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로 들어올 때 다니던 병원에서 선생님께서 최대한 약을 많이 처방해주셨다. 다행히 오기 전에 약을 줄일 시간이 있어서 최소 복용량으로 처방받아서 가져왔다. 그리고 이 약을 다 먹으면 약을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셨다. 사실 작년 가을에 약을 끊었다가 호된 부작용을 겪고 다시 약을 먹었었다.
그때 나타났던 부작용은 다음과 같았다.
- 두통
- 어지러움
- 몸의 부종
- 손발 저림
- 머리가 멍함
전반적으로 순환장애에 가까웠는데 이 때문에 병원을 몇 군데를 찾았는지 모른다. 피검사에 초음파에 온갖 검사를 다 받았지만 다 정상이었다. 그제야 아 약을 끊어서인가 싶었다. 급하게 병원을 방문했고 약 먹고 1주일 만에 모든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가 바뀐 봄이 되었고 나는 나이로비에 오게 되었다. 이제 정말 약을 끊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 것인가. 불안감에 아이*브에서 우울&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먹는 테아닌과 기타 영양제 같은 것들을 수십만 원어치 구입했다. 그리고 '우울&불안장애 약을 끊는 법'이런 걸 검색했다. 결국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 답이었다. 그리고 햇살.
나이로비로 와서 나는 오롯이 홀로 집안을 꾸리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서는 시어머니, 그리고 그 후에 나이로비에서는 헬퍼 이모님,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는 친정엄마에게 여러모로 의지하며 살림에서 어느 정도 손을 놓았었다. 물론 워킹맘이었고 대학원생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다시금 집안을 돌보는 일을 시작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지금 일하는데 집안일을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헬퍼 이모님을 부르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이 나에게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고양이 밥을 주고 어제 쌓여있는 빨래를 돌린다.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고 빨래를 널고 내 아침을 먹는다. 지저분한 곳만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정리한다. 아이와 나의 점심을 준비하고 일을 한다. 일을 하는 중간중간 화장실 휴지도 채우고 식료품 정리도 한다. 아이의 장난감을 중간중간 정리하고 산책을 한다.
한자리에 진득이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은 새벽과 밤에 하고 이메일 회신이나 고객 문의 같은 것들은 낮에 핸드폰으로 주로 처리를 한다. 설거지는 오전 오후에 모았다가 4시즘 회사일이 좀 잠잠해지면 한꺼번에 한다.
처음에는 빨래를 매일 세탁기에 넣는 것조차 버거웠다.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힘들었다. 특히 남편을 위해.
이건 TMI 긴 한데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사람을 챙기는 걸 불편해하는 편이다. 남자이며 나이도 많은 사람들은 내가 자라오면서 나를 나이로 누르고 '여자가~'란라는 말로 누르며 말도 안 되는 권위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오빠가~"어쩌고 하는 사람들은 딱 질색이었다. 대학에서는 왠만하면 선배라고 불렀고 사회생활하면서는 직책을 부르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연애할 때 오빠라고 하는게 너무 어려웠다. (남편은 2살많다) 암튼 나이도 많고 나보다 잘났으면 왜 나보고 밥을 차려달래? 자기가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어릴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어른들의 인정과 사랑을 어떻게 하면 얻는지 알았기 때문에 왠만한 나이많은 남자들은 다 말빨과 공부로 무시하며 자랐다. 당연히 지금은 이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집안일에 적게 참여한 것도 또 이제 커다란 2층 집 살림을 하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이로비는 아프리카 도시들 중에는 가장 잘 사는 도시라 한인들도 많아 여러 가지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가격이 어마 무시하다. 생생우동 하나에 5천 원, 신라면은 2500원, 김말이 한 봉지에 15000원, 삼호어묵 한 봉지에 8000원 등등. 그리고 한인마트가 우리 집에서 왕복 2시간도 넘게 걸려서 다녀오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생전 계획에 없던 김치도 담그고 어묵도 튀기고 만두피도 만들어서 만두도 빚고. 나는 개인적으로 왠만하면 사먹는게 싸다는 주의였다. 특히 김치랑 만두. 이제는 요리 유튜브라도 찍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빨래도 4종류로 나눠도 돌리게 되었다. 수건, 행주, 남편 셔츠, 그리고 나머지. 쨍한 햇볕에 빨래를 널면 내 몸과 마음에 있는 곰팡이도 다 없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에 하루를 마감하고 행주를 세탁기에 돌려 널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든다.
식기세척기를 설치할 수 없어서 설거지도 직접 하는데 저녁 설거지가 끝나 깨끗하게 쌓여있는 그릇을 보면 작은 기쁨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일주일에 2-3번은 타일로 된 주방 바닥을 물걸레질하는데 (대걸레로) 깨끗해진 부엌 바닥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햇볕에 말린 바삭바삭한 이불속에서 잠드는 일도 아침에 비알레띠에 내려먹는 케냐 원두도 모두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 (제일 가까운 카페는 걸어가면 1시간 반정도 걸릴 것 같다. 그마저도 가는 길에 내가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다)
매일 작은 기쁨과 성취, 그리고 햇살들을 모아 약을 대신하고 있다.
여전히 아침마다 영양제를 한 움큼 먹어야 안심이 되지만 이제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