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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Dec 09. 2020

식비 줄이기에 관하여

소비단식일기(15):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기

Photo by Maddi Bazzocco on Unsplash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요리책 보는걸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엄마가 혼수로 해온 10권짜리 빨간색 요리책 전집을 읽고 또 읽었다. 특히 디저트나 서양식 만드는 편을 정말 좋아했다. 강원도 00군 00읍 00리에 사는 나는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없어서 그저 보며 입맛만 다셨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동네 마트에서 몇 가지 재료들을 파는 걸 보게 되었다. 베이킹파우더나 월계수 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별세계를 만난듯했다. 친하게 지내게 된 이웃집 아주머니가 제과제빵 자격증에 도전을 하시면서 우리 집에는 더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오게 되었다. 또 엄마가 남대문 수입상가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새로 나온 음식들, 과일들을 찾아서 먹어보는 건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20대 초중반에는 서울의 온갖 맛집과 카페를 섭렵하고 다녔다. 친구들이 데이트하기 전에 늘 나에게 어디가 좋으냐며 연락이 왔다. 30대에 들어서는 특별히 맛집을 찾아다니기보다는 20대에 알아놓은 곳들을 단골이 되어 다니곤 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한 곳이 한남동이어서 특별히 맛집을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었다.


엄청난 빵순이 었기에 한남동 오월의 종부터 타르틴, 아티장 베이커스에서 나폴레옹 빵집, 김영모과자점, 장 블랑제리까지 섭렵했다. 특히 아이 낳고 나서는 빵, 특히 크루아상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겨 서울시내 빵집의 크루아상은 다 공수해다 먹은 것 같다.


신혼집은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가까운 곳에 있는 낡은 아파트였다. 우리 집은 낡았지만 나름 강남구로 시작되는 주소지에 산다는 것이 왠지 모를 으쓱함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타워팰리스 지하에 있는 스타슈퍼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SSG로 바뀐듯하다). 그곳에는 내가 요리책에서 보던, 외국 잡지에서 보던 식재료들이 조금은 비싸지만 한가득 있었다. 그곳의 식재료 가격은 직원들의 친절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듯 다른 곳보다 조금씩 비쌌다. 세상 친절한 직원들의 대접은 나를 한껏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식재료에 눈을 떠서 돈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봉골레 파스타를 만드는 모시조개가 그렇게 비싼 줄 처음 알았고 세상에 다양한 버터와 치즈가 있는 줄 몰랐다. 그곳은 신기하게도 와인이 아주 합리적이었다. 만원대 와인을 사도 맛이 좋았다. 새로운 우유, 주스, 스파클링, 맥주, 햄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식재료 속에서 나는 춤을 추었고 카드값은 정신없이 올라갔고 그 끝은 카드 대금 리볼빙으로 마무리되었다.


Photo by Rachel Park on Unsplash


결혼 후 대학원에 집중하기로 했던 나는 카드값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직장을 구했고 잘 된 건지 안된 건지 모르지만 한남동에 있는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퇴근 후 식사를 차리고 치우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는 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내가 아이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때는 남편이랑 둘이 살 때인데 내가 왜 항상 요리를 해야 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집과 남편의 회사 중간즘에 나의 회사가 있어서 남편은 퇴근하며 나의 회사 쪽으로 왔고 거의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남동에는 맛집이 많이 있어 온갖 맛집을 섭렵하고 다녔다. 나의 수입은 거의 100% 밥값으로 나갔다. 그 후로도 케냐에서 다시 한국에서 이런 일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지금도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 광화문 폴앤폴리나에서 빵을 못사온 것이 아쉽다. 돈을 많이 벌면 한남동에 수입 식재료 상을 여는 게 꿈이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식재료를 파는 곳을 열고 싶었다. 1층에는 식재료 상이 있고 2층에는 그 식재료들을 이용해 요리를 해서 파는 곳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입해오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농장에서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서 현지인들을 도울 수 있는 모델을 생각했다. 아직도 이 계획은 유효하다.


4인 가족인데 식비를 한 달에 40만 원 남짓 사용한다는 브런치 글을 읽고 흥 나도 할 수 있어. 라며 했는데 나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먹는데 돈을 많이 쓰는 줄. 장을 한번 보면 10만 원은 우습게 나갔고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면 이미 40만 원은 금방 찬다. 거기에 아이가 오며 가며 먹는 간식과 종종 시켜먹는 떡볶이와 짜장까지 더하면 아주 쉽게 100만 원까지 간다. 지금도 마음이 공허해서 뭔가를 사고싶을때는 이 브런치북을 읽는다.


소비단식일기에 관심있는 분들은 아마도 흥미롭게 읽으실듯해서 링크를 걸어드립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도!


https://brunch.co.kr/brunchbook/consumethic


 아이 낳고는 이마트 쓱배송을 미친 듯이 주문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재개발 예정 아파트에 사는 나는 아이를 데리고 장 보러 가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고 먹고 싶은 건 너무 많았다. 탄산수와 치즈, 생크림, 각종 빵과 고기, 아이를 위한 유기농 식재료까지 주문했다. 모유수유를 해서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출산 후 입맛이 변해서 엄마가 해주는 반찬이 입에 안 맞았다. 부자동네라 비싸지만 맛있는 반찬가게들이 인근에 있었다. 내가 우울증으로 기력이 없어 먹는 건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긴 했지만 반찬가게에서 몇 가지 담아도 몇만 원이 훌쩍 넘었다.  한동안은 마켓 컬리가 신기해서 장을 한창 보다 로켓 프레쉬가 신기해서 장을 보았다. 매일 새벽 집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택배박스를 보며 친정아빠는 나의 쇼핑중독을 걱정했다.


옷과 책, 커피, 각종 예쁜 쓰레기 사는 것을 줄이고 이제는 식비를 줄여야 할 시간이다. 지난 1-3월 1차 코로나 시기에 배달을 하도 시켜먹고 집에만 있어서 5kg이 늘었다. 어린이집 휴원 2주 차에 접어든 요즘 살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일단 마켓 컬리와 로켓 프레쉬를 끊었다. 아이가 마켓 컬리의 식재료를 잘 먹어서 한 달에 한 번은 시켜야겠지만 그래도 많이 줄였다. 이 두 가지는 나오는 쓰레기 양을 보면 줄일 수밖에 없다. 사과 5개 들어있는 박스가 얼마나 큰지. 여러모로 회의감이 든다. 장바구니 하나로 될 양의 식재료가 박스 4-5개로 산더미같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친정아빠가 나의 쇼핑중독 걱정을 해준 덕분에 그리고 엄청난 쓰레기 덕에 새벽에 배송되는 상품은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이마트에서 장을 보기는 하는데 최근에는 많이 줄여가고 있다.


아이와 종일 붙어있으면 왜 그렇게 먹고 싶은 게 많은지 모르겠다. 아이와 놀고 있으면 아 떡볶이 먹고 싶다 짜장면 먹고 싶다 생각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광화문 폴 앤 폴리나의 바게트를 하나 사다 먹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고 그렇다. 조금 뻔하지만 그럴 때마다 몇 가지 하는 일이 있다.


글을 쓴다.

체중계에 올라간다.

통장잔고를 확인한다.


신용카드 사용을 거의 줄였는데 체크카드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일은 늘 심장 떨리는 일이다. 통장잔고 내에서 돈을 사용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게 스트레스라 신용카드를 마음껏 긁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통장잔고 내에서 소비하는 습관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 소비 요정이다)


시댁과 친정, 그리고 누군가가 보내주는 채소와 반찬들에 감사하며 최대한 그 안에서 먹는다면 식비가 줄어든다. '냉장고 파먹기'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오늘 뭐 먹지라는 생각에 대해 장 볼 생각부터 하는 게 아니라 냉장고와 찬장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밑반찬보다 따뜻한 한그릇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새로운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큰 기쁨이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카드값과 빚들이 주는 고통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 고통을 이제야 알게된게 너무 늦은 일이 아니길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이다. 정말 너무 기본적인 일이지만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내 마음이 감사함으로 가득하고 충만하다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카드를 긁지 않는다. 지금 나의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에 감사하고 나의 찬장에 감사하는 삶,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이건 냉장고뿐 아니라 나의 옷장, 나의 책장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포함한다. 인생의 원리는 너무도 단순해서 깨닫고 실천하기가 어렵다.


인생의 원리는 너무도 단순해서
깨닫고 실천하기가 어렵다.

사실 식비를 줄이는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소비 단식 6개월에 접어든 오늘 카드값을 확인한 결과 50만 원대로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할부를 제외하면 일시불은 약 10만 원이다. 내가 10만 원으로 한 달을 산건 절대 아니고 한 달 정해진 예산을 쓰고 나서 돈이 없으면 카드를 사용하는데 그 금액이다. 소비 단식 1년을 채우면 빚도 다 없어지고 카드값도 0이 되어 있으리라.


그리고 그 것을 넘어서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공허한 속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사는 습관들이 없어지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좋은 습관들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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