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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Dec 24. 2020

자기 계발 중독자의 최후

소비 단식일기 (17): 자기 계발 비용에 관한 생각

Photo by J. Kelly Brito on Unsplash

"자신에게 투자하세요"


2-30대를 한국의 자기 계발 서적 범람과 함께 열정적으로 살다가 번아웃을 크게 맞이하여 현재 소파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1인이지만 여전히 다양한 온라인 강의들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닌데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열정적인 자기 계발 강사님들의 외침이 이제는 피곤하다.


IMF & 금융위기를 겪으며 사람들은 자신을 더 채찍질하고 더 몰아세우며 앞으로 앞으로 자신을 떠밀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피폐해지고 번아웃이 찾아왔다. 현재 많은 책들이 다 쉬어가라고 멈추라고 하고 싶은 일만 하라고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도 "위기다! 살아남자!"를 외치는 자기 계발 서적 코너와 "쉬세요 누워있으세요 열심히 살지 마세요"를 이야기하는 에세이 서적 코너를 번갈아가며 보면 나는 정말 최근 트렌드에 딱 맞는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병이 나서 쉬어야 하지만 여전히 자기 계발서를 기웃거리고 재테크 유튜브를 보는 나의 모습이다.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불안감은 소비를 불러온다.


불안감은 소비를 불러온다. 지금 이렇게 있는 게 맞는가 불안해지면 불안해질수록 나는 강의를 찾아 듣는다. 작년에는 고시생들이 듣는다는 몇십만 원짜리 영어강의를 결제해서 듣고 파이썬 데이터 마이닝 강의를 결제했다. 중요한 건 결제하고 초반에만 조금 듣고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봄에는 PDF책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강의를 2개나 결제해서 듣고는 '아 괜히 들었네'라고 했지만 이미 20만 원도 넘게 사용한 뒤였다. 요새는 아마존 리셀 강의나 스마트 스토어로 100만 원 벌기 강의가 듣고 싶어서 드릉드릉하고 있다. 근 10년간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지적 유희를 위한 책 읽기는 사치처럼 느껴져서 자기 계발 서적만 엄청나게 읽었다.


그 외에도 블리나 예스 24 북클럽과 같은 콘텐츠들을 구독하는 것에는 망설임 없이 돈을 사용하고 있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리미엄은 나를 위해 결제하는 게 아니니 넘어가기로 한다. 참고로 넷플릭스는 남편 유튜브는 아이가 사용한다. 그 외 남편이 사용하는 멜론도 있다. 이 부분은 외국에 살고 있는 남편을 위해 매달 기꺼이 지출하고 있다.


불안함이 밀려오면 서점에서 책을 잔뜩 구입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결제하는 내 모습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불안함을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으로 극복하려는 내 모습은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을 읽으며 자란 자기 계발 키즈(?)의 전형이었다. 불안하면 다른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최근에는 달리기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자신의 일상을 소소하게 가꾸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결국
 '나는 왜 지금 돈을 못 벌고 있는가'에서 온다.


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결국 '나는 왜 지금 돈을 못 벌고 있는가'에서 온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잉여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아빠들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어 가정을 돌보기도 하는데 나에게 그런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내가 꿈꿔온 일을 하기 위해 애써오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오래되면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Here & Now, 지금 여기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상담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나는 현재를 살지 않았다.
Photo by Yohann Lc on Unsplash


나는 항상 현재를 살지 않았다. 지금은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늘 무지개 너머를 바라보며 현재에 집중하지 않았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 모든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을 꿈꾸며 살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22살, 2000년대 중반이었던 그때는 전 세계가 많이 평화로웠기 때문에 이집트로 아랍어 어학연수를 1달 반 정도 간 적이 있었다. 모기장도 에어컨도 없는 낡은 호텔, 모기와 벼룩에 물려 한쪽 팔이 퉁퉁 부어오르던 그 더위속에서 내가 침대에 앉아서 한 일을 생각하며 지금도 어이가 없다. 나는 그때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다가 1 달반을 이집트에 간 것이었고 이집트에서 영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6개월 뒤에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6개월 뒤에 한국에 돌아가서 그 당시 가입되어 있지도 않았던 또래 클럽활동과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에서 하던 동아리 활동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다이어리에 표까지 그려서 비교하면서 말이다. 옆 침대를 사용하던 한국인 언니는 내 고민을 듣고 굉장히 어이없어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집트가 아닌 6개월 뒤 한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진지했다. 그 후 6개월 뒤 나는 그 또래 클럽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해당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을 꾸고 늘 이상을 바라보며 달려가던 나는 그래서 지금 병을 앓고 있다. 늘 내 모습과 내 이상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갭은 상당한 스트레스도 다가오고 결국 내 정신력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나의 20대는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비전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라"라는 이야기라던가 시크릿류의 책들이 범람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책에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말이 유행하기로 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찾는 보석은 나의 가까이에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 유명해진 저 말만 보면 시크릿 같은 책이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내가 찾던 보물은 자신의 근처에 있고 행복의 파랑새는 집에 이미 있다. 늘 꿈을 꾸기만 하는 사람은 그 꿈이 실현되지 않으면 절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아프게 된다. 나처럼 말이다.


늘 꿈을 꾸기만 하는 사람은
그 꿈이 실현되지 않으면 절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아프게 된다.


나는 특유의 공상을 잘하는 성향에 더해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미래를 그렸다. 매년 다이어리를 사면 그곳에 빽빽하게 나의 미래를 그렸다. 그 미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아주 능력 있고 아름다운 내가 최상의 가정을 꾸리고 명품 옷도 입고 가방도 가지고 외제차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이루고 싶었다. 이러한 꿈이 이뤄지지 않은 날들이 길어지고 내가 그리던 모습을 이미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작아졌고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를 과시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꿈이 있는 것 이루고 싶은 미래가 있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누군가 매일 살아내는 삶의 합이 내 인생이라고 한 것처럼 내가 살아내는 현재 지금이 결국 나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원하고 그 능력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을 위해 달려왔다. 늘 따라가면 멀어지는 무지개처럼 그렇게 희미해져 가는 꿈을 보며 절망했다.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진 것, 내가 지금 느끼는 것 모두 무시한 채 달려온 날들을 반성한다.


아마존에서 뭘 팔면서 월 1000만 원을 버는 것을 꿈꾸며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카드값을 줄이고 소비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게 현재 내가 파랑새를 발견하는 법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물론 클래스 101이나 탈잉에 뜨는 강의를 보면 여전히 혹한다. 아마존 강의는 너무 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전에 PDF 강의 결제해 놓은 것과 데이터 마이닝 강의를 다 들은 후에 듣기로 자신을 다독였다. 꼭 아마존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재정을 다룰 능력이 없다면 큰돈은 독이 될 뿐이다.


그동안 내가 결제한 상당 부분의 물건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 산 물건들이었다. 내 소득 수준에 니베아 립밤이면 충분할 것을 10배 정도 비싼 샤넬 립밤을 쓰면서 나는 부자인 듯 보이고 싶었다. 절약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내 이상에 들어맞지 않았다. 나는 두둑한 연봉을 받고 부유한 집안을 가진 누군가처럼 되고 싶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현실을 직시한다. 쓰다만 립밤을 모아 사용한다. 나의 통장 잔고와 대출을 직시한다. 읽다만 책들을 정리하고 듣지 않은 강의를 다시 켠다. 하고 싶은 일들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내게 주어진 현재를 두렵고 떨리지만 밝은 빛 속에서 바라본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 위해서 나는 부끄럽다고 여긴 내 모습을 직시한다.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현재를 바라본다.


나는 소비 단식 1년 후 빛나는 미래, 돈도 다 갚고 막 돈도 많이 벌고 그런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그저 매일 소비하지 않으려 애쓰고 매일 나에게 잘했다 칭찬한다.

매일,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려 한다.


1년 후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나는 살고 있다.



소비 단식 1년 D-205 (2021/07/16)





드디어 50번째 글을 발행하였습니다. 올 7월에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고 그래도 매주 1개 이상은 발행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렇게 쌓여있는 글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었구나 생각이 듭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늘 읽고 공감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글 쓰고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평안한 2020년 마무리 하시길 기도합니다.


서박하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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