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무균의 집

by 서래

4화. 무균의 집



세이라는 늘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눈을 뜨기 직전의 그 얕은 순간까지, 이 방은 언제나 세이라보다 먼저 깨어 있었다. 침구는 밤새 체온을 붙들고 있었고, 공기는 무취에 가깝게 정화되어 있었으며, 벽 안쪽 어딘가에서 공기 순환음이 일정한 박자로 흘렀다.


“세이라 님, 좋은 아침입니다.”


천장의 AI 음성은 늘 그렇듯 부드럽게 그녀를 불렀지만, 그날은 어딘가 한 박자 늦었다. 너무 짧아서, 누군가 ‘늦다’고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세이라는 느끼지 못했다. 느낄 이유도 없었다. 이 집은 완벽했고, 완벽한 것은 감각의 영역 밖에 있었다.


“현재 체온 36.2도. 수면 중 평균 체온 36.6도, 편차 0.4도.”


세이라는 이불 속에서 손을 움직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목 안쪽이 가려워 무심코 문질렀는데, 피부에 손톱이 스치는 순간 따끔한 느낌이 잠깐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어제 트램에서 숨이 막히던 감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급성 반응은 끝났고, 지금은 괜찮아야 했다. 여기는 ‘괜찮음’이 기본값인 구역이었다.


“심박수 안정 범위. 호흡 패턴… 약간의 불규칙성 감지.”


세이라는 잠깐 멈칫했지만, 곧 욕실로 향했다. 바닥 조명이 발밑에서 순차적으로 켜졌고, 그 빛이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데 아주 작은 공백이 있었다. 그녀는 그 틈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발이 한 번 더 바닥을 확인하듯 멈췄을 뿐이었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확인하자 눈가가 아주 조금 부어 보였고, 목 안쪽이 건조하게 따끔거렸다. 세이라는 물을 틀어 입안을 헹군 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건을 집었다. 어젯밤 이후로 몸 어딘가가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걸 이름 붙이면 오히려 커질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불편함은 대개 ‘조정’이라는 말로 정리되었고, 조정이 가능한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배웠다.


“정서 상태 양호. 피로도 61%. 회복 지수 87%.”


숫자는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세이라는 그 차이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녀는 숫자보다 출근 시간에 더 익숙했다.


주방에 들어서자 준비대 위에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반달 모양의 오믈렛, 얇게 구운 배양육 슬라이스, 그리고 잘게 썬 과일 몇 조각. 과일은 인공팜에서 재배한 ‘오로라 피치’였다. 살결은 균일한 분홍빛이었고, 조각의 크기와 두께는 거의 같아서 마치 금형에서 찍어낸 것처럼 보였다.


“오늘의 식단은 균형 영양 패턴 C입니다. 뉴트리-에그3 오리지널, 배양 단백육 120그램, 인공팜 과일 당도 조정 버전.”


세이라는 먼저 과일을 집어 입에 넣었다. 씹자마자 살결이 부서지며 즙이 입안에 퍼졌다. 달았다. 지나치게 달지도, 덜 달지도 않은, ‘과일이란 이런 맛이어야 한다’는 기준에 맞춘 달콤함이었다. 산미는 정확히 조정된 듯 균형 있게 남았고, 혀끝에는 어떤 여운도 길게 붙지 않았다.


그녀는 배양육을 집어 씹었다. 섬유질 같은 감촉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기름기는 없었으며, 고기라는 걸 알려주는 향만 남아 있었다. 씹는 동안 목 안쪽이 순간적으로 따끔거려 세이라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씹었다. 따끔거림은 곧 사라졌다.


“흡수율 보정치 적용 중입니다.”


그 말은 그녀가 원래 듣던 안내와 조금 달랐다. 세이라는 그 차이를 생각하지 않았다. 오믈렛을 한입 베어 물자 고소하고 매끄러운 질감이 입안에 퍼졌고, 모든 맛은 ‘정확한 범위’ 안에서 끝났다. 완전한 식사였다. 그런데 식사가 끝난 뒤 입안에는 허기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듯한 느낌이 남았고, 그렇다고 더 먹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지 않았다. 그 모순을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세이라는 접시를 싱크대에 올려놓고 손을 씻었다.



물줄기가 손등에 닿는 순간, 아주 미세한 따끔거림이 또 한 번 스쳤다. 그녀는 잠깐 손을 빼고, 다시 물에 넣었다. 이번엔 아무 느낌도 없었다. 세이라는 그 차이를 ‘조정 완료’라고 믿는 쪽을 택했다.


가방을 집고 현관문 앞에 섰을 때, 천장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외출 전 간이 스캔을 실시합니다.”


세이라는 가만히 서 있었다. 발밑에서 아주 약한 진동이 올라왔고, 스캔이 끝났다는 표시가 떴다. 늘 있던 절차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그걸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설명이 돌아올 것이고, 설명은 불안을 키울 수 있었다.


“이상 없음.”


그 다음 문장은 아주 조용히 이어졌다.


“상태 유지.”


세이라는 그 말을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소리로만 흘려보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비가 얇게 내리고 있었다. 타운의 날씨는 원래 이렇게 ‘적절한 정도’로 조절된다. 사람들의 기분이 과도하게 들뜨지 않게, 지나치게 가라앉지 않게. 세이라는 우산을 펴며, 어제 하루 종일 쏟아지던 비를 떠올렸다. 그 비는 ‘적절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지만 말하지 않는 것, 이 구역에서 제일 안전한 태도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세이라는 가장 먼저 부엌 서랍으로 향했다. 손을 씻지도, 외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였다. 그 행동은 스스로도 의외였지만, 그녀는 그 의외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다.


서랍을 열자, 달걀은 그대로 있었다. 금도, 자국도, 변화도 없었다. 세이라는 조심스럽게 달걀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껍질의 감촉이 아침보다 조금 더 차갑게 느껴졌고, 그 차가움이 어쩐지 안도감을 줬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그녀는 달걀을 다시 서랍 깊숙이 밀어 넣고, 서랍을 닫았다. 닫는 순간, 공기 순환음이 아주 짧게 바뀌었다. 마치 누군가가 숨을 한 번 고르는 것처럼. 세이라는 그걸 듣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문득 떠오른 한 장면에 사로잡혀 있었다.


인공팜 견학 때, 유리 돔 안에 놓인 부화 장치들. 일정한 온도와 습도, 정확한 산소 비율, 그리고 줄지어 놓인 알들. “환경만 맞으면 생명은 생각보다 단순해요.” 직원이 웃으며 말하던 장면. 세이라는 그 말을 이해한 적이 없었다. 이해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이해가 아니라 욕망처럼 떠올랐다.


부화시킬 수 있을까.


그 생각은 크지도, 뚜렷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작은 틈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생겼다. 그녀는 그 틈을 넓히지 않으려고 했다. 넓히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감각이 동시에, 묘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졌다.



그때 부엌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 들어온 것이다. 이런 집에서 파리를 본 건 세이라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다. 파리는 식탁 위를 맴돌다가 천천히 벽 쪽으로 향했고, 그 순간 벽면의 공기 순환구가 아주 짧게 열렸다.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파리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이라는 그 장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놀랄 틈이 없었다. 이 집이 하는 일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티끌도, 벌레도, 불필요한 냄새도, 그 무엇도 허용하지 않는다. 무결함은 이 집의 규칙이고, 규칙은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심코 생각했다.


여기엔 개미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 생각이 끝나자마자, 서랍 깊숙한 곳의 달걀이 떠올랐다. 개미도 못 사는 집에서, 생명이 부화할 수 있을까. 세이라는 다시 서랍을 열어 달걀을 꺼내려다가, 손을 멈췄다. 지금은 꺼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꺼내는 순간 자신이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로자는 그날도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자동 의료 패치가 복부 쪽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숨은 얕았다. 세이라는 물을 떠다 주며 로자의 손등을 살짝 만졌다. 손은 어제보다 조금 더 차가웠다. ‘조금’이라는 말이 불안의 형태로 변하기 전에, 세이라는 손을 놓았다.


“오늘은 어땠어.” 로자가 물었다.


“그냥.” 세이라는 대답했다.


로자는 더 묻지 않았다. 이 집의 대화는 늘 그렇게 끝났고, 그 침묵은 불편하지 않도록 교육된 침묵이었다. 세이라는 부엌으로 돌아가 음료를 준비했고, 그 사이 서랍을 한 번 더 쳐다봤다. 닫힌 서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 무렵, 친구들이 놀러왔다. 늘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었고, 그들은 각자 자기 월급으로 산 게임팩을 들고 와 자랑했다. 포장 비닐을 뜯는 소리, 케이스가 열리는 소리, 카트리지가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소리. 그 소리들은 이상하게도, 이 무균의 집에 살아 있는 온도를 더했다.


“이번 건 그래픽이 진짜 미쳤대.” 한 친구가 말했다.


“노동자 구역엔 업데이트 늦게 풀릴 걸.” 다른 친구가 웃었다.


세이라는 그들과 함께 웃었고, 그 웃음은 진짜에 가까웠다. 그녀는 잠깐이라도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게임 속 세상에서는 규칙이 명확했고, 승패는 공정했으며, 패널티는 예측 가능했다. 현실보다 훨씬 안전한 세계였다.


그런데도 세이라는 자꾸 서랍 쪽을 힐끗했다.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 움직임은 그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작았다. 그녀는 자신의 관심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선택이 되니까.


게임이 시작되자 화면이 번쩍였고, 친구들의 탄성이 거실에 퍼졌다. 그 순간, 천장의 공기 순환음이 아주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마치 누군가 숨을 참는 것처럼. 이번에도 아무도 듣지 못했다. 오직 화면 속 소리와 웃음소리만이 거실을 채웠다.


세이라는 음료를 가져오려고 일어났다가, 부엌 앞에서 잠시 멈췄다. 발밑 조명이 켜지는 순서가 아주 잠깐 어긋나 있었고, 그녀는 문턱을 넘기 전에 발을 한 번 더 바닥에 붙였다. 그 행동이 왜 나왔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넘어질 뻔했나” 하고 가볍게 넘겼다.


부엌에 들어서자, 서랍이 있는 쪽 공기가 조금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 집은 구역별로 온도를 조절하지만, 그 차가움은 조절의 차가움이 아니라, 살짝 비어 있는 듯한 차가움이었다. 세이라는 컵을 꺼내며 다시 한번 서랍을 바라봤다. 닫혀 있었다. 잠겨 있지는 않았다. 단지 닫혀 있을 뿐인데, 마치 ‘열지 마’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컵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게임에 몰입해 있었고, 로자는 소파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세이라는 로자의 호흡을 확인하듯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때로는 편안했고 때로는 잔인했다.


밤이 깊어지고 친구들이 돌아간 뒤, 세이라는 집안을 정리했다. 모든 물건은 지정된 자리로 돌아갔고, 바닥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거실에 남아 있던 ‘사람의 온기’마저 정화되는 것 같았다. 세이라는 손을 씻고, 로자의 의료 패치를 한 번 확인한 뒤, 조용히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 순간, 그녀는 아주 짧게 숨을 멈췄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1초, 혹은 2초. 그 사이에 이 집은 여전히 자신만의 리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세이라는 그 리듬의 바깥에 아주 얇게 걸쳐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느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세해서, 그녀는 곧 그걸 “잠들기 전의 공백”이라고 정리해버렸다.


그때, 침실 문 바깥쪽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탁, 하고 무엇인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였다. 세이라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너무 피곤했고, 이 집에서는 대부분의 소리가 ‘정상 범위’ 안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주 느리게,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탁.


세이라는 눈을 떴다. 방 안은 따뜻했고, 공기는 무취였으며, 천장의 음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발밑 조명이 켜지는 속도가 오늘따라 조금 늦었다. 그녀는 그걸 ‘피곤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엌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싱크대에는 물자국 하나 없었으며, 서랍은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이라는 잠깐 서랍 앞에 서서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목 안쪽이 다시 따끔거렸다.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손목을 문질렀다.


그리고 서랍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닿는 순간, 아주 미세한 열이 느껴졌다. 손바닥이 착각할 정도로, 거의 없는 열. 세이라는 손을 떼지 않았다. 열은 곧 사라졌고, 그녀는 그게 정말 있었던 건지 확신하지 못했다.


세이라는 서랍을 열지 않았다.


열면, 무언가가 시작될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대신 서랍을 한 번 더 눌러, 닫힌 상태를 확인하듯 힘을 주었다. 그때, 서랍 안쪽에서 또 한 번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탁. 이번엔 분명히 안쪽에서 났다.


세이라는 숨을 멈췄다. 1초, 혹은 2초.


천장의 공기 순환음이 그 순간, 아주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아주 낮게, 부엌 전체가 한 번 더 조용해졌다.


세이라는 그대로 서 있었다.


서랍은 닫혀 있었고, 집은 완벽했으며, 그녀는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분명히, 무언가가 안쪽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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