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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Nov 30. 2020

우울해도 불안해도 나는 엄마다

우울&불안장애 치료 일기 (5): 우울&불안장애 엄마의 육아

Photo by Steve Gale on Unsplash


우울&불안장애로 약 2년여간 치료를 받고 있다. 2개월 전에 치료를 완료했다가 다시 시작했다. 

내 아이는 이제 49개월이 되었다. 


나의 우울&불안장애는 거의 3-4년 정도 된 것 같다. 아마 아이를 낳고 서서히 시작된 것 같은데 아이를 기르며 대학원 다니고 직장생활까지 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찾아온 것 같다.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기 전에도 여러 번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했는데 발길을 들이기가 참 어려웠다. 아주 여러 번 고민하던 어느 날 갑작스레 예약하고 찾아갔는데 왜 늦게 갔을까 좀 후회가 되었었다. 


어찌 되었든, 아이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걸 최소화하고 싶었다. 특히 육아 우울증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기사를 많이 봐서 혹여라도 내가 그렇게 할까 봐 너무 무서웠다. 혹은 아이를 안고 어디든 뛰어내릴까 봐 걱정되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뭔가 화가 나는 대상이 생기는 것 같다.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는 그 분노의 대상이 아이가 되는 것인 것 같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남편에게 그렇게 화가 났다. 남편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도록 기러기 부부생활을 해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남편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파견을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마 임기가 끝나야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를 기르는 데에는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특히 생활규칙과 예절을 가르치려면 꾸준히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병을 앓으면서 의욕이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에 에너지를 최소화해서 아이를 기르는 게 필요했다. 아이가 떼쓰거나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그런 일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좀 오냐오냐 키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 기간 동안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화를 내거나 때리지 않았음에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버텨낸 나에게 그저 대견하다고 말해주려고 한다. 


아이를 잘 못 기르는 건 극단적으로 보면 두 가지 인 것 같다 너무 지나치게 엄하게 키우거나 너무 지나치게 오냐오냐 키우거나. 둘 다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냐오냐하는 쪽을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안아달라면 안아주고 울면 안아주고 밥도 먹여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같이 사탕도 사 먹고. 언젠가 나의 기운이 회복되면 규칙을 알려주는 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Photo by Marcelo Silva on Unsplash

가장 먼저 집안일을 최소화했다. 조금 지저분한 것을 견디기로 했다.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를 들였고 반찬은 반찬가게와 각종 냉동식품을 애용했다. 밥은 한 번에 많이 해서 얼려두고 햇반을 항상 구비해두었다. 

등원 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침은 늘 간단히 떡이나 빵을 준비해두었다. 아이는 피부가 예민해서 원하는 1-2가지 옷이 아니면 입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아이가 입는 옷은 밤이라도 빨아서 말려두었다. 

아이가 잘 때 끌어안고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났다.

아이가 놀던 장난감을 꼭 치워야 한다고 잔소리하지 않았다. 아침까지 그대로 두고 또 가지고 놀게 했다.  집안은 좀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나와 아이는 행복했다.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같이 마트에 가지 않았다. 대신 온라인으로 장을 보곤 했다. 

놀이터에서 놀자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놀았다. 

밥을 한자리에 앉아서 먹는 것, 누군가를 때리지 않는 것, 물건을 던지지 않는 것 등 최소한 인간으로서 (?)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들 이외에는 가르치지 않았다 (못했다).

새벽2시에 일어나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들어주었다. 


몸이 조금 나아진 지금, 아이에게 함께 살아가며 지켜야 할 예절과 규칙을 알려주는 게 쉽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잘 따라주고 있다. 아이가 영원히 밥을 내가 먹여줘야 하고 옷을 입혀줘야 하는 것이 아니었고 드러누워 우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다행히 화장실도 잘 가리고 옷도 잘 갈아입고 밥도 잘 먹는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약간 사회성이 걱정되긴 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친구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친구 이야기도 집에 오면 해준다. 같은 반 친구들과 2년즘 같이 지내니 이제 좀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어제는 친구에게 그림 편지도 썼다. 아이의 사회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어릴 적에 아주 내향적인 아이 었고 집에 혼자 있는 게 가장 좋았던 터라 조금 더 기다려주기로 했다. 


여전히 아이는 조금 응석받이이지만 나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아이를 기르는데 집안일을 외주(식기세척기, 건조기, 반찬가게)를 주었기에 비용이 좀 많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히 잘했다고 나에게 이야기한다. 늘 죄책감에 시달리고 나는 정말 최악이야라는 생각을 달고 살다가 병을 얻었기에 앞으로는 좀 더 나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살다가 좀 부족함이 발견되면 또 그때 가서 최선을 다해 극복하면 된다. 이제까지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고 다시 한번 나에게 격려했다. 


우울해도 불안해도 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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