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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Feb 01. 2021

사실 이건 엄마가 가지고 싶어서 사는 거야

소비 단식일기 (20):  육아비용과 내면 아이 보듬기

내가 가장 비용을 줄이기 어려운 부분은 다름 아닌 육아비용이다. 쿠팡으로 수도 없이 뭔가를 배달시키는 8할은 바로 아이에게 뭔가 필요하다고 느껴져서다.


아이가 좀 더 어릴 때는

'어 분유'

'어 물티슈'

'어 아기세제'

'어 아기 이유식 재료'


좀 더 크고 나서는

'어 플레이도우'

'어 옥토넛'

'어 색연필'

'어 종합장'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울&불안장애로 약을 많이 먹어서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육아&살림에 자본의 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다.


https://brunch.co.kr/@seoparkha/58


그래서 육아에서는 줄일 부분이 없는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오랜 고민과 내 소비성향을 지켜본 결과, 나는 아이를 위해 산다고 하는 많은 것들이 대부분 내가 가지고 놀고 싶어서 사는 것이다. 아직 덜 자란 부분이 있는 나의 내면 아이가 사달라고 보채는 것들을 아이에게 투영해 사준다.


많은 내 또래가 그렇듯 내 어린 시절도 늘 결핍이 있었다. 그림 그리고 만들고 하는 걸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어릴 때 살던 강원도 고성군 00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흙이 섞여있는 찰흙과 색종이, 크레파스 정도였다. 처음으로 36색 크레파스, 그것도 금색과 은색이 들어있는 커다란 박스를 받았을 때 기쁨이 여전히 기억난다. 아까워서 조심조심 사용했고 때가 묻으면 휴지로 닦아서 보관했다.


가지고 놀 것이 많지 않던 때라 귤껍질 같은 것도 잘 가지고 놀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만히 누워서 공상하는 걸 좋아했는데 귤껍질로 지갑도 만들고 공주도 만들어서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 앞집 양말가게에서 얻어온 상자에 넣어 숨겨놓았다가 며칠 뒤 곰팡이가 생긴 걸 보고 울상을 지었다. 초여름이면 토끼풀이 많은 잔디밭에 앉아서 한참 동안 화관을 만들기도 했고 하얀 A4용지 같은 건 너무 귀했던 때라 할머니가 일요일에 교회에 다녀오시면서 가져오신 주보 몇 장을 접어서 지갑도 만들도 돈도 만들어서 시장놀이도 했었다.


국민학교 2-3학년때 즘 설날 세뱃돈을 모으고 모아서 미미인형을 구입했다. 그렇게 2-3년 모아서 2개 정도의 미미인형과 몇 벌의 인형 옷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혼자 하는 인형놀이를 정말 좋아했다. 소공녀 세라가 다락방에서 있는 셈 치고 놀이를 하듯이 나도 인형놀이도 하고 공상을 하면서 나는 소공녀 세라가 되기도 하고 요술 소녀가 되기도 했다. 커다란 바구니 안에 나만의 세상을 담아두었다. 엄마가 보기에는 그냥 빈 음료수통이어도 나에게는 예쁜 화병이고 소공녀의 소풍용 우유병이 되고 가방이되기도 했다. 누군가 보기에 쓰레기통으로 보일 그 통이 나에겐 커다란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세상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면 내 소중한 비밀의 화원이 모두 사라져 있곤 했다. 엄마가 보기에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들은 모두 쓰레기 봉지에 담겨있었다. 너무 여러 번 있었던 일이라 울지도 않고 나는 더 작은 상자로 나의 세상을 옮기곤 했다. 그렇게 옮기고 옮겨서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작아진 상자 하나가 남아 있을 무렵 집에 손님들이 오면 부모님은 그 인형을 손님들의 아이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다. '너는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걸 아직도' '그거 좀 꺼내 줘라. 그냥 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만은 내어줄 수 없었다. 눈물은 나지도 않았다. 오래도록 침범당해 온 나의 세상을 지켜내고 싶었다.


Photo by Phil Hearing on Unsplash

하지만 서울로 이사오던 날 그 상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용돈을 모아 모아 사모았던 만화책들은 내가 대학교 기숙사로 떠나고 나서 곧 다 사라졌다. 어린 시절 일기장들과 편지들은 내가 결혼하고 나서 친정집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내 손으로 버린 것 없이 다 사라져 버린 나의 보물상자들, 나의 어린 시절은 나의 내면 아이를 여전히 아이로 남아있게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입에 뭔가를 더 이상 넣지 않게 되자 나는 다채로운 놀잇감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플레이도우를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채로운 놀이도구를 들였다. 파스타 만들기, 국수 뽑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등할 수 있는 놀이도구는 다 사서 가지고 놀았다. 옥토넛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생일마다, 치과 다녀올때마다 탐험선을 사들였다. 물감도 색연필도 종류별로 사놓고 함께 그림을 그렸다. 최근에는 슬라임 만들기를 하며 다양한 비즈를 사서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가지고 놀던 것들은 부셔 저서 쓸 수 없거나 1년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것들만 정리했다. 아이가 정리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었다. 우리의 거실부터 침실까지 아이의 놀잇감, 아니 나의 놀잇감으로 가득했다. 발에 비즈가 밟혀 아프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야 나의 내면 아이에게 어릴 적 사라진 커다란 상자를 찾아 돌려주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또 다른 어린 나를 대면하는 일이다.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나의 아픔을 본다.
아이가 울 때 안아주며 어린 시절 혼자서 울던 나를 함께 안아준다.


우리 부모님은 하굣길에 비가 와도 결코 데리러 온 적이 없었다. 친구들의 우산을 쓰고 가거나 다 맞고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생각했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 모든 비 오는 날 꼭 데리러 가야지. 그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코코아를 같이 마셔야지.


물론 부모님은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부족함 없이 키우시려 노력하셨고 최선을 다하셨다. 하지만 늘 비어있는 자리가 있게 마련이며 그 자리는 내가 스스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그 시절을 남겨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 자란 내가 어린 나를 안아주면 되는 것이다.


이런 나를 깨닫고 나서 소비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하게 된 작은 실천은 그전에 아무 생각 없이 벌크로 사들이던 것들 조금씩만 사게 된 것이다. 안 사진 않는다. 아이와 문방구에 가면 지우개 도사고 스티커도 사고 비즈도 산다. 다만 쿠*같은 곳에서 대량으로 사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 또 아이에게 쿠팡으로 고르고 쉽게 주문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달라고 하면 뭐든지 다 사주는 것도 절제하고 있다. 특별한 날 아이를 위해 사주거나 함께 보내는 미술놀이 시간을 위해서만 구입하기 위해서 조금씩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나는 아이와 함께 나의 내면 아이를 같이 키워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나의 내면이 건강하게 자라서 이제 괜찮아라고 말하며 그때 나는 이렇게 사들이는 걸 멈추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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