼 박스가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의 정신건강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직접 장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바구니를 들게 된다. 동네슈퍼에서는 비닐포장이 되지 않은 채소와 과일을 구입할 수 있다.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면 용기를 들고 가면 담아주신다. 이러다 나도 제로 웨이스트를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라며 혼자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아파트에서는 수거해가지도 않아 다 종량제 봉투에 전부 들어가는 비닐사용이 조금 줄었고 스티로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건 소비 단식이 가져온 아주 바람직한 Side Effect이다. 앞으로도 더 좋은, 더 건강한 경험들을 기대한다.
나는 자유로워지고 있다.
나는 자유로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