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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Oct 23. 2020

폭식증과 거식증 사이는 12kg

우울&불안장애 치료 일기(4):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56kg, 내가 평생 유지하던 몸무게이다. 키가 다 자란 중학교 3학년 이후로 이 몸무게를 중심으로 +-3kg 정도를 유지했다. 고3 때 59kg, 재수할 때 56kg. 아이를 낳고 100일 즘 되었을 때 56kg이 되었다. (-3kg은 없다 ㅋ)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일어나 가뿐 숨을 몰아쉬던 어느 날 이후, 나는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보게 되었다. 회사에 복직하고 아이를 돌보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예전처럼 밤을 새우고도 며칠이나 버티고 열심히 일하고 살아갈 줄 알았다. 커피를 연신 들이키며 밤을 새워도 한 줄도 써 내려갈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맥주를 먹기 시작했고 앉은자리에서 3-4인분의 고기를 먹어치웠다. 


퇴근하고 백화점 지하 1층 푸드코드를 돌아다니며 마구 카드를 긁었다. 먹을걸 사는 건 죄책감이 덜했다. 그동안 저금해놓았던 예금을 까먹어가며 허한 마음을 채웠다. 남편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를 위로하는 건 밤늦게 꺼낸 차가운 맥주와 막 끓여낸 라면뿐이었다. 어느 날 몸무게를 재보고 체중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급한 마음에 저녁을 굶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그다음 날의 폭식이었다.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어보았지만 식욕은 더 늘었고 맞지 않는 옷에 짜증은 늘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날 보고 놀라 말을 금치 못 했다.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나날이 경신하던 어느 날, 남편은 해외파견을 떠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친정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이 2개월 뒤 데리러 와서 아이와 함께 케냐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식욕이 떨어지고 점점 살이 빠지더니 나이로비에서 56kg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식욕을 포함한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하루에 12시간을 잠을 잤고 넷플릭스를 봤다. 햄버거 하나도 버거울 만 큰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먹일 때 조금 같이 먹고 잠을 잤다. 그리고 아이와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Photo by Kobby Mendez on Unsplash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이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다가 병원을 찾았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식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갸우뚱했다. 이렇게 많은 약을 먹고도 식욕이 회복되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했다. 수면제를 늘려도 잠을 자지 못했다. 샌드위치 반쪽도 한 끼에 다 못 먹을 만큼 식욕이 없었다. 논문을 쓰기 위해 밤에 혼자 노트북을 펴고 앉아 노려보다가 배달앱을 켜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5분도 걸리지 않아 다 먹고 나서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다. 


그리고 어느 날 체중계에 올라가니 52kg이 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커피만 몇 잔을 마시고 배가 쥐어짜는 듯이 아파서 뒹굴거리다 약국으로 기어가 약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쾡한 눈으로 박사학위 심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극한의 허무함에 휩싸였다. 백화점에 들려 양손 가득 먹을 것을 샀지만 하나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1년이 지났다. 


3개월전즘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는 선생님 말에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몸무게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난달에 일이 너무 많아서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하던 어느 밤, 서브웨이 샌드위치 세트를 시켜서 먹고 5분 만에 모두 토했다. 절망이 몰려왔다. 이제 다시 시작인가. 언제 즘 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까. 먼길을 돌아보니 다시 제자리. 평생 이럴지도 모르겠다는 어두움이 밀려온다.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도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먹고 길을 나선다. 

이것만이 나의 빛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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