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피디가 처음 이적을 하고 정말 새로운 걸 해야지 생각을 했다가 결국 잘하던 것 - 여행-을 중심으로 아주 약간의 변형 - 할아버지, 청춘, 누나 등등-의 새로운 것을 더했을 때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다고 했다. 퍼블리에 최근 연재되고 있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황선우, 김하나 작가의 최근 글에서 "잘하는 걸 하라"는 글을 보게 되자 뭔가 연결이 되었다. (퍼블리의 경우 유료 구독 콘텐츠인데 아래 글이 보이실지 모르겠네요)
지난 나의 2-30대, 20여 년간 나는 내 단점을 극복하는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특히 통계와 숫자에 강해지기 위해 애를 썼고 꼼꼼하고 치밀하게 일 마무리를 하기 위해 뼈를 깎았다. INFP 인 나는 직관에 강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전략&기획에 강한 반면 실행력과 일 마무리가 부족하다. 글을 잘 쓰고 큰 그림을 잘 그리지만 숫자와 통계에 약하다.
10년 전에 했던 강점 테스트를 다시 찾아보았는데 아직도 검사했던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했다. (나이스 갤럽 ㅋ) 다시 살펴본 검사 결과에 나의 장단점이 너무 정확하게 나와있어 깜짝 놀랐다. 사실 2009년에 했을 때는 그렇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10년 동안 이리저리 구르고 나니 나의 장단점을 이렇게 잘 설명해준 것이 없다. 검사를 하면 상위 5가지 장점을 보여준다. 나의 강점은 적응 (Adaptability), 공감 (Empathy), 전략 (Strategic), 발상 (Ideation), 긍정 (Positivity)이다. 2가지는 전략적 사고에 관한 것 3가지는 관계 형성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그간의 직장생활에서 가장 하고 싶다고 느꼈고 가장 성과가 좋은 일들이었다. 실제로 관련해서 좋은 피드백이 많이 있었다.
나의 강점 결과지
참고로 강점 테스트는 갤럽에서 만든 검사인데요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세요 :) 원하시는 분은 검사를 구입해서 해보시면 됩니다. 한국어도 지원된답니다. 광고도 협찬도 리퍼럴도 아님. (협찬 원함) 링크: bit.ly/3aJdCuF
2-30대에는 여러 가지 씨앗을 심고 다 잘 키워보려고 했다면 이제는 그중에 노력 대비 잘 크고 있는 나무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이제는 못하는 걸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역량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둬야 하는 시기다.
유희열 님은 작곡과 피아노는 정말 천재적이지만 가창력은... 그냥 팬심으로 들어줄만할 뿐이다. 그가 보컬 트레이닝을 열심히 받는다고 해서 SG워너비처럼 노래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 약점을 극복하기보다 자신이 잘하는 작곡과 프로듀싱에 강점을 더더욱 발전시켰다. 객원보컬로 꾸민 토이의 앨범은 그 누구도 그 객원보컬이 아닌 유희열의 앨범으로 기억된다. 그의 약점이라면 약점인 소박한 노래도 뛰어난 음악성과 더불어 매력이 되어버렸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그가 노래를 부르기라도 하면 뛰어난 그 어떤 가수보다 더 많은 환호를 받는다. 물론 웃음도 훨씬 크다.
이건 물론 정말 내가 삽질을 이미 많이 한 40살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젊은 날에 흔히들 묻는다. 잘하는 걸 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걸 해야 할까요. 그런 고민이 있다면 다 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런 고민이 있다는 것은 아직 젊은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다 해보시라. 다 해봐야 잘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또 회사를 다니든 창업을 하든 하고 싶은 일만 하려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잘 못하는 일도 해야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지금 주로 전략기획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영수증 뒤에 풀발라서 정산도 하고 설문조사한 것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엑셀에 입력하고 SPSS를 돌리는 수많은 날들을 보냈다. 온라인 강의를 만들던 시절에는 10분짜리 강의를 10번도 넘게 보고 1-2초 단위로 바뀌는 화면을 검수해야만 했다. 강사분들에게 받은 글을 교정/교열하는 일은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었다. 내가 쓴 글 오타도 찾기 힘든데 어떻게 다른 글들을 보겠는가. 그래도 했다. 남들 1-2번 볼 때 4-5번 보면서 오타도 찾는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나야만 내가 뭘 잘하는지, 또 어떤 부분은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좋은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혼자서 하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결코 헛된 시간은 없었다. 그냥 흘린 눈물은 없었다 (고 믿고 싶다). 그 시절 옆팀 과장님께서 해주신 말이 여전히 기억난다. God never wastes. 결코 나의 모든 경험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었다.
현재 회사에서 마케팅 전략/기획 일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해본 적이 없고 잘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책으로 달려가는 편이다. 마케팅 관련 책 10권을 읽었다. 그리고 해외마케팅 기획서를 작성하며 알았다. 아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지금껏 이 일들을 쌓아오고 있었구나. 물론 아직 갈길이 멀지만 내가 드디어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 시간을 돌리면 언제로 가고 싶냐고 물으면 절대로 어느 시절이든 돌아가지 않겠다고 늘 대답한다. 이미 지나온 모든 시간들에 최선을 다했고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녂에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던 수많은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잠못이루던 모든 날들, 정말 머리를 쥐어뜯던 밤과 낮, 돌아가고 싶지 않다. 2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KTX에 오르던 날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물론 2시간에 한 번씩 수유하던 신생아 돌보던 시절로도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야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하려고 한다. 물론 당연히 실수도 어려움도 고민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골수를 짜내며 일하진 않으려 한다. 이미 당겨서 써버린 나의 영혼과 골수를 이제는 좀 채워 넣을 수 있길 바란다. 일에서 오는 성취도 이제는 내게 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