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극이 좋아졌다

리뷰 같지 않은 리뷰 (2):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by 서박하

동물농장이나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을 나는 잘 몰랐다. 앞서 말한 2개의 소설도 읽었으나 읽지 않았다. 나는 정치적인 글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은 즐거움 아닌가. 이야기는 즐거워야지 생각했다. 현실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책과 영화는 마땅히 행복한 이야기로 가득해야 한다 믿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보다 희극이 좋았다. 햄릿보다는 한여름밤의 꿈이 더 아름다웠다. 할리퀸과 로맨틱 코미디가 좋았다.


10대 후반 20대 초반부터 접하게 된 한국 소설은 너무 무거웠다. 군사독재, 억압에 스러져간 젊은이들, 약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숨이 막혔다.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현실을 외면했다.


서울에서 마지막 운동권이었던 01학번, 우리 학번까지는 운동권이 꽤 있었다. 우리 학교 총학생회장이 혈서 쓰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친구들이 닭장차에 잡혀가는 것을 보았다. 물론 지하철 1-2 정거장 지나면 다 내려준다고 했다. 학교가 어수선한 그 틈에 나는 재수를 했고 지방의 한 대학으로 내려갔고 그곳은 그런 정치성이 전혀 없는 다른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 이 세상의 비극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 건 결혼 후였다. '여자' '결혼한 여자' '아이를 가진 엄마'로써 살아가는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과 달랐다. 똑같이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나는 밥을 하고 남편은 침대에 누웠다. 아이를 두고 남편은 해외로 일을 떠났고 박사과정을 하는 나는 당연스레 아이를 보며 병행했다. 남편에게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일을 하고 당신이 박사과정이라면 누가 아이를 보겠냐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내가 봐야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생신에 미역국을 안 끓인다고 나에게 화를 내던 남편은 나의 아버지 생일에 전화도 먼저 하지 않았다.


길가다 담배 피며 내 아이의 유모차에 침 뱉는 남자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얼른 집으로 돌아와 알코올 한 통을 다 쓴 건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늘 길을 나서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탈 때면 누군가에게 공격당할까 봐 웅크린다. 아이를 데리고 나서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숨는다.


노인, 아이, 여자, 이들을 혐오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노인, 아이, 여자, 이들을 혐오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왜 그럴까. 이들이 그만큼 혐오스러운 행동을 많이 하기 때문일까? 아니, 그들을 그런 말을 들어도 대항하지 못할 만큼 약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자신이 기득권인 줄도 모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그들, 그들의 삶에 불편을 끼치면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혐오의 대상이 된 우리는 반성한다. 아 우리가 조심해야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 내리고 담배 피며 가래침을 뱉으며 횡단보도에 서 있는 아저씨에 뭐라고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내 아이가 장갑을 끼지 않고 킥보드를 타면 어린이집에 가기까지 아이 춥겠다는 소리를 수십 번 듣는다.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아저씨는 있지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떠드는 아저씨들에게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혐오의 대상이 된 나는 드디어 그런 글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조지 오웰은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식민지에서 일을 하고 런던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파리에서 접시를 닦는다. 그렇게 쓴 글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직접 보고 들은 것들, 그것을 결코 내려다보지 않고 같은 눈으로 바라본 그가 쓴 글은 지금도 읽다가 눈을 감게 한다.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저리다. 코끼리의 죽음, 식민지 최하층 계급의 죽음, 런던과 파리 빈민들의 모습, 모코로에서 짐을 잔뜩 지고 걸어가던 노파의 모습. 모두 내가 지금 보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비가 오는 오늘도 커다란 폐지를 주워 끌고 가는 할머니, 청계천 다리에 비닐을 덮고 누워있는 노숙자, 지하철에서 더덕을 파는 할머니, 오늘도 곰팡이 핀 집에서 일하러 간 베트남인 엄마를 기다리는 선우와 민우 (가명). 이제야 나는 그동안 내가 피해왔던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을 집어 들었다. 현실은 늘 이야기보다 잔인하고 독하다. 피해 갈 구멍이 전혀 없다. 그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 전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알 길이 없다. 그 내막을 알 수 없다.


누군가 파업을 하거나 시위를 하면 눈을 찌푸리며 "다들 감사하고 살아야지"라며 이야기하는 나의 엄마에게 어떻게 저들이 왜 눈물 삼키며 피켓을 들고 천막 속에 앉을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영업자들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에 "돈이 썩어 나네"라고 이야기하는 큰아버지에게 왜 그들이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왜 무상보육을 받아야 하는지, 그래야 그나마 가능성 있는 아동학대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지금의 세대는 왜 헬조선을 이야기하는지 얼마나 이 세상에 계급이 많은지, "노오오오오력"이 얼마나 허망한 중산층의 이야기인지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물론 즐거운 로맨틱한 소설도 쓰고 싶다. 언제든 유토피아는 필요하니까. 하지만 내 눈이 향하는 곳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조지 오웰은 그가 바라보는 그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다. 나는 편안하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한다. 나는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미스터 선샤인에서 김희성이 한 말이다.


"글에도 힘이 있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오. 애국과 매국 모두를 기록할 것이오. 그대는 총포로 하시오. 나는 기록하겠소"


현실을 외면한 나의 글은 할리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알리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현실을 직면한 글이 "정치적"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조지 오웰의 글로 끝을 맺는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PS. 글의 주제의식에 관한 것과 더불어 이 책은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보여준다. 교훈이나 결심 등의 "적용"이나 "실천"을 반드시 적던 일기에서 비롯된 습관을 어떻게 버릴 수 있는지 어떻게 간결한 끝을 맺을 수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정말 끝내주는 번역을 해준 편역 자선생님께도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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