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급한 나의 길을 여유롭게 막고 계시는 분은 볼라(Bhola) 되시겠다. 볼라는 소 무리의 우두머리로(볼라라는 이름은 인도의 신 Shiva가 타는 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몸집이 매우 크고 등에 거대한 혹이 있는 소이다. 볼라가 나타났다 하면 이 동네 소 들이 그 뒤를 좇느라 안 그래도 좁은 길이 다 막혀버린다. 나는 바빠 죽겠는데, 이놈의 볼라와 소 떼들은 이젠 털썩 주저 앉아버리기까지. 그 뜨거운 아스팔트길 위에서 덥지도 않은지 다들 털썩 앉아서는 여유를 부린다. 나도 마음이 급하고 반대편에서 오던 오토바이 두 대도 마음이 급하다. 빵- 빠바-방- 빵- 빠바- 방- 아무리 클락숀을 울려도 이것들. 꿈쩍도 할 기미가 없다. 오토바이 뒤에 따라오던 차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앉아있는 소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소들은 그제야 화들짝 일어선다. 차 운전자는 소들의 엉덩이를 때리며 제법 익숙하게 소떼를 길 한쪽 구석으로 몰아낸다. 남은 반쪽짜리 길을 두 명의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먼저 지나가고 내가 지나간다. 그제야 차 운전자는 다시 차에 올라탄다.
길인지 쓰레기장인지 모를 곳에서 뒤섞여있는 소, 사람, 쓰레기
나는 인도 동부 웨스트 뱅갈(West Bengal) 주의 교육 마을 샨티니케탄(Santiniketan) 에 살고 있다. 샨티는 평화, 니케탄은 집을 의미하는 단어로 말 그대로 하자면 이 마을은 행복의 집이다.
오늘도 나는 행복의 집에 사는 사람답지 않게 새벽부터 개들이 싸우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일어나 졸린 얼굴로 창을 닫는다. 이곳 샨티니케탄에 오고 나서부터는 늘 동물들과 함께하고 있다. 이곳의 주 이동수단인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릴 때는 달려오는 차들 만큼이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염소를 조심해야 하고, 똥이 묻은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내 손등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들을 피해야 하고, 순식간에 달려들어 자전거 바구니에든 과일을 뺏어갈 수 있는 원숭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즐겨 타던 나였기에 때로는 한국의 자전거 도로가 그립기도 하다. 이건 뭐 자전거 타고 시장 한번 나갔다 오면 혼이 쏙 빠져서 돌아오는 꼴이니.
소, 개, 닭, 염소, 원숭이, 고양이, 두꺼비, 사람, 오토바이, 토토(전기 카트차), 오토 릭샤, 싸이클 릭샤, 자전거, 차... 길을 다니며 보게 되는 것들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 이들이 내는 소리도 수십 가지. 빵빵! 왕왕! 어음메~ 에흠메~ 꼭꼬꼭꼬~ 삑삑~!
평화의 집이라면서. 이곳의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조용하고 차분한 광경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난 이 난장판 속에서 어떤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길거리 개들은 이 동네 가게 주인들 모두의 애완견이다
한국에서는 바쁠 때 눈앞에서 지하철 한 대 놓친 게 그렇게 억울하고 분했는데 이건 뭐 원숭이한테 사과 뺏겼다고 울상을 짓고 있으니. 어느 날은 백내장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는 나이든 개가 내 다리를 나무라고 착각을 했는지 뒷다리를 들더니 내 종아리에 오줌을 갈겼고, 또 다른 날은 집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천장에 달라붙은 게코도마뱀이 내 얼굴에 똥을 싼 게 아닌가. 참. 이놈의 평화의 집. 억울할 일 천지다. 너무 억울하다. 대체 너희 나한테 왜 그러는 거니? 내가 뭘 잘못했니?
그만 억울해하고 다시 생각해보자. 볼라가 내 가는 길을 막으려고 그곳에 앉아서 여유를 부렸나? 나이든 개는 내 하루를 망치려고 작정하고 내 다리에 오줌을 갈겼을까? 아마 볼라와 그 무리는 우리가 이 땅에 아스팔트를 깔아 ‘도로’라고 부르기 훨씬 전부터 이 길을 여유롭게 다녔을 것이고 이곳에 앉아 잠을 자고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길거리 개들도 우리가 수많은 나무를 잘라내고 주거지역을 만들기 전부터 이곳에서 영역표시를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우리 편한 대로 환경을 바꿔놓고 오히려 그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으니. 늘 내가 중심이다 보니 그저 세상이 다 나한테 어떻게 하려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보다.
수많은 동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들이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방식을 보게 되고, 즐거움과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보게 보고, 또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삶을 보며 나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자꾸 인도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치 싯다르타가 그가 지내오던 성의 문을 나서기 전에 생로병사에 대해 몰랐던 것처럼 이곳에 오면 정제되어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드러나 있지 않은 많은 부분을 만나게 된다. 때론 놀라고, 때론 아프다. 하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로 보고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정당성을 들이미는 일은 아마 이곳에선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 이곳 샨티니케탄에서는 더 중요한 삶의 기술이 된다.
오늘도 나는 동물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밥을 먹는 중에도 샤워를 하는 중에도 심지어 똥을 싸는 중에도 누군가와 함께다. 서로의 삶을 바라본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서로의 기쁨을 바라보며 슬픔을 바라보며. 그게 진짜 기쁨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생각하며. 어김없이 샨티니케탄의 하루는 정신없고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