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새로운 것 좀 받고 싶다.
한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받는 생일 선물 패턴은 비슷하다. 주로 핸드크림이나 보디로션과 같은 보습 제품을 받는다. 12월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참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춥고 건조하니 보습이 필요할 거야,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가 보다. 뭐, 내 생각에도 호불호 갈릴 일 없이 무난한 것 같긴 하다.
뭔가 좀 새롭거나 특이하거나 평소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선물로 받고 싶었지만 비슷한 제품을 중복으로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핸드크림 2개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도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담아 주는 것이니 감사함을 표현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싫지 않았다. 하지만(미안하지만) 뒤에서는 가자미눈을 할 때도 있었다.
같은 브랜드의 같은 제품을 선물 받은 적은 없어 다행으로 여겼다. 아, 한 번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 토니모리 복숭아 핸드크림을, 똑같은 것을 두 개나 받은 적이 있다. 한 친구에게는 고맙다고 받았는데 다른 친구에게는 같은 걸 이미 받았다고 말 못 하고 모르는 척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이처럼 선물을 같은 것으로 중복으로 받았을 땐 하나는 내가 쓰고 다른 하나는 엄마나 여동생에게 쓸 것을 권유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싫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오만한 생각을 완전히 파괴시킨 계기가 생기고야 말았다. 바로 나의 고질병인 아토피 때문이다. 최근에 갑자기 심해져 사시사철 보습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원래는 피부가 많이 트고 건조해지는 겨울에만 보습을 신경 썼는데 말이다. 매끈매끈하고 부드러워야 할 내 몸은 계절에 상관없이 가뭄이 내린 땅처럼,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건조하기 그지없었고 손과 발에는 접촉성 피부염이 자리 잡고 말았다.
이쯤 되니 지난 생일에 엄마와 여동생한테 넘긴 선물이 아까워졌다. 괜히 넘겼다. 혼자 썼더라면 족히 몇 개월은 두고두고 쓸 수 있었을 텐데. 보습 제품이 지겨워? 싫어? 오만했다. 나에게 보습 제품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밥 빠진 김밥, 떡 빠진 떡볶이랑 다를 게 없었다. 친구들이, 지인들이 보습 제품을 선물해 준 건 다 뜻이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가을이 오고 있다. 부드러운 긴 옷을 꺼내 입고 놀러 가기 좋은 날이지만 반대로 곧 내 몸이 SOS를 보내올 것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겨울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
무슨 준비를 해야겠느냐고? 일단 카카오톡 생일 알람을 켜 두고 선물함으로 들어간다. 그다음 보습 제품을 종류별로 위시리스트에 담는다. 꼭 공개로 담아야 한다. 이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대화명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친한 친구에게는 대화 중에 넌지시 알려야겠다.
이거 어떤 거 같아? 아니~ 괜찮아 보이길래, 어떤가 해서!
새로운 생일 선물? 아니, 나는 보습 제품이면 된다. 페이셜 크림, 핸드크림, 보디로션 가리지 않고 모두 환영이다. 똑같은 제품을 받아도 좋다. 이번 생일은 왠지 매끈매끈하고 부드럽고 촉촉한 하루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