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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Jun 04. 2021

나이로비 워킹맘 이야기

그리고 도레미송

Photo by Standsome Worklifestyle on Unsplash


나이로비의 워킹맘
맞벌이


나이로비의 워킹맘. 맞벌이. 하드코어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글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어디서든 워킹맘의 삶은 녹록지 않고 코로나로 인해 생기는 변수는 여기도 마찬가지라 지난  1달 반 동안 재택근무하며 지내본 소회를 좀 나눠보려고 한다. 


나이로비에서 아마 부부가 둘 다 회사를 다니는 한국인 가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발령을 받아서 나오시기 때문에 부부 중 한 명은 가정을 돌보게 된다. 많지 않지만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아이를 돌보는 집도 보았다. 진짜 하드코어로는 남편은 한국에서 일하고 아내분은 케냐로 발령받아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경우였다. (이 상황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꾹 참기로) 또 교민분들은 대부분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지내시기 때문에 본인들이 운영하시는 사업체에서 계시는 경우가 많아서 일반 회사원 맞벌이와는 조금 다르게 지내시는 듯했다.  


이곳에서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집에서 일해 주시는 헬퍼분들을 고용해서 지내곤 한다. 삼성이나 엘지 대기업에서 발령받아서 나오시는 분들은 집안일해주시는 분 & 운전기사까지 다 고용하고 지내시는 걸 보았다. 우리도 2년 전에 케냐로 오면서 남편의 전임자분이 고용했던 헬퍼분을 계속 고용하였다. 그리고 나와 아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셨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락다운이 되어서 이 헬퍼에게 계속 나와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어서 락다운 기간 동안 쉬었고 그 사이에 헬퍼가 수술을 받아 거의 2달을 못 나오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로 킨더가든도 멈추고 9월까지는 새 등록을 받지 않고 있다. 그렇게 나와 아이는 24시간을 붙어서 지내게 되었다. 


좋아하는 2B작가님의 6월 3일 자 웹툰, 정말 구구절절 공감되었다


사실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돌보는 일, 이전에 한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장점이 많고 나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주어서 좋긴 하지만 눈물 나게 어려운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아이를 돌보며 일하는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컨퍼런스콜이다. 짧으면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까지도 지속되는 회의 중에 아이를 어떻게 하느냐는 지금도 고민스럽다. 30분이라고 잘 기다리는 것도 2시간이라고 못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즉 날마다 아이 컨디션과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혼자서 플레이도를 가지고 2시간씩 놀아서 컨퍼런스 콜 하고 시간이 남아 일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은 20분짜리 짧은 미팅 중에 대성통곡을 하고 팬티만 입고 화면에 난입해서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나기도 했다. 다행히 요즘은 집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고 아이가 있는 것에 다들 너그럽기 때문에 잠깐씩 아이가 나타난다고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5분 정도 남겨둔 회의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뮤트 시켰던 마이크를 켜고 말하는데 바로 옆에 앉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떼를 썼다. 황급히 마이크를 끄고 손짓 발짓으로 대충 상황을 이야기하고 채팅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좌) 치운지 30분만에 어질러진 거실 (중) 흔한 아침 풍경 (우) 혼자 조용히 잘놀때 각오해야 하는 것들


아이는 내가 회의를 들어가기 전에 설명을 하면 꼭 잘 기다려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시계도 볼 줄 모르는 아이에게 30분 기다리라는 설명이 무슨 소용인가. 1층에 아이를 두고 2층 방에서 회의를 하는데 1층에서 소리 지르는 아이 소리가 2층 문 닫고 회의하는 내 마이크까지 들어와서 회사 사람들이 아이 우는데 가보라고 한 적도 있다. 


우울&불안장애 약을 끊고 나서 거의 2주 정도는 체력이 정말 좋지 않았다. 이전에 끊었을 때보다는 확실히 좋았지만 어지럽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남편이 돌아와 교대를 하고 2층 내 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낮에 정리하던 것들을 마저 정리하려고 노동요를 찾다가 오랜만에 도레미송으로 앤트워프 역에서 했던 유명한 플래시몹 영상을 찾아보았다. 


https://youtu.be/7 EYAUazLI9 k


세상에 이 노래가 이렇게 눈물 나는 노래였나.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해 문을 꼭 잠그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눈물을 닦고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노트북을 열었다. 안구건조가 있어 인공 눈물을 종종 넣는데 눈이 촉촉해져서 좋네 생각했다.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최근에는 가끔 300ml 정도 마시던 맥주도 끊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몸이 무거워 저녁에는 샐러드만 먹는다. (근데 살은 안 빠짐) 거의 채식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수도승처럼 살게 된 나를 돌아보면 너무 웃겨서 혼자서 껄껄 웃기도 한다. 


동틀 때까지 친구들과 놀다 기숙사로 돌아와 씻고 연구실로 나가던 내가, 주말이면 24시간즘 자던 내가, 인천공항에서 "엄마 나 지금 에티오피아에 2주정도 가게 되었어" 전화하던 내가, 이렇게 살게 되다니. 아침에 7시면 알람 없이도 일어나는 아이와 함께 동요가 울려 퍼지는 집에서 고양이 2마리와 노는 게 유일한 유흥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세끼밥을 잘 챙겨주는것, 오늘의 컨콜을 무사히 마무리 하는 것이 최고 스릴 있는 일이다. 다만 내가 나이로비, 케냐에 살고 있어서 이 모든 평범한 삶에 약간의 엣지(?)를 더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유재석 씨가 엄청 바른생활을 하시는 걸 보고 예전에는 어떻게 저렇게 사나 싶었는데 그렇게 살면서 지켜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되었다. 


절대 자신을 몰아세우며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면서도 맞벌이 워킹맘에게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일하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책상에 다시 앉으면 여러 가지 마음이 오고 간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우울증 약을 먹으며 고통스럽던 날들, 논문이 끝나지 않아 괴롭던 모든 시간이 끝나고 이제 새로운 계단에 올라섰다는 기쁨을 잊지 않으려 한다. 매일 gratitude journal을 적고 있는데 그것도 꽤 도움이 된다. 비록 하루 종일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정신없고 거실에서 방으로 침실로 옮겨가며 일하고 서서 밥을 먹고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는 아이를 달래며 메일을 쓰지만 

그래도 이러한 평범하고 단조로운 날들이 내게 찾아와 줘서 감사하다. 


도레미송 가사가 이렇게 시적인 줄은 예전에는 몰랐다. 

Doe, a deer, a female deer

Ray, a drop of golden sun

Me, a name I call myself

Far, a long, long way to run

Sew, a needle pulling thread

La, a note to follow Sew

Tea, a drink with jam and bread

That will bring us back to Do


Let's back to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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