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강제 소비단식 in 나이로비

소비 단식일기 (24): expatriate로 산다는 것

by 서박하

Photo by Andrei Lasc on Unsplash


역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


군대 가면 남성분들이 많은 경우 표준체중을 가지게 되고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강제적인 환경은 너무도 중요하다. 나이로비로 돌아온 지 꼭 한 달, 나의 소비는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식비 60만 원에 그 외 생활비, 전기세, 인터넷, 통신 등등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지출을 하지 않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는데 세제, 치약 등등 다 포함해서 약 15만 원 정도의 장을 보게 된다. 내가 음식을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환경이다. 한국처럼 마트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전혀 없다. 물론 까르푸에 가면 뭐가 있긴 한데 입맛에 맞는 것이 거의 없다. 또 가성비가 매우 좋지 않다.


케냐에서 현지인들처럼 사는 게 아니라면 생활비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많이 든다. 감자, 양파, 토마토, 과일 조금, 소시지, 우유, 물, 고기 등 정말 딱 일주일치 식재료를 구입하면 15만 원 정도 든다. 여기에 고기를 더 사거나 맥주 같은 것을 더 사면 20만 원은 훌쩍 넘어간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로컬 마켓 혹은 노점을 이용하면 더 저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봤지만 외국인 이라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였다. 오히려 대형 슈퍼마켓보다 더 비싸게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까르푸에서 장보는 것으로 정착했다.


일주일치 채소와 과일


그리고 그 이외에는 쓰는 돈이 없다. 한국 책을 너무 읽고 싶어서 예스 24 북클럽 (5500원)에 가입한 것 이외에는 그 어떤 추가 소비가 없다. 코로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락다운에 들어가서 카페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다. 물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다. 하루 종일 집에 둘이서 지내고 있다.


오기 전에 사 온 쿨소재 하얀 티셔츠 3개와 잠옷 바지 3장을 돌려가며 입고 있다. 어디 나갈 일은 토요일에 장 보러 가는 것 외에는 없는데 그마저도 아이가 힘들어해 남편 혼자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유행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청바지 핏 하나에도 민감하게 신경 쓰고 운동화 색까지 신경을 쓰곤 했는데 여기선 그 어떤 것에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전자기기에도 늘 욕심이 많은 편인데 이미 가진 게 많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여기저기 연락 올 곳이 많아 핸드폰이 2개 (한국/케냐) 노트북에 전자책 리더기에 유/무선 헤드셋에 공 핸드폰도 하나 더 있다. 아이는 아이패드로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남편은 노트북이 3대 (개인, 회사, 그리고 혹시 몰라서 사놓은 노트북), 갤럭시탭, 전자책 리더기까지 가지고 있다, 그 역시 이어폰에 에어 팟까지 가지고 있다.


이렇게나 가진 게 많다는 걸 한국에서는 자각하지 못한다. 모두들 그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핸드폰 젠더 하나 사는 게 너무 비싸서 나에게 하나 줄 수 없냐고 묻는 우리 내니를 보면 죄책감이 든다.


이 곳 사람들의 한 달 평균 인건비는 20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이다. 젠더 하나에 만원 정도 하는데 본인 월급의 5%를 털어야 살 수 있다. 우리 가족은 한주에 이곳 사람들의 한 달치 월급만큼을 먹어치운다. 이곳 사람들의 하루 일당은 1-2만 원 정도이다. 내가 2년 전에 이곳에서 카페에서 일하며 먹는 식사와 음료가 1-2만 원이었다. 이곳 하루 일당을 한 끼에 먹어치웠던 나는 그만큼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어디 갈 수도 없고 내니도 일하러 오지 못하는 상황, 집에서 밥만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은 오히려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지난 2주일 동안은 마트도 가지 않아서 집에만 머물렀다. 그 어디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마당이 있는 집은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 또한 나의 구원이 되었다. 결국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비보다 더 마음을 채워주는 것들이 있어야 하고 환경도 강제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너무도 쉽게 흔들린다. 한국, 특히 서울,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가깝게 모여있는 그곳. 소비의 도시, 편안한 욕망의 도시인 그곳. 안전하고 편리한 만큼의 심리적 압박감 또한 존재한다.


expatriate

An expatriate (often shortened to expat) also known as emigrant, is a person residing in a country other than their native country. In common usage, the term often refers to professionals, skilled workers, or artists taking positions outside their home country, either independently or sent abroad by their employers. However, the term 'expatriate' is also used for retirees and others who have chosen to live outside their native country. Historically, it has also referred to exiles.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Expatriate)


expatriate라는 단어가 있다. 줄여서 expat이라고 부르는데 과거에는 추방자 느낌의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였는데 지금은 네이티브 국가를 떠나 외국에서 거주하는 이민자들을 부르는 말로 쓰인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사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점들이 나에게는 더 적은 소비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언제까지 이곳 나이로비에 있을지 알 수 없고 또 이후에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삶이 조금더 이어지길, 이런 가벼운 삶, 고립된 삶, 자유로운 삶, 외로운 삶이 내게 더 찾아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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