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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ug 26. 2020

우울&불안장애의 주요 증상들

우울&불안장애 치료 일기(3):  어두운 동굴 속에서 

제가 경험한 우울&불안장애의 주요 증상들에 대해서 나눠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모두 같지는 않을 거예요. 사실 제가 증세가 아주 심했을 때에는 제 증상에 대해서 자각을 하지 못했어요.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이제 치료의 끝물에 보니 얼마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는지 그때 기억이 얼마나 힘들고 끔찍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정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에요. 혹시 글을 보고 '어, 지금 나네'하시는 분들은 얼른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시길 바라요. 안 끝날 것 같은 그 시간들이 언젠가 정말 진짜 끝납니다!  


생각, 감정, 그리고 언어가 둔해진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잘 안 나고 일의 속도가 엄청 느려졌어요. 잘하던 워드나 엑셀 기능이 생각이 안 나고 그전에 10분이면 할 일을 2시간 동안 붙들고 있었어요. 2시간 동안 뭘 하냐면 멍하게 화면을 보고 있었어요. 딱히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화면을 멍하게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가고 일도 시간 내에 잘 못 끝내게 됩니다. 그러면 자책을 하게 되고 그러면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지요. 그리고 감정에도 매우 둔해졌어요. 특별히 좋아하거나 그런 감정이 없어지더라고요. 누가 근사한 뭔가를 보여줘도 "와 예쁘다 멋지다"이런 말이 안 나와서 아주 고생했어요. 얼굴에 그런 게 다 드러나기도 했고요. 언어가 둔해진 것도 한몫했어요. 누가 뭘 물어보면 대답을 로딩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마저 나오는 말도 앞뒤가 안 맞았거든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뒤돌아서서 후회하고 자책을 또 합니다. 그러면서 말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어요. 


종종 숨을 쉬기 어렵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심장이 쿵쿵하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어요. 눈앞이 깜깜해지기도 했지요. 특히 어떤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숨쉬기가 어려웠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메일 알람이 울리면 숨을 잘 못 쉬었어요. 제가 박사과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제 병의 원인 중 하나였는데 그중 하나가 교수님이 아침부터 새벽까지 보내시던 이메일에 답장을 하는 일이었어요. 이런 증세가 심해지면 자다가도 숨이 안 쉬어져서 일어나곤 했어요. 이런 증상이 제 불면의 원인이기도 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잠이 들기 어려운 것은 불안장애고 자주 깨는 것이 우울장애라고 하셨는데 저는 둘 다 심해서 수면제 없이 자려면 2-3시간이 걸리고 그마저도 2시간 있으면 깨서 어두운 천정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했지요. 이때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몸무게가 5kg이나 줄어들었답니다.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어두운 동굴을 계속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제가 감기에 걸리면 꼭 꾸는 꿈이 있었어요. 계속 걸어도 회전목마 타듯 같은 자리에 돌아오거나 같은 사건이 계속 일어나서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꿈이었어요. 자다가 이 꿈을 꿔서 열을 재보면 항상 열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 이 꿈을 '감기 꿈'이라고 불렀어요. 제가 우울&불안장애가 심할 때는 깨어있을 때에도 이 꿈 안에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버스를 타고 가도 주변이 어둡고 일그러져 있는 것 같았고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할 때에도 그랬어요. 약간의 멀미 증상이 늘 있어서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없었어요.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주변이 어두컴컴해지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지요. 그래서 멍하게 눈에 초점이 없어지곤 했어요. 주변에서 '왜 그래?'라고 여러 번 불러야 대답을 한적도 많이 있어요. 자려고 누워도 그렇고요. 특히 처음 가는 길을 가거나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이 증세가 아주 심해졌어요. 사람이 많으면 정말 주변이 빙빙 돌아서 소리를 지르기 일보직전까지 갔어요. 그래서 한동안 사람 많은 곳이나 새로운 장소에는 가지 않았어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지요. 


좋아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진다. (사람 포함)  

어디에 가고 싶다 뭐가 먹고 싶다 뭘 보고 싶다 이런 게 없어졌어요. 좋아하던 전시회를 지척에서 해도 좋아하는 케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해도 다 시큰둥했어요. 저는 원래 서울시내 맛집은 거의 섭렵했었고 전시회나 음악회 가는 것도 정말 정말 좋아했어요. 새로운 것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베이킹이나 꽃꽂이도 좋아했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친구들 잘 사는 모습에 자꾸 제 모습이 비교돼서 인스타도 삭제하고 페이스북도 계정 정지를 해버렸어요. 책도 엄청 좋아했는데 '논문도 다 안 썼는데 책은 무슨'하면서 사려던 책도 다 내려놓았어요. 부정적인 생각이 차올라서 좋은 에세이나 글을 봐도 '팔자가 좋군'이라고 폄하하고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어요. 아프기 전, 결혼 전에는 엄마가 항상 '또 어디 가니, 집에 좀 있어라' 할 정도로 나가서 친구들 만나도 새로운 사람들 소개받는 것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사람들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게 두려웠어요. 말을 잘 알아듣지고 못했기 때문에 대화가 힘들고 돌아오면 자책하는 시간이 길어졌거든요.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물건을 다 뒤집어엎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다 폭식을 한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항상 밥상이나 책상을 뒤집어엎고 싶었어요. 아니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싶었어요 (실제로 이렇게 하면 조증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특히 제 치료 사실을 알지 못하시는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때면 답답함이 차올라서 그 자리를 뛰쳐나오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어요. 결국 나중에 폭발해서 치료 사실을 이야기해야만 했지만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책이라도 찢을 걸 그랬나 싶어요.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밤에 몰래 집을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먹을 걸 잔뜩 사서 울면서 먹어치웠어요. 맛도 몰고 그냥 꾸역꾸역 밀어 넣었어요. 그리고는 변기를 붙잡고 토하곤 했어요. 이때 즘에 저는 앉은자리에서 샌드위치 한 개도 다 못 먹을 만큼 먹는 게 어려웠는데 폭식을 하고 나면 정말 괴로웠어요. 


Photo by Markos Mant on Unsplash
내 주변에 큰일이 생기면 지금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끝날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이 생각이 가장 무서운 생각이었어요. 저는 어떻게든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이혼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현재 상황에서는 그게 어려웠어요.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 남편, 시부모님이 너무 실망하실 것 같았거든요. 그만두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하기도 했고요. 그러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내 주변 누군가에게 사고가 생기면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엄마든, 아빠든, 내 아이든, 남편이든, 누군가 큰일이 생기면 내가 이 상황을 합법적으로 벗어날 수 있겠지 생각했어요. 그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라고 계획도 세웠어요. 정말 무섭지요. 이 생각들이 들면 저도 모르게 생각이 엄청 크게 확장되었는데 얼른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멈추려 노력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끔찍했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이요. 평생 이런 생각을 하며 살면 어떡하지 걱정되었어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삶을 끝내는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결론이 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구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부분은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어요. 아마도 저와 같은 증상을 겪는 분들이 대부분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울&불안장애의 가장 큰 위험이기도 하고요. 이 생각도 평생 하며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앞서 말한 증상들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지요. 밤에 잠드는 것도 힘들고 일어나도 힘들고 밥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뭐하나 쉬운 게 없어요. 평생 이렇게 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절망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불과 1년 반 정도만에 저는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기적적으로 박사학위가 끝난 것도 한몫했지만 그래도 학위논문을 쓰기까지 회복될 수 있었고 지금은 저 위의 증상들이 거의 99% 사라졌습니다. 놀랍지요? 안 끝날 것 같은 시간들이 끝이 납니다. 하지만 치료를 받으면 약을 먹자마자 막 좋아지는 게 아니라 아주 서서히 안개 걷히듯 증상이 회복되기 때문에 치료를 꼭 끝까지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치료는 조용히 받으시되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 한두 명에게는 꼭 치료를 알리시는 게 좋아요. 모두에게 알리면 되지도 않는 소리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력이 문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등등) 더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1-2명 좋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저의 거지 같은 모습도 다 품어주는 2명의 친구에게는 다시 한번 더 없는 감사를 전합니다. 병원 다녀오는 날이면 이 사람들을 만나서 점심을 먹고는 했어요. 특별히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힘든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사는 이야기 하는 거였는데 제가 긴장하지 않으면 대화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하지만 이런 친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약을 먹고 상담을 잘 받아도 회복이 되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상황에 따라서 상담 선생님도 연결해주셔요. 그러니 다른 것보다 병원에 가시는 것, 약을 꾸준히 먹는 게 제일 중요해요. 


누구든 지금 깊은 동굴 안을 헤매고 있다면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꼭 빠져나올 수 있어요. 잘 살펴보세요. 주변에 작은 빛이 보일 거예요. 틀림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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