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박하 Mar 30. 2021

공간이 주는 위로에 관하여

나이로비 일상1: 아픔과 상처는 10009km 멀리 보내기

알쓸신잡 3에서 김영하 작가가 사람들이 왜 호캉스를 즐기는 가에 대한 이야기가 늘 마음에 있다. 

출처: TVN 알쓸신잡 3


사람들은 일상의 공간, 상처와 아픔의 공간을 벗어나 위로를 받고 쉼을 얻는다. 물론 그 일상과 상처, 그 모든 것을 우리는 매일의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일상을 벗어나는 일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 

다시 아픔을 끌어안을 힘을 얻기 위해서.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일상을 벗어나 온전한 나를, 일상을 벗어나고 아픔을 잊은 나를 잠시라도 만나는 일이 어려워지고 우리의 삶은 숨쉴틈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코로나 1년 넘게 친정부모님의 작은 아파트에서 딸과 부모님과 지내며 물론 감사한 일도 많았지만 공간이 주는 압박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오래된 아파트에서 10여 년째 거주하고 계신다. 은퇴 후에 고향 근처의 넓고 쾌적한 아파트로 가시려고 계획 중이시다. 서울의 부동산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 여전히 작고 오래된 아파트에 머물고 계신다. 두 분이 지내시기 딱 좋은 아파트인데 나와 아이가 함께 하면서 부모님은 정말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지내셨다. 


나와 아이에게 서울에서 머물 정말 고마운 피난처였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또 어릴 때부터 쌓여온 물건과 상처들, 일상들이 고스란히 쌓여있어 위로가 되기도 또 힘듦이 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오래된 장판, 비가 샌 천장, 낡은 화장실, 그리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친정엄마. 엄마는 늘 그 아파트를 벗어나길 원했다. 하지만 아빠는 일터와 그곳이 가깝고 주변 시세 대비 아주 싼 가격에 머물고 있어 그곳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점은 엄마도 우리도 모두 동의하는 점이었다. 아빠의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엄마가 원하는 아주 새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항상 lh 청약센터를 노려보고 있다. 


참 고마운 곳이었지만 내 책상 하나 놓을 곳이 없는 곳, 밤에 홀로 앉아 일을 하거나 조용히 지낼 곳이 없다는 것은 꽤나 스트레스였다. 이 집은 엄연히 부모님의 집이기에 부모님이 24시간 머무시고 쉬는 곳이기에 나는 조금씩 밖으로 돌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조용히 가방을 챙겨 집 앞 카페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곤 했다. 사실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어려워지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그냥 엄마에게 아이를 떠맡기고 집 앞 청계천으로 무작정 30분씩 걷다가 들어가기도 했다. 


코로라가 조금 잠잠하면 아이를 등원시키고 근처 도서관이나 카페, 스터디 카페를 전전하고 아이를 하원 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안도감도 들지만 또 다른 일상이 밀려들어 답답하기도 했다. 당연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놀고 무릎에 기대 놀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도 좋은 시간이다. 나에게도 누군가 말할 사람이 있고 육아를 나눠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낮은 천장

오래된 부엌

나의 어린 시절의 기록부터 다 쌓여있는 그곳이 

엄마와 싸웠고 

동생과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울던

울면서 논문을 쓰다가 허벅지를 찌르며 잠을 깨우던 내가 있던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2년 동안 애를 썼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는 다시 나이로비 우리 집에 도착했다. 단지 바나나 나무가 있고 넓은 집이어서, 또 공기가 좋아서 이곳에서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나, 그 아픔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천장

이층 집

낡고 커다란 부엌

나만의 책상 

우리 세 가족의 식탁과 침대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의 목소리 


그렇게 매일 매 순간 위로를 받는다. 


한국보다 부엌도 좀 불편하고 창으로 먼지가 다 들어오는 허술한 집이다. 밤이면 자물쇠를 여기저기 걸어 잠그고 잠이 든다. 하지만 잔디밭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고 한편에 심긴 망고나무와 바나나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한참을 논다. 저녁식사를 다 함께 마치고 나서 고양이 밥을 한 컵 퍼서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에서 고양이들 소리를 들으면 달콤한 공기 속에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이곳에는 40여 년 동아 쌓인 상처도 아픔도 없다. 

그렇게 이 집은 조용히 천천히 나를 위로한다. 


한국과 케냐 사이는 10,009km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떡볶이 하나에 슬픔과 떡볶이 하나에 눈물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