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어릴 때 많이 외로웠다. 늦둥이로 태어났고 언니들과 오빠는 학교에 가고 엄마 아빠는 일터로 가고 나는 혼자 남아 집을 지키며 놀았다. 지금이라면 유아방관죄로붙잡혀 갈 일이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이 동네에 많았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고 주로 티브이에 나오는 아나운서의 말을 흉내 내거나 혼자 주고받으며 인형놀이를 하는 거였다. 조금 더 커서 한글을 알게 된 후로는 책을 읽으며 내가 닿지 못한 세상과 접속하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었다. 39년 차이나는 아버지는 엄격한 유교남이라 어린 나에게는 영문도 모를 이상한 교육에 저항도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불만이 많았고 그런 불만이 글쓰기의 동력이 되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내가, 수줍음이 많아 알면서도 손 들어 대답하지 못했던 나를 드러나게 해 준 건 4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일기장 검사를 할 때 한 자 한 자 정성껏 코멘트를 달아주시며, 나에게 글쓰기 능력이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좋으니 소설가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유교남이었기에 언니들은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하는 게 예정되어 있던 터라, 내가 꿈을 갖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알 수 없으면서 나는 선생님의 인정이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자격증이라도 받은 듯 의기양양했다.
그때부터 새 학년이 되어 친구들 앞에 일어나서 나를소개를 할 때면 “내 꿈은 소설가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탈 것입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는 했다. 한강 작가가 본다면 코웃음을 칠 일이었을까? 어찌 됐든 그 후로 내 꿈은 날개를 단 듯했다. 선생님이 기회를 많이 주셨고 나는 각종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고 글쓰기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고 내려올 때면 모두들 나를 우러러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살았다. 그 이후로는 중학생조선일보학생기자, 교내방송국기자 등 무엇이든 도전하면 내 것이 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 점점 글을 쓰는 일이 힘들어졌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들만한 글을 작위적으로 지어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3 때 스스로 절필을 선언하고 다른 즐거움에 빠져 살았다. 연극을 했고 선교중창단에 입단하여 노래를 했다. 학교 방송부에 들어가 방송 준비를 하느라 밤을 새우고 학교에 가면 늘 피곤해서 졸기 일쑤였다. 당연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고3이 되자 대학에 가고 싶은데 내 성적으로는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실기평가가 들어가는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처음 리포트로 제출한 글을 교수님이 합평 글로 선정해서 읽어주시고는 서사 구조가 튼튼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고 칭찬을 해주시자 나는 다시 한번 소설 창작에 대한 열정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성격이 되지 못했다.
학보사에 들어가 기자로 활동하며 세상 부조리함에 관심을 갖게 되어 “투쟁”을 외치는 일에 빠져 수업에 빠지는 일이 많았고 편안하게 소설 나부랭이나 쓰며 몽상에 빠져 있는 일이 하찮게 느껴졌다. 내가 “투쟁”에 빠져 수업을 밥 먹듯이 빠진 사이 다른 학우들은 비로소 작가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소설 창작과는 거리가 점점 벌어지게 되었다.
졸업 후 생업에 종사하며 오랫동안 소설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실린 한 문학상 공모를 보고 예전에 써 놓은 소설을 수정해 투고를 했는데 당선이 되었다. 사실 그때 나에게는 돈이 필요했고, 상금에 눈이 어두워 도전한 것이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그것이 자극이 되어 나는 또 한동안 소설 쓰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나의 가벼운 엉덩력은 힘을 잃고 만다. 세상엔 소설을 쓰며 살아가기에는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 나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나의 운세가 좋지 않았고, 나는 삶을 살아내느라 생업에 종사하며 점점 글에 대한 열망이 시들게 되었다.
50이 된 나는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다시 글을 쓰며 나의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 산만한 내가 얼마나 이 일에 몰입할지 모르겠으나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지천명이 되니 더 날 나위 없이 글을 쓰기에 좋은 때가 아닌가 싶다.