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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Dec 28. 2020

내 마음을 돈으로 셀 수 있을까

소비 단식일기 (18): 선물과 용돈, 그리고 친구와 먹는 밥에 관하여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는 집에서 놀고 있지만 그래도 한 해 동안 아이를 돌봐주신 선생님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마카롱을 주문했다.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다고 하길래 겸사겸사 들고 찾아뵙기로 했다. 마카롱 한 세트에 29000원, 12개이며 2세트를 구입했다. 작년에는 홀케이크 하나와 콜드 브루 커피 2병을 사 갔는데 올해는 시기가 시기니 만큼 선생님들이 나눠서 집에 가져가실 수 있도록 마카롱을 선택했다. 58,000원을 결제하고 나니 체크카드 잔액이 10만 원도 남지 않았다. 58,000원이면 마트에서 장을 한번 볼 수 있는데라고 잠시 생각했다.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이렇게 물질로밖에 할 수 없는 걸까? 2000년도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에도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결국 그렇다고 결론 지을 수밖에 없는 듯하다.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이렇게 물질로밖에 할 수 없는 걸까? 



사실 나는 한 친구와 이런 문제로 결국 연락이 끊어졌다.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대학시절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여서 선물도 따로 만나서 하고 웨딩촬영 날도 가고 축의금도 따로 하고 결혼식날 미용실부터 따라다니면서 가방도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뷔페에서 밥도 사고 선물도 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할 때 밥을 사주며 청첩장을 주었다. 그리고 친구는 돈이 없다며 축의금을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 후에 선물을 보내준다며 주소를 받고 그 후로도 연락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낳고 나자 또다시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연락 없이 지내고 있다.


나도 서운하지 않았었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얼마나 돈이 없는지 사실 잘 몰랐다. 친구 부부 모두 이름 들으면 알만한 기업에서 일하는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이 없다고 미안하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래도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작은 내복이라도 하나 선물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SNS에 올라오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한번 갈 돈이면 아기 내복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친구는 소식이 없다.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그 뒤로 친구는 카톡도 탈퇴하고 모든 SNS 창구를 닫아버렸다.


Photo by Kyle Glenn on Unsplash


이러한 내 마음을 경험한 이후로 나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항상 때에 따라 선물을 하곤 한다. 만날 수 없으면 기프티콘이라도 보내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는 선물을 산다. 시댁에든 친정에든 항상 귤 한 봉지라도 사들고 가려고 노력한다. 늘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들 하시지만 더 주는 편이 주지 않고 서운한 마음을 남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수년간 아무것도 사들고 오지 않는 사람을 흉보는 어른들을 보며 더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소비 단식을 시작하고 나서도 이 비용은 줄이지 않았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더 못 보게 되면서 선물을 보내는 일이 그나마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을 돈으로 대신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마음을 돈으로 대신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되었다. 놀아주는 대신 장난감을 사주는 부모처럼 나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대신 선물을 하고 모든 일을 다했다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시댁에는 최근에 방문을 거의 안 하면서 선물과 용돈만 잔뜩 드리고 있다. 그리고는 나는 할바를 다했다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찾아뵈도 어차피 물질적인 부분은 채워드려야 하니 이게 더 나은가 생각한다. 한때 절약 생활을 한다고 시댁에 가져가는 과일과 용돈을 좀 줄였더니 표정이 좀 안 좋아지시고 별로 선물도 반가워하시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시댁에는 항상 명절에 많은 선물을 가져다 드리는데 찾아뵈면 감정노동에다가 물질적인 것까지 채우느라 내 마음이 너덜너덜 해진다. 이렇게 드리고도 마음이 너덜너덜한 내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긴 한다. 왜 좀 더 당당하지 못하고  좀 더 편하게 생각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참고하는 소비 단식 책, '나는 1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를 보면 당장 가족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지 않고 카드로 대신하고서 커다란 반발에 부딪힌 부부의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못 받는 건 마치 자신에게 이미 있는 물건을 빼앗아 가는 것과 같은 마음을 느끼는 것 같다. 앞서 설명한 나도, 시댁 어르신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미 이런 걸 받겠지 기대하고 상상한 것만으로도 이미 내 것이 되어있었는데 받지 못하니 더 큰 박탈감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런 반발은 일시적이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빚을 갚아주는 게 아니니 아픔을 견뎌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도 그 점에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서운함 마음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일단 튼튼해야 하는데 내가 그렇지 못하다. 함께 이야기할 남편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남편은 케냐에 있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지난 추석에 코로나로 시댁에 가지 못해서 그때 외주 받은 돈이 들어와서 좀 선물과 용돈을 많이 드렸었다. 그때 시어른들께서는 선물 보내기 전까지는 안 오는 것에 매우 서운해하셨는데 그 선물 후로 '코로나인데 뭘 모이고 그러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내는 거지 뭐 즐거운 추석 보내라'라고 답이 오셨었다. 계속 성경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긴 한데 2000년 전도 전에 적힌 잠언에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라고 한 것처럼 어찌 되었든 목적을 가진 선물이 자신의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것들을 이용한다.  


사실 물질을 대신할 만큼 노력과 정성으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 기준에는 돈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더 많이 전화하고 표현하고 정성을 담아야 한다. 태극당 선물세트 5만 원짜리보다 직접 베이킹을 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 안부전화도 자주 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마음을 표한할 수 있지만 전화기 버튼을 누를 때까지 정말 많은 번뇌와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여름 시댁에서 남편 없이 1주를 보내고 2달을 아팠다. 하지만 물질은 단순하다. 그 자체로 빠르게 그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힘이 있는 것이 돈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돈을 버는 일은 쉽지 않지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서나 숫자와 홀로 씨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니 당분간, 내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과 감정을 모두 온전히 사용하고도 아프지 않을 때까지는 좀 더 힘을 의지할 생각이다. 다만 어느 정도 변화가 필요하긴 하다.


Photo by Petr Sevcovic on Unsplash


친구나 지인을 만나 식사를 하는 일도 비슷하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는 친한 몇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게 정말 좋았다. 정말 피폐했던 내 삶의 큰 기쁨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면 좋은 레스토랑에 갔고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즐겼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날 때는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대부분 친구들은 내가 레스토랑을 정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밥 먹는 비용은 내가 내곤 했다. 소비 단식을 시작하고 나서도 그랬다. 한 달에 3-4번 만나던 가장 친한 친구와는 광화문 근처의 맛집은 다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비용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깝다거나 부담되는다는 게 아니라 꼭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어야만 친구와 만날 수 있는 건가 하고 그동안의 내 마음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 것이다. 나는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맛있는 걸 먹고 분위기 좋은 데를 가고 싶은 걸까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맛있는 걸 먹고 분위기 좋은 데를 가고 싶은 걸까 나 자신에게 물었다


소비 단식 책에 있는 저자는 친구를 만날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거나 먹지 않은 적도 있다고 했다. 외식에 전혀 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너무 불편을 주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되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친구가 김밥천국에서 김밥과 라면을 먹고 아주 저렴한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편의점에서 커피를 먹자고 하면 내 마음이 불쾌할까? 아니면 친구가 나에게 돈 쓰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할까?  한 달에 3-4번 만나는 아주 친한 친구와는 이렇게든 저렇게든 상관없겠다. 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러자고 해도 나는 흔쾌히 따를 것 같다. 다만 친구가 내가 근사한 브런치를 주문하고 먹는데 앞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일단 식당에 반입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안 먹고 앉아있다면, 커피숍에서도 물만 마시고 있다면 나는 어떨까 (이것도 카페에는 좀 민폐가 아닌가?). 나는 이 부분까지 소비 단식을 하니 친구에게 불편을 감수해달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차라리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밥을 해 먹고 커피를 내려먹으면 모를까 외식하며 그렇게는 못하겠다.


만약 내가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실제로 한 달에 3-4번 만나는 친구는 친구와 마음이 통해서 친구의 집에서 매주 같은 요일에 만나서 번갈아가며 요리를 준비했다. 내가 팬케이크를 굽거나 친구가 파스타를 해주거나 혹은 라면을 같이 끓여먹고 테이크 아웃해온 커피와 케이크를 먹기도 했다. 지금은 이도 저도 못하고 집에만 있지만, 어찌 되었든 나에게 중요한 건 친구와 이야기하는 시간이지 근사한 곳에서 멋진 요리를 먹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다만 너무 성의 없게 느껴지는 만남 후에 남았던 씁쓸한 뒷맛 때문에 가급적 좋아하는 사람에게 정성을 들이고 싶었던 마음이 그렇게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게 한 것 같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나는 그 사람들을 소중히 지키고 싶다.


사람들을 소중히 지키고 싶다


Photo by Icons8 Team on Unsplash


가격이 중요한 건 아니라 내 마음이 중요하다


가격이 중요한 건 아니라 내 마음이 중요하다. 내가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심하게 고생하던 작년에 내가 논문을 쓸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친한 대학 동기 부부가 있다. 올해 박사학위 마치면 호텔 뷔페에서 식사를 대접해야지 생각했는데 결국 시기가 이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친구 부부는 나와 딸을 불러 각종 공원을 데려가며 애정을 쏟았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에 멋진 캡슐커피머신을 선물했다. 사실 나에게는 좀 무리다 싶게 거금이었는데 비상금을 조금 털어서 썼다. 그리고 친구 부부도 나도 행복했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는 곧 만나자는 기약 없는 말 대신 부담 없는 기프티콘을 보냈다. 함께 마시지 못하지만 그래도 커피 마실 때 나를 생각해달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다시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일상이 찾아오면 나는 아마도 친구들과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좋은 커피를 마실 것이다. 다만 분에 넘치게 좋은 곳, 예를 들면 호텔 브런치나 청담동 파인 레스토랑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좋은 곳에서 최선을 다해 친구를 이야기를 듣고 진심을 담아 대화하고 시간을 충실히 보낼 것이다. 김밥천국에서 오래도록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으니 말이다. 좋아하는 읽던 책을 선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사드릴 어른들이 있으면 허영을 담은 호텔 베이커리 대신에 파리바게트나 투썸플레이스에서 케이크를 살 것이다. 그리고 작은 카드에 짧게나마 마음을 전해보겠다. 또 선물도 미리 준비를 시작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용돈도 갑작스럽게 마련하느라 적금을 깨지 않고 경조사비를 꾸준히 모으는 정성을 들이고 있다.


 마음을 담되 그 마음이 닿지 않는다고 내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 어렵다. 마음을 담되 그 마음이 닿지 않는다고 내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이렇다 할 기준을 정하지 못했다. 내 마음이 편한 쪽으로 내 지갑을 여는 것으로 적당히 정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여전히, 아니 해가 지날수록 더 어렵다. 



Main photo by Kira auf der Heid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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