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단식일기 (19): 데자와, 믹스커피 그리고 탄산수
나는 뭐 하나에 빠지면 금세 의존도가 높아진다. 중독이 잘 되는 편이라고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영화도 책도 음식도 모두 빠지면 정말 헤어 나오기 어렵게 집중하곤 한다. 그런 나를 알기에 무엇에든지 조심스럽게 다가가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시절에는 데자와 중독자였다. 단지 수업을 같이 듣던 옆 건물 대학원생이 "데자와 성애자시군요"라고 했다 ( 00 성애자라는 말은 그때도 지금도 여러 가지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다). 친한 동기는 "언니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 거야"라며 추운 날 패딩 주머니에서 따뜻한 데자와를 꺼내 주곤 했다. 그 당시 살짝 썸을 타던 4살 어린 천재 물리학도도 늦은 밤이면 "누님, 데자와 한잔 하실까요?"라며 데자와를 뽑아 로비에서 기다리곤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는 늘 '데자와 산책 콜?'이라며 데자와를 들고 학교 주변을 산책하곤 했다. 그 당시 학교에 있던 자판기들은 시중보다 3-400원씩 저렴한 가격에 데자와를 판매했다. 생각해보면 학교 밖에서는 데자와를 거의 먹지 않았다. 데자와는 내게 학교 친구들과 보내는 달콤한 시간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믹스커피 중독자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야근은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일했다. 저녁 주문해 먹고 나서 커다란 머그컵에 믹스커피 두 봉지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빈 커피 봉지로 휙휙 저어 곁에 두고 자판을 두드려대곤 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허리도 구부정하게 한참 화면을 노려보며 보고서와 씨름을 하다가 한숨 돌리며 마시는 믹스커피의 달콤함은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어주었다. 물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머리에서 올라오던 스팀도 역시 나에게 묘한 힘을 주곤 했다. 오랜 시간 믹스커피는 나에게 또 하나의 동료였다.
그리고 지금은 탄산수 중독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탄산수 중독자가 되었다. 아이가 1돌즘 되었을 때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다. 밤마다 맥주를 들이켰었다. 뭘 먹든지 맥주와 함께 먹었다. 라면도 떡볶이도 감자칩도 모두 아*히 슈퍼드라이와 함께였다 (일본 불매 전). 그 당시 맥주와 함께 몸무게가 6kg이나 증가했었다. 체중 조절을 위해 대안으로 탄산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맥주 맛과는 많이 다르지만 슈퍼드라이를 좋아하는 만큼 탄산이 주는 알싸함이 갑갑한 속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케냐에서는 하*네켄을 주로 마셨다. 아이를 재우고 혼자 마담 세크리터리를 보면서 한 캔 마시는 게 거의 유일한 낙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논문을 쓰면서 밤에 맥주를 마실 수는 없어서 탄산수와 커피를 들이켰다. 당연히 딸이 술을 못 마신다고 생각하는 부모님과 함께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물론 속이 말이 아니었다. 위경련으로 병원에 몇 번 갔었고 약도 먹었다. 탄산수 끊기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달 만에 다시 탄산수를 주문하곤 했다. 탄산수를 마시면 나오는 수많은 페트병이나 알루미늄 캔에 대한 죄책감도 덩달아 쌓여갔다. 탄산수 기계를 사려고 여러 번 생각했는데 그러면 더 열심히 마실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친정아빠는 내가 탄산수 마시는 것을 너무도 염려하셔서 나는 방에 빈병을 모아두었다가 몰래 재활용장에 가져가곤 했었다.
나는 스트레스가 많을 때 탄산수를 마신다.
나는 스트레스가 많을 때 탄산수를 마신다. 올해 가을 내내 열심히 줄였다가 11월부터 코로나가 심해서 아이가 집에만 있고나서부터 일주일에 7개 정도 마시고 있다. 스트레스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속이 답답하고 가슴이 눌린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때 탄산수를 마시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어디선가 기쁠 때 마시는 술은 중독되지 않지만 슬플 때 마시는 술은 중독이 된다고 들었다. 나는 힘들 때 탄산수를 마시다 보니 중독이 된 것 같다. 한 달에 탄산수 비용은 많으면 4만 원 정도 사용하는 것 같다. 쿠팡에서 주문하면 20개에 만원 남진하는데 나는 하루에 2-3개의 탄산수를 마시니 3-4만 원 정도 드는 것 같다. 그렇게 쌓아놓고 마시면 친정부모님이 너무 걱정하셔서 최근에는 마트에서 7개에 4천 원 하는 트레비 캔을 사서 놓고 아껴서 먹고 있다. 하루에 1리터도 넘게 마실 수 있는데 눈치가 보여 참고 있다.
이제는 맥주보다 탄산수가 더 좋은 것 같다. 이제 체력이 안되는지 맥주도 아니고 이*톡톡 같은 미세한 알코올 함유 음료만 마셔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밤에 아이를 돌보는 것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나는 멀쩡한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아이를 돌보면서 술에 취해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남편이라도 있으면 하루 정도는 부탁하고 좀 취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알콜 맥주도 마셔봤는데 맥주 맛도 탄산수 맛도 아닌 것이 아주 오묘했다. 여러 가지 종류를 시도해보고 싶긴 한데 너무 맥주처럼 생겨서 친정부모님 기절하실까 봐 참았었다. 나는 마트에서 사서 빨대를 꽂아서 집에 오는 길까지 다 마시고 재활용장에 버리고 들어가곤 한다. 그렇게 맥주 대신 탄산수를 마시다 보니 이제는 맥주보다 탄산수가 더 좋아졌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미니 허니버터 칩 한 봉지와 트레비 레몬맛 한 캔을 곁에 두고 있다.
탄산수를 끊어야 할까.
탄산수를 끊어야 할까. 생필품인가 아닌가에 대해 고민한다. 몸에 좋은지 안 좋은지 늘 검색해보곤 한다. 탄산음료는 과당이 많이 먹지 말라는 말은 많지만 탄산수는 딱히 그런 말이 없어서 그냥 마셨다. 다만 뭐든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뭐든 의존도가 높았지만 그만큼 없을 때의 고통이 심해진다. 과거 믹스커피 중독자 시절, 회사 워크숍에서 아침에 믹스커피를 못 마셔서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신경이 놀랍게 예민해진 나를 보며 약간 충격받았었다. 그러고도 커피를 끊지 못했지만. (카페인 중독도 있는데 여러번 커피를 끊으려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길가다가 목마르다고 편의점에서 비싼 탄산수를 척척 사마시는 행동 자체가 문제다. 이 행동은 탄산수가 아니라 뭐든 필요하면 가격 상관없이 당장 사버리는 내 행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불편함 = 스트레스를 견뎌낼 힘이 없는 현재 내 모습을 보여준다.
나에게 탄산수는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탄산수는 어떤 의미일까. 모든 하루를 마치고 아이도 나도 목욕을 마치고 잠들기 전, 아이는 앉아서 아이패드로 잠시 놀 때, 나는 곁에 앉아 탄산수를 마신다. 너무 차가운 탄산수는 얼굴이 아파서 보통은 실온에 보관한 탄산수병을 뜯는다. 칙- 소리에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한 모금 삼킨다. 천천히 목구멍으로 탄산이 넘어간다. 따끔거리는 탄산의 목 넘김이 좋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코까지 올라오는 탄산이 기분 좋다. 아껴가며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딱 한 캔이 좋다. 아이와 방에 들어가 책을 읽고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 그 향이 감도는 시간이 주는 여유가 기쁨을 주듯이 잠들기 전 샤워를 마치고 마시는 레몬향 탄산수의 시원함이 주는 시간이 주는 안도감이 좋다. 오늘 하루도 잘 마쳤구나 무사히 아이를 돌보았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구나 하고 말이다.
오늘 하루도 잘 마쳤구나 무사히 아이를 돌보았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구나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 뭔가 없으면 안 되는 삶은 어찌 되었든 불편하다. 가격에 상관없이 삶이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김치가 없으면 안 되는 삶은 외국에 나갈 때 고춧가루 몇 킬로씩을 짊어지고 나갈 수밖에 없고 밥솥도 늘 쓰던 청소기도 바리바리 짊어지고 나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들을 견뎌내기보다 익숙함을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 내 에너지는 이미 한정되어 있는데 써야 할 곳이 따로 있기에 삶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덜고자 애를 쓴다. 내 삶을 무겁게 하는 나의 마음 부담감들이 보다 가벼워진다면 탄산수에서 그리고 중독되어있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삶을 무겁게 하는 나의 마음 부담감들이 보다 가벼워진다면 탄산수에서 그리고 중독되어있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