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쓰기 1. 신데렐라, 그 이후의 이야기.
1. 유리구두 그 후
왕궁의 새벽은 늘 유리처럼 차가웠다.
무도회 밤, 마차가 호박으로 돌아가던 순간의 떨림은 사라지고, 신데렐라의 발에는 이제 유리구두가 아니라 자수정 실로 꿰맨 실내화가 신겨 있었다. 왕비로서의 첫날, 궁녀들은 그녀의 머리칼을 빗기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전하, 웃으셔야 합니다.”
“전하, 고개를 너무 숙이시면 안 됩니다.”
“전하, 손가락은 이렇게, 숟가락은 저렇게…”
신데렐라는 웃었다. 웃는 법을 배우기 위해 웃는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그 우스움이 목구멍에 걸려 기침이 났다. 그녀는 기침을 손수건으로 감췄다. 손수건에는 왕가의 문장이 수놓아져 있었다. 새로 배운 규칙 중 하나는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자기 것처럼 다루는 법’이었다.
왕자는—이제는 왕태자이고 곧 왕이 될 사람이며, 그녀의 남편이다—늘 다정했다. 다정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정함이 너무 정돈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이제 다 끝났어. 너는 안전해.”
안전. 그 단어는 따뜻한 담요 같으면서도, 동시에 닫힌 문처럼 들렸다. 신데렐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끝났다는 말, 정말일까. 그녀는 무도회 밤을 떠올렸다. 마법은 끝났지만, 마법이 만든 “약속”은 끝나지 않았다.
‘구해지는’ 것으로 완성되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결말이 궁전이라면, 그 이후는 무엇이 되는 걸까.
며칠 뒤, 성 안으로 한 마차가 들어왔다. 흙먼지 냄새를 실은 마차에서 남자가 내렸다. 회색 머리와 굽은 어깨, 그리고 눈빛만은 맑은 장인. 그는 왕궁의 재무관과 함께 신데렐라 앞에 섰다.
“유리구두를 만든 사람입니다.”
신데렐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발끝이 시렸다. 유리구두는 기적의 증거였고, 동시에 목숨을 걸고 뛰어야 했던 증거였다.
장인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 그 신발은…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주문이 내려와서요.”
“누가 주문했나요?” 신데렐라가 물었다.
재무관이 대신 답했다.
“왕태자 전하께서. 전하의 대관식에 맞춰 ‘유리구두 전시’를 하자는 뜻이옵니다. 전하의 기적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면 민심이 안정될 것이옵니다.”
기적을 전시한다. 사람들의 눈앞에, 그녀가 달아났던 시간과 공포를 유리상자에 넣어 진열한다. 신데렐라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궁녀가 옆에서 살짝 손등을 눌렀다. ‘웃으셔야 합니다’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웃지 않았다.
“장인님.” 그녀가 말했다. “유리구두는… 발이 상하지 않았나요?”
장인은 순간 놀란 얼굴을 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질문을 처음 던진 것처럼.
“상했습니다. 피가 났지요. 유리는 무거운 돌보다도 사람을 더 조용히 다치게 합니다.”
신데렐라는 그 말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걸 느꼈다. 조용히 다치게 하는 것들.
말투, 규칙, 기대, ‘안전’이라는 이름의 감옥.
그날 밤, 신데렐라는 왕자에게 말했다.
“유리구두 전시는 하지 말아줘.”
왕자는 당황했다. 당황했지만 화내지 않았다. 그는 항상 ‘이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왜? 너는 모두의 희망이잖아.”
희망. 그녀의 이름을 대신해 붙여진 다른 이름. 신데렐라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사람이야. 희망은… 내가 선택할 때만 하고 싶어.”
왕자는 입술을 달싹였다가 멈췄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불편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하자. 하지만 너도 알아야 해. 이 나라엔 균열이 많아. 귀족들 사이엔 불만도 많고.”
신데렐라는 그 말에서 처음으로 ‘위협’을 들었다. 아주 얇게, 아주 정중하게 포장된. 그녀는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침대는 넓었지만, 숨 쉴 공간이 적었다.
새벽녘, 그녀는 혼자 복도를 걸어 옛 서고로 갔다. 그곳엔 먼지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있었다. 그녀는 책장을 더듬어 ‘왕실 법전’이라 적힌 두꺼운 책을 꺼냈다. 그리고 한 조항에서 손이 멈췄다.
“왕비는 왕가의 품위를 해치는 언행을 해서는 아니 된다.”
품위.
그 단어는 그녀가 계단 밑에서 재를 치우던 시절에도 그녀를 꿇어앉히던 단어였다. ‘여자가 품위 없게 굴면 안 된다’는 말로, 계모는 그녀에게 모든 굴욕을 ‘훈육’이라 불렀다.
신데렐라는 책을 덮지 않았다. 대신 더 깊이 읽기 시작했다. 한 장, 또 한 장. 글자를 읽을수록 그녀의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적을 알면 두렵지 않듯이, 규칙을 알면 그 규칙을 넘는 길도 보일 테니까.
그날부터 신데렐라는 달라졌다. 웃으라고 하면 웃지 않았고, 앉으라고 하면 앉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질문했다.
“왜?”
궁녀들은 속삭였다. 왕궁은 조용히 웅성거렸다.
‘왕비가 변했다.’
아니, 변한 게 아니라—그녀의 진짜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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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의 냄새가 다시 올 때
대관식 준비가 본격화되자, 왕궁은 더 분주해졌다. 천과 금실, 향과 음악, 축하의 이름을 가진 모든 것이 성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데렐라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시장 쪽에서 빵값이 올랐대.”
“세금이 또 오른다지.”
“이웃 나라와 전쟁이 날 수도 있대.”
왕궁의 화려한 커튼은 바깥의 바람을 막아주었지만, 소문은 바람보다 가볍게 스며들었다. 어느 날, 신데렐라는 장인에게 다시 사람을 보내 그를 몰래 불러들였다. 장인은 작은 공방에서 쓰는 누런 가죽 앞치마를 그대로 두르고 있었다.
“전하께서 절 다시 부르시다니…”
“장인님.” 신데렐라는 창가에 서서 말했다. “유리구두를 다시 만들지 마세요.”
장인은 난감해했다.
“이미 대금도 내려왔습니다. 거절하면… 저 같은 사람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신데렐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계단 밑에서 ‘거절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왕비가 된 뒤에도 누군가에게 같은 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서글펐다.
“그러면…” 신데렐라가 말했다. “유리구두가 아니라 다른 걸 만들어주세요.”
“다른 것이라면…”
“유리구두의 이야기 대신, 발을 보호하는 신발을요. 누구든 신을 수 있는, 발이 다치지 않는 신발. 값이 싸고 튼튼한.”
장인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전하, 그런 신발은 기적이 아니지요.”
신데렐라는 웃었다. 이번엔 억지 웃음이 아니었다.
“맞아요. 기적이 아니죠. 그래서 더 좋아요. 기적은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신발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으니까.”
장인은 한참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그걸 원치 않을 겁니다.”
“귀족들이 원하는 것 말고, 백성들이 필요한 것을 해요.” 신데렐라가 말했다.
그 말은 곧 소문이 되었고, 소문은 곧 눈길이 되었다. 사람들의 눈길은 왕비를 향해 움직였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그 다음엔 기대와 의심으로.
며칠 후, 왕궁으로 “계모”가 찾아왔다.
계모는 더 화려한 옷을 입고, 더 부드러운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왕궁 사람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었다. 신데렐라는 그 발걸음 소리에 반사적으로 어깨가 굳는 걸 느꼈다.
“전하.” 계모가 인사하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신데렐라는 ‘어머니’라는 단어를 삼켰다. 그 단어는 그녀의 입안에서 돌처럼 무거웠다.
계모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곳에 살다니. 내가 너를 키운 보람이 있구나.”
신데렐라는 고개를 들었다.
“키웠다고요?”
계모는 미소 지었다.
“고생을 시켜서라도 강하게 만든 거지.”
신데렐라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 문장을 너무 오래 믿어왔다.
‘고생은 너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사실은 ‘내가 널 괴롭혀도 된다’는 면허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어머니.” 신데렐라가 조용히 말했다. 그 단어를 쓴 것은 상대를 부르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과거를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저는 강해진 게 아니라… 무뎌졌던 거예요.”
계모의 미소가 흔들렸다. 아주 미세하게.
“그런 말, 왕궁에서 하면 안 돼. 품위가….”
“품위요?” 신데렐라는 다가가며 말했다.
“품위란 말로 사람을 눌러놓고,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건 더 품위 없는 일이에요.”
궁녀들이 숨을 삼켰다. 계모는 당황을 감추려 애쓰며 말했다.
“너, 지금 내가 너에게 한 모든 걸 부정하는 거니?”
“부정해요.” 신데렐라는 또렷하게 말했다.
“그리고… 더는 그 이야기로 살지 않을 거예요.”
계모는 그날 밤 왕궁에서 나가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소문은 더 커졌다.
‘왕비가 계모를 내쫓았다.’ ‘왕비가 교만해졌다.’ ‘왕비가 왕태자와 불화가 있다.’
왕자는 결국 신데렐라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너는 이미 얻었잖아.”
신데렐라는 그 말에 잠시 멈췄다. 얻었다. 무엇을?
신분? 안전? 이름?
하지만 얻는 순간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 선택, 숨.
“난 얻은 게 아니라…” 신데렐라는 천천히 말했다. “교환했어. 내 침묵과 바꿔서.”
왕자는 얼굴을 굳혔다.
“네가 하고 있는 건… 위험해.”
“알아.” 신데렐라가 말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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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정은 한 번만 오지 않는다
대관식 당일, 도시의 종이 울렸다. 사람들은 축제라 믿고 모였다. 왕궁은 계획대로라면 ‘유리구두 전시’를 공개해야 했다.
유리상자 안에 놓인 구두, 그 앞에서 신데렐라는 ‘기적의 왕비’로 연설해야 했다.
그날 아침, 왕자는 신데렐라의 방으로 찾아왔다. 그의 눈은 피곤했고, 손가락은 가볍게 떨렸다.
“귀족들이… 너를 시험하려 해.” 왕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구두를 거부하면, 너를 ‘가짜’라고 몰아붙일 거야. ‘마법으로 속였다’고. 그러면 나도 널 지킬 수 없어.”
신데렐라는 거울을 바라봤다. 왕비의 왕관이 머리 위에서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꼭 유리구두 같았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조금만 어긋나도 피가 난다.
“지킬 수 없어?” 신데렐라가 되물었다.
왕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신데렐라는 이해했다. 왕자도 누군가의 규칙 안에 있었다. 다만 그는 그 규칙을 ‘자기 것’이라고 오해해왔을 뿐이다.
신데렐라는 조용히 왕관을 벗었다.
궁녀들이 놀라 달려왔다.
“전하, 안 됩니다!”
“대관식이…”
신데렐라는 왕관을 손에 들고 말했다.
“내 머리에 얹는 게 아니라, 내 목을 조이는 거라면… 오늘은 쓰지 않을래.”
그리고 그녀는 아주 단순한 드레스를 선택했다. 화려한 자수도, 길게 끌리는 망토도 없는.
걸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는 옷. 계단을 뛰어내려가도 숨이 차지 않는 옷.
궁전 앞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귀족들은 황금 의자에 앉아 신데렐라를 기다렸다.
유리구두 상자는 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왕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신데렐라가 나타나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녀가 왕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데렐라는 연단에 올랐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녀는 그 바람이 오래전 굴뚝 청소를 하던 날의 바람과 닮았다고 느꼈다. 차갑고 솔직한 바람.
재무관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하, 예정된 문구를…”
신데렐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멀리까지 갔다.
“저는 신데렐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가 ‘유리구두’로 선택받았다고 믿습니다.”
귀족들이 미소 지었다. 이쯤은 대본대로였다.
신데렐라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유리구두는… 저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다치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술렁였다. 왕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발이 찢어졌습니다. 숨을 삼키며 달렸습니다. ‘자정’이 오면 모든 것이 무너질까봐요.”
신데렐라는 유리상자 쪽을 바라봤다.
“여러분의 나라에서도 자정은 옵니다.
빵값이 오르는 자정, 세금이 오르는 자정,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자정.”
재무관이 다급히 움직였지만, 이미 늦었다. 사람들은 신데렐라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마법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보다 무서운 힘이 있었다. 진짜 이야기의 힘.
“저는 더 이상 ‘기적’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신데렐라는 천천히 말했다.
“대신 여러분과 함께 ‘변화’로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작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유리구두가 아니라, 천과 가죽으로 만든 단단한 신발이 있었다. 여러 크기, 여러 모양. 아이의 발에도, 노인의 발에도 맞는.
“이 신발은 누군가의 발을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누군가를 왕궁으로 데려오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살 수 있게 합니다.”
귀족들 중 누군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왕비가 백성을 선동한다!”
신데렐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는 선동하려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아니라, 생활을. 공포가 아니라, 존엄을.”
왕자는 연단 아래에서 손을 뻗었다. 그의 눈엔 두려움과 애원과 사랑이 뒤섞여 있었다.
“멈춰.” 그는 입술로 말했다.
신데렐라는 내려다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이게 멈추면, 나는 다시 계단 밑으로 돌아가.”
그 순간, 귀족들의 경호병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광장에 있던 평민들 또한 움직였다.
누군가는 신발을 받아 들었고, 누군가는 소리쳤다.
“우리도 아프지 않은 신발이 필요해!”
“왕비님 말이 맞아!”
여기서 신데렐라는 깨달았다. ‘구해지는’ 건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함께 걷는’ 건 모두의 이야기라는 걸.
혼란 속에서 왕자는 신데렐라에게 다가와 낮게 말했다.
“나와 함께라면…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어.”
신데렐라는 그 말이 진심인지, 위기 모면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함께라면, 나를 ‘조용히’ 만들지 말아줘.”
왕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그는 ‘왕자답게’가 아니라, ‘사람답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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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왕비가 아닌, 신데렐라의 길
그날 이후 왕궁은 조용히 흔들렸다. 귀족들은 신데렐라를 공격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들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신발을 신고 있었다.
왕자는 끝내 유리구두 전시를 취소했다. 대신 대관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적을 찬양하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을 보호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 왕자는 수없이 타협하려 했고, 신데렐라는 수없이 버텼다. 두 사람은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싸웠다. 때로는 서로에게 화가 났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약속을 지켰다.
침묵으로 평화를 만들지 않기.
신데렐라는 왕궁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시장으로 갔고, 공방으로 갔고, 세탁소와 빵집과 대장간을 찾았다. 사람들의 손을 보았다. 상처, 굳은살, 그리고 살아 있는 온도.
어느 날, 신데렐라는 작은 집 앞에서 멈췄다. 그 집은 옛날 그녀가 살던 집과 닮았다. 계단 밑, 재의 냄새, 눌린 숨. 문을 열어준 건 어린 소녀였다. 소녀는 신데렐라를 알아보지 못했다. 대신 물었다.
“아줌마는 누구예요?”
신데렐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신데렐라야.”
소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신데렐라요? 유리구두—”
신데렐라는 웃으며 소녀의 발을 내려다봤다. 소녀는 너무 큰 신발을 신고 있었다. 발뒤꿈치가 헐거워 자꾸 벗겨지는 신발.
신데렐라는 주머니에서 작은 끈을 꺼내 신발을 묶어주었다.
“유리구두 말고, 이게 더 중요해. 네 발이 다치지 않는 것.”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왕비님은 왜 밖에 다녀요? 왕궁이 더 좋잖아요.”
신데렐라는 바람을 느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이제는 숨 쉴 만했다.
“왕궁은 결말이 아니거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내가 쓰려고.”
그날 밤, 신데렐라는 창가에 앉아 글을 썼다. 법전이 아니라, 자신의 글. 누군가가 정해준 문장이 아니라, 자신이 찾은 문장. 그녀는 ‘자정’이라는 단어를 다시 썼다. 자정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유리구두는 여전히 왕궁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상자 안에서 반짝이며, 옛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그 반짝임에 더는 속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안다.
기적은 누군가가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가장 큰 마법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나가는 것이라는 걸.
신데렐라는 창문을 열었다. 멀리서 도시의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웃고, 누군가 싸우고, 누군가 노래하고, 누군가 울고 있었다. 그 소리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살아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자정은… 한 번만 오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매번 다시 선택할 거야.”
그리고 그녀는, 왕비의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내일의 길을 준비했다.
누군가가 신발을 잃어버려도 괜찮은 이야기.
누군가가 궁전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은 이야기.
누군가가 ‘품위’라는 말에 눌리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그 이후의 신데렐라는, 더 이상 누군가의 결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