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모으기와의 이별을 고함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시키지 않아도 집안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걸 마치 놀이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모으는 일에도 집착을 했는데 종이 인형, 껌 종이, 종이학,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영화 포스터, 영화 입장권 등 닥치는 대로 모으고 잘 분류해서 차곡차곡 정리해 놓았다.
본가에 가면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장,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자잘한 쪽지부터 나의 메모, 각종 시험 응시표, 상장, 성적표, 학교에서 준 안내문까지 하나하나 모아놓은 상자가 커다란 이사 박스로 두 개 정도가 있다. 게다가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는 자주 편지를 주고받아 양이 많은 친구들 것은 하나하나 파일에 정리해서 이름표를 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많은 물건을 쟁여놓고 쓰거나 물건을 함부로 낭비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건은 꼭 하나씩만 사고 원플러스원 상품을 사는 일은 없다. 게다가 치약이며 샴푸, 화장품 등 끝까지 쓰고 잘라서 알뜰히 쓴 후에 버린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물건으로 정리하고 안 쓴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감히 처분하는 편이다.
그렇다. 나는 추억 모으기 강박증 환자인가 보다. 내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는 편이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으로 짐을 옮겨 왔을 때, 남편이 갖고 온 것은 양복 몇 벌, 평상복 몇 벌, 신발 서너 개가 전부였다. 28인치 캐리어 하나에 들어갈 만큼의 물건만을 가지고 왔다. 물론 나는 결혼 전까지 자취를 했었고, 남편은 부모님과 계속 살았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시어머님은 물건을 잘 버린다. 남편은 그런 어머님과 40년을 살아서인지 물건의 ‘쓸모’ 외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자기는 이건 너무 소중해서 내가 잘 보관해 둔 그런 물건 없어?”라고 했더니 “딱히 없는 것 같은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어떻게 살면 저렇게 무엇에 대한 집착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MBTI’가 ENFP이다. 사람들이 ENFP를 말할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유로운 영혼’, 더 거칠게 말하면 ‘제멋대로’, ‘꼴리는 대로’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P’라고 하며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고 시간 약속에는 민감하지만,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이 없으면 불안한 스타일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지루함을 쉽게 느끼고,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바로 ‘반응’이라는 걸 한다. 이러한 모습은 소비를 할 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OO가 없네.’, ‘OO가 필요해.’ ‘OO가 없어서 불편하네’라고 생각하면 바로 검색을 하고 어느새 그 물건이 내 곁에 있게 만든다. 한 가지에 매몰되는 법이 전혀 없고 다양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옷도 많다. 왜? 다양하게 연출하기 위해 여러 아이템들이 모두 필요하니까. 헤어스타일도 자주 변화를 주는 편인데 나를 몇 년 이상 본 사람들은 이미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2~3년을 주기로 해서 쇼트커트와 기른 과정에서 단발과 롱헤어스타일까지 여러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으면 그것을 쭈욱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적어도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선택과 집중” 그렇다. 나는 “선택과 집중”을 못한다. 이렇게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는 건 ‘블로그’ 운영에서도 나타난다. 책을 내려고 하거나 이웃 수를 늘리려면 하나의 전문성이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블로그’의 경우 산만하기가 그지없다. 영화, 산책, 독서, 소설 습작, 엄마의 글, 미니멀 라이프, 학생들 글... 그렇다. 나는 한 가지를 꾸준히 해나가며 부단히 애를 쓰고 버티는 힘이 부족하다.
이러한 나의 성향을 하루아침에 부숴버릴 수는 없겠으나 최근 한 가지는 놓아보려고 한다.
“추억 모으기 강박증 내려놓기”
자식이 없는 내가 죽고 나면 나의 물건을 들여다보며 나를 추모할 사람은 없다. 이 말은 곧, 내가 아무리 기록하고 수집한들 내가 죽고 나면 처치곤란한 쓰레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 당장 생을 마감하다고 해도 살아갈 날이 창창한데 하며 안타까워할 나이도 아닌 50이다.
얼마 전 읽은 가수 장기하의 책에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돈을 아끼고 말고 와는 좀 다른 문제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다.”라는 문장이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오늘부터 모든 추억은 내 기억으로 남기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 삶의 군더더기를 없애고, 당장 떠나도 되는 가벼운 삶을 살아가며 내가 있는 이 시간, 지금 여기에서 내가 선택한 것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